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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는 저작권법으로 보호 받지 못한다

이호진 |2006.12.01 05:16
조회 98 |추천 0

저작권법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변호사로서 당사자들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흔히 느끼는 것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대학교수들이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처럼 상당한 학식을 가진 사람들조차 그러하다. 각종 매체를 통해 21세기는 지식정보사회이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같은 지식재산은 지적재산권법에 의해 강력한 보호가 주어진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저작권법은 아이디어(idea)나 사상(思想) 그 자체를 보호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아이디어에 대한 '표현(expression)’만을 보호할 뿐이다. 이것을 저작권법에서는 ‘아이디어/표현 이분법(idea/expression dichotomy)’이라고 하며 저작권법의 기본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원칙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양반사회의 허구성을 비판하고자 하는 사상을 가진 한 작가가 그 사상을 소설로 표현한다고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양반전’이 될 수도 있고, ‘호질’이나 ‘허생전’ 또는 ‘홍길동전’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소설들은 모두 독자적인 저작물들이다. 따라서 ‘양반전’을 먼저 발표한?작가가 후에 ‘호질’을 발표한 작가에 대해 자신의 ‘사상’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할 수는 없다.
아이디어나 사상 그 자체를 보호하는 법으로는 ‘특허법’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특허법은 모든 아이디어나 사상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technical idea)’만을 보호한다. 따라서 기술적 아이디어가 아닌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아이디어와 같은 일반적인 아이디어는 기술과 결합하지 않는 한 특허법으로 보호 받지 못한다. 그리고 아이디어 그 자체이므로 저작권법으로도 보호 받을 수 없다.

A라는 심리학자가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린이들의 집중력과 창의력을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지수(Quotient) 패턴을 개발했다고 가정해보자.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지능지수(IQ)나 감성지수(EQ)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이 어느 정도의 집중력과 창의력을 갖고 있는지도 매우 궁금해할 것이므로 이 지수를 측정하는 테스트를 사업화하면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A는 많은 돈과 시간, 인원을 투자해 측정용 문제지를 제작하는 한편, 회사를 설립하고 인력을 충원해 영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에는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키는 등 성공을 눈앞에 두는 듯했다. 그런데 곧바로 유사한 테스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쟁업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 경쟁업체들은 A가 제작한 측정용 문제지의 문항에서 그 표현만 바꾼 문제지를 제작하고 동일한 측정방법을 사용해 집중력과 창의력 지수를 측정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A의 사업은 크게 타격을 입게 됐다. A는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도용한 경쟁업체에 대해 크게 분노했다. 이 경우 A는 지적재산권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아이디어 자체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A가 제작한 문제지는 저작물이 될 수는 있으나, 경쟁업체는 그 문제지에 들어 있는 아이디어만을 이용했지, 표현은 자기 나름대로 변형시켜 사용했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집중력과 창의력을 측정하는 아이디어는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아이디어가 아니라 심리법칙을 이용한 심리학적 아이디어이므로 특허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미국의 셀덴(Selden)이라는 사람은 종전의 부기(簿記)방식을 개량한 새로운 복식부기 방식을 개발해 그 방법을 설명한 책을 저술했다. 이 복식부기 방식이 인기를 끌자 베이커(Baker)라는 사람이 부기책을 저술하면서 셀덴의 방식을 허락 없이 도용했다. 셀덴은 베이커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셀덴이 새로 개발한 복식부기 방식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디어에 해당하며, 이러한 아이디어는 모든 공중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는 생활에 지극히 유용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창안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많은 노력과 시간, 비용을 투자해 그러한 아이디어를 개발한다. 그런데 이러한 유용한 아이디어들 중에는 지적재산권법에 의해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것이 상당수 있다. 따라서 천신만고 끝에 이러한 아이디어를 개발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문화유산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지적재산권도 마찬가지다. 지적재산권은 아는 만큼 보인다. 그래서 지적재산권에 대해 잘 모르면 법으로 충분히 보호 받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자기재산에 대해 모르고 지나치는 수가 있다.

반대로 지적재산권에 대하여 잘 모르면, 보호 받을 수 없는 지식인데도 불구하고 보호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좋다는 것만 믿고 많은 돈을 투자했다가 실제로 그 아이디어 자체는 좋았으나 곧바로 경쟁업체가 생겨나고 그 경쟁업체에 대해 법률적인 제제를 가할 수 없어 사업에 실패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자 할 때는 그 아이디어가 지적재산권에 의한 보호를 확실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받을 수 있다면 어떤 지적재산권에 의해 어떤 보호를 얼마 동안이나 받을 수 있는지를 지적재산권 법률 전문가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오승종(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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