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편 이상적인 ‘진실’보다 상상력을, 형태보다 빛과 색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바로크 양식이 완전히 끊긴 것이 아니라 나폴레옹 시대에도 바로크적 방식으로 신고전주의 사상을 그린 화가들도 있었고, 또한 신고전주의의 언어를 이어받으면서 그것을 아주 상상적인, 또는 환상적인 주제의 표현을 위하여 사용한 화가도 있었다.
고야(1746~1828)는 신고전주의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바로크 양식을 ‘근대’양식으로 발전시킨 매우 중요한 화가이다. 고야도 자신이 존경했던 벨라스케스처럼 스페인의 궁정화가였지만 그는 단순히 궁정의 초상화만 그리지는 않았다.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중요한 몇 작품 중 하나가「1808년 5월 3일」이다.
고야는 나폴레옹 군대가 마드리드를 점령하고 스페인 궁전 앞에서 애국자들을 처형한 1808년 5월 3일의 현장을 목격했다고 전해진다. 얼굴도 보이지 않고 이름도 알 수 없는 프랑스의 무장군인들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 있는 무장하지 않은 수많은 양민들을 사살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 어두운 이른 새벽 교회의 종탑이 멀리 보이는 언덕아래 등불을 켜놓고 신속하게 양민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그림의 왼쪽에는 이미 처형당한 시체들의 피가 대지를 적시고, 흰옷을 입고 최후의 순간까지 저항하는 남자도 보인다. 아직도 처형당할 양민들은 등불 앞에서부터 시내의 성문까지 길게 늘어서 있다. 처참하다.
고야는 이 작품에서 더 이상 전쟁에서 이긴 자를 찬양하지 않는다. 역사가 이긴 자의 기록이며, 이긴 전쟁만을 인정하여 그들의 손을 들어주던 역사적 사건의 진실성보다는 인간이 같은 인간을 죽이는 이 참혹한 순간 그는 힘없는 양민의 입장이 되어 그 현장의 절절함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1808년 5월 3일」은 근대로서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