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을 믿지 않는 한 남자가 있다.
지독히도 아픈 사랑으로 얻은 상처로 인해
그 누구도 사랑할 자신이 없고
또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도 거부한채
하루하루 죽은듯이 그렇게 숨만쉬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담배를 사러 갔던 남자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버린다.
마치 언제 그랬었냐는 듯
얼어붙었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하고
다시는 그 누구앞에서도 들을 수 없을것 같던
그의 상냥한 목소리가 그녀에게 말을 건다.
2
늘 변함없는 일상
오늘도 난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손님의 마음에 든
물건을 받아들고 가격을 책정하고 요금을 청구한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무얼 하려는지따위는 관심없다.
나는 내 할 일만 할뿐이다.
한가한 오후시간 담배를 여섯갑이나 구입한 남자가 말을 건다.
"일한지 얼마나 됐어요?"
파란셔츠에 짧은 스포츠머리 검은뿔테안경..
학생인가? 나이는 22~23살? 제법 귀엽기도 한데?
"얼마 안됐어요."
"매일 나오나요?"
"주말알바에요.. 금토일.."
묻지도 않은 요일까지 말해버렸다.
"앞으로 주말에만 와야겠군요^^ "
3
이틀이 지난 일요일
큰 결심을 한듯 남자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사장인듯 싶은 남자가 문앞에 서있다.
속으로 욕을 하며 마치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듯 편의점을 지나
멀리까지 간 남자는 편의점문앞의 남자와 안을 훑어본다.
잠시 뒤에 사장인듯 싶은 남자가 안으로 뭐라고 소리지르고는
어디론가 가버리자 남자는 편의점으로 발길을 향한다.
그녀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들어가 콜라 하나를 집어든다.
"잘 있었어요?"
4
"괜찮다면 친구같은거 어떨까요? 전화번호 주고받고.."
휴..
너무 유치한 멘트다..
친구가 뭐냐 친구가...
긴장을 너무 했던 탓일까?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질 않는다.
문자를 주고받으며
이름이 아주 이쁘다는 것과
스무살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하지만 정작 나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한 것이 없는듯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다.
『내일은 뭐하세요?』
『친구들 만나 놀기로 했어요』
『그럼 화요일에는요?』
『화요일에는 약속 없어요~』
『그럼 화요일날 데이트 할 수 있을까요?』
.
.
.
.
『우선 제가 남자친구가 있다면요?』
.
.
.
.
.
역시 하늘은 나의 편이 아니군..
『그럼 편하게 밥이나 한 끼같이 먹죠 』
5
화요일 오후 5시 약속
두 사람은 한 동네에 살지만 대학가에서 만나기로 한다.
남자는 생각보다 일찍 집에서 나왔지만 버스가 좀처럼 오지않자
초조해진다. 하늘도 흐린것이 꼭 비가 올것만 같다.
평소대로라면 벌써 두대도 더 지나갔을 시간인데 오늘따라
이놈의 버스가 오지않는다며 속으로 투덜댄지 얼마나 지났을까
기다리던 버스가 오자 남자는 신이 난다.
세 정거장 지났을까?
남자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얼어버린다.
그녀가 버스에 탄 것이다.
혹시하고 바랬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 작은 희열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와는 달리 그녀는 비어있는 그의 건너편
바로 옆자리에 조용히 가 앉는다.
『괜찮다면 뒤에 같이 앉을래요?』
그새 뒷자리의 학생들이 내리자 자리를 옮긴 남자의 문자에
여자가 황급히 놀라며 뒤를 돌아보곤 인사를 한다.
"음악 같이 들어요.."
6
그의 옆에 앉아 그의 핸드폰 속에 담긴 음악을 들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샌가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약속장소로 잡았던 곳에서 내린 우리는 바빠진다.
"뭐 먹을래요? 고기 먹죠.. 일단 뛰어요!"
겨우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잠시 쉬던 그가 달려가더니
우산을 사들고 나타난다. 생각보다 정말 작은 우산을.
비오는 날을 좋아하진 않았는데 오늘부터 좋아할거라고
작은 우산아래 꼭 붙어있는 것이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자꾸 이사람팔에 가슴이 닿잖아....
7
밥을 먹고 남자의 청에 못이겨 노래방까지 간 두 사람.
정말로 듣기만 하겠다는 듯 노래 한곡 안하는 여자는 불러달라는
노래를 다 불러주는 남자가 맘에 들었는지 술한잔 하자는 말에
가볍게 OK한다.
8
"남자친구는 뭐하는데 연락 한 번 없어요?"
"바빠요.."
"어떻게 만났어요?"
"시내에서 우연히 알게 됐어요."
"사랑해요?"
"네 사랑한지 얼마 안됐어요.. 첨엔 아무느낌없었는데..
얼마전에 백일 넘기면서부터인거 같아요."
9
그녀의 애인에 대해 몇가지 묻고는 이내 단념한 남자는
더이상은 그녀의 애인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하고..
오늘 이자리를 마지막으로 가슴속에 피어오르던 감정들을
모두 지우기로 다짐한다.
그 때 남자는 조금전에 들은 그 말이 약간 충격이다.
"애인이 xxx에서 일한다구요?"
"네.."
"설마 OO라는 사람은 아니죠?ㅋ"
"... ..."
"... ..."
"어떻게 알죠?"
10.
'어떻게 이 사람이 그이의 이름을 아는걸까?'
그이의 이름을 맞춰버린 이 사람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것같다.
차마 진정할 수가 없는듯.. 아니 굉장히 화가 나있는것 같기도 하고
멍하니 있다가 테이블을 꽝치고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한참을 죽은듯
미동도 없더니 어깨가 떨려온다. 힘겹게 담배 한대를 주어물고는
체념한듯 먼 산만 보고있다.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얼마나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던 것일까
끝내 그가 힘겹게 입을 연다.
그에게서 듣게 될 말이
내인생을 바꿔버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묻지 않았을텐데
11
"언젠가 혹시 당신에게 헤어지자고 한적 있나요?"
"네..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 그사람이 사귄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제가 사랑하던 여자..에요..."
.
.
.
.
"하지만 하루도 못가 이내 헤어졌죠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를 잊을 수 없다며..."
.
.
.
.
.
"바로 그의 여자분이 제 앞에 있네요..."
12
사실 이 여자의 애인이 누구든 난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런 개같은 경우가 또 있는가..
내가 사랑하던 여자와 만났던 남자의 애인과 지금 만나고있다니
더군다나 이제 막 사랑하기 시작했다던 여자에게 해줄 소리인가
사람은 잔인하다.
때로는 상대생각은 하지않고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남자는
내가 사랑하던 여자와 바람을 피웠었소
라고 말할수도 있는 것이다.
아 하지만.. 이 여자가 너무 가엽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여자보다 내가 더 화가 나는거지?
겨우 겨우 잊었다고 생각했던 여자가
다시 생각나서 이러는 것일까?
그당시 힘들어하던 그녀를 생각하며
그 뻔뻔한 놈에게 화를 내는 것일까?
이제 겨우 마음에 들어온 여자가 하필 애인이 있어서?
그게 그 놈이라서? 그 놈이 그녀를 생각나게 해서?
아니면 난 영원히 사랑따윈 하지도 말라는 신의 계시인가?
불행한 운명을 벗어날 생각따윈 꿈도 꾸지말라는건가?
나는 행복하면 안되는 사람인건가?
아 울지마..
이 여자야 울지마...
그래 울자 같이 울자..
사랑따윈 없다고 믿을게 못된다고 이 여자야..
같이 울자..
그녀가 말한다.
"앞으로 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3
내 앞에 이남자의 이야기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다는..
정말 사랑했던..
하지만 잊어야했던..
그녀에게 있었던 이야기
지금 이사람이 알고있는건 아주 단편적인것에 불과하지만
충분히 알 수있다.
그이.. 아니 그 자식이 어떤 놈인지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란 것도
정말 솔직해서 오로지 솔직한 성격에 반한 거였는데
반협박식으로 사귀자고 해놓고는
두 달쯤 지나 갑자기 헤어지자고..
그땐 이런 이야기 안했잖아?
차라리 그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말을 하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얼마나 울었는데
14
"아무 말 하지 마세요."
"... ..."
"제 이야기 못들은걸로 해요.
그 사람에겐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 ..."
"어짜피 버림받은 사람들은 그냥 살면 되요. 아무일 없었던 듯...
나와 그녀는 말이죠.."
"... ..."
"그리고 사실 그사람도 당신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걸로 보아
많이 사랑한 모양이에요."
"... ..."
"잠깐 한 눈 팔았었다고 생각하고 용서해주세요."
"... ..."
"... ... "
"아니요. 그럴 수 없어요!"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