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영화관의 구석에서 힘을 발견하다-게드전기

권채린 |2006.12.01 00:07
조회 32 |추천 0
 
한 번쯤 누구나 슬럼프라는 것에 빠집니다. 그것이 성적에 관련해서든, 일에 관련해서든 말이지요. 굉장한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 저의 유일한 해결방법은 영화는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영화는 항상 저에게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을 선사하기 때문이죠.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스크린이 마법을 발하기 시작하면, 저는 그 겉잡을 수 없는 힘에 빨려들어가 정신을 잃고 맙니다. 한 번은 그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해 영화가 필요했을 때가 있었지요. 그 때 제가 내민 손을 잡아준 영화가 바로 '게드전기-어스시의 전설'이었습니다. 희한하지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이라곤 하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도 아닌데 제가 이런 어떻게 보면 초라해 보이는 작품에 그러렇게나 끌렸다는 것이 말입니다. 아마도 주인공 아렌의 모습에 제가 투영되었던 모양입니다.
항상 불안에 떠는 주인공 아렌.


사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 감독이 연출하고, 유명한 3대 판타지 작품 가운데 하나인 '어스시의 마법사'를 토대로 한 데다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이라는 데도 흥행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아쉬운 점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줄거리가 엉성한 데다 그림체도 전혀 현대적이지 못해 어떻게 보면 흥행 참패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졸작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 사람이야말로 영화를 보는 눈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만큼 저는 이 영화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변해버린 마을 호트 타운.

   주인공 아렌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도망치던 중 대현자 게드를 만납니다. 게드는 아렌을 호트 타운으로 안내하고, 아렌은 이상하게 변해버린 세상을 바라봅니다. 함께 여행하던 중 두 사람은 게드의 오랜 친구인 테나의 집을 방문하고, 거기서 부모님에게 버림받은 소녀 테루를 만납니다. 네 사람은 평화롭게 농사를 짓던 중 거미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하고, 아렌은 거미의 흉계로 자신의 진실한 이름을 가르쳐 주게 되는데...

 

 극중 변해버린 호트 타운은 지금의 세상을 가리킵니다. 곳곳에서 작물이 말라 죽어가고, 사람들의 마음이 이상해졌다는 게드의 말은 마치 지금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보는 이의 가슴을 찔리게 합니다. 한편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아렌 역시 현대인을 반영한다고 여겨집니다. 심지어 사람을 믿지 않는 테루조차도, 지금 여기 서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아파오기도 하지요.

     


                                      얼굴에 화상자국을 지닌 소녀 테루.

하지만 저는 이 영화의 끝에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비단 아렌의 검에서 뽑혀나오는 한줄기 광선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람을 믿게 된 테루나, 죄값을 당당히 치르러 가는 아렌의 뒷모습에 이르러 발견한 것입니다. 분명 낡아버린 그림체라도, 어이없이 허술한 스토리 구조라도 그것은 감독의 영화에 드러내고자 한 진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재미없다'고 치부해버린 사람들의 평 앞에서 이 영화를 옹호하는 입장을 고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슬럼프에 빠져 있던 저에게 놀라운 마법을 펼쳐보인 영화관 앞에서 저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에의 믿음이 이렇게도 악화되어가는 세상에서 이 (감독이 명명한) '새로운 고전'은 한줄기 아렌의 검에서 나온 광선과도 같은 희망을 던져준 것입니다.

 

아직도 이 영화가 지루하고 재미없고 어이없다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사실 그건 개인적인 의견이라 제가 뭐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저는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단편적인 면만을 보셨다면 아마 그렇게 평하셨을 거라고요. 숨겨진 의미까지 발견하는 것이 관객의 몫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과감하게 "예"라고 하겠습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발견하는 것이 그렇게도 힘들다고 불평하신다면 말입니다. 분명히 아버지에 비해 어수룩하고 불완전한 작품이지만, 글쎄요, 하울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한 적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군요. 스튜디오 지브리의 전작에 비해 줄거리 구조가 엉성해지긴 했지만, 후계자는 제대로 뽑은 것 같습니다.


"원래 용과 인간은 하나였는데,

 자유를 사랑한 용은 하늘로,

 탐욕많은 인간은 대지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