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거라! 당장 이혼 하지 않으면 부모자식간에 연을 끊는수밖에 없다!"
내 어머니가 시집와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하셨다던 얘기입니다..
그리고....지금 그와 똑같은 이야기를 저도 듣고 있습니다
그이의 부모님께..내 시부모님께..내 아기의 할아버지 할머니 되시는 분들께..
가난한 농부의 육남매중 넷째딸로 태어나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았던 우리 어머니..
먹을것이 없어 귀뚜라미를 잡아 먹고 흰쌀밥이 아닌 보리밥도 없어서 못먹었다던 그 시절 어머니께서는 집안의 반대가 심했던 집에 시집을 오게 되었습니다
못난 외모에 복이 없는 관상 그리고 가진것 없는 농부의 딸이라는 이유로 저희집에서는 반대도 심했고 어머니에게 정을 주지도 않으셨답니다
며느리 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시댁으로 시집가려는 딸의 앞날이 불쌍해 외가댁에서도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아버지의 애정공세로 그리고 11 남매중 열번째 자식이자 막내아들이었던 우리 아버지의 고집으로 결혼식까지 갈수밖에 없었다던 그때....그해는 1984년 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나를 임신하였고 두집안의 반대로 미루고 미루어 오던 결혼식이 성사 되던 그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구타를 당하였다 하였습니다
딱히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기뻐해야할 그날에 신랑에게 맞은 신부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아무튼 그일이 있고 어머니는 외가댁으로 도망을 쳤지만 혼인을 피할수 없었던 상황이었답니다
가진것 없는 농부 살림에 이것저것 다 끌어모아 보았지만 떵떵거리고 살만큼의 재산을 보유한 집에서 미움받는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 심정이, 모든것을 준비할때 더 많은것을 해주지 못한 서러움에 흘리셨을만한 눈물과 고통이 말로만 들어도 가슴으로 전해져 오는데 당시 외가댁에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그렇게 해서 어머니는 나를 낳으셨고 딸이라는 이유로 어머니의 출산이..내 탄생이 축복받지 못했었던거 같습니다
내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동네에서 술을 마시느라 정신없었고 어머니는 외가댁에서 나를 안고 펑펑 우셨다고 합니다
내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던날...나를 보러 오지 않겠다는 아버지때문에 큰아버지께서 대신 나를 보러 전라도에서 경상도까지 먼길을 오토바이 하나에 의지해 달려오시다 그만 변을 당하시고 말았습니다
그일이 있고 난뒤 우리 집안의 가족들은 어머니에게 더욱더 심한 구박을 하셨고 시댁에 사랑받지 못하는 며느리가 되어버린 자신의 부인을 보며 더이상의 사랑도 정도 주지 않았던 아버지는 그때부터 밖으로만 나돌기 시작하셨습니다
그후로 어머니께서 두번의 임신을 더 하셨지만 태몽과 배부름 등으로 미루어 보아 딸일것 같다고 생각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두번의 낙태를 강요하셨답니다
그리고..내가 4살되던 해에 또 다시 어머니는 임신을 하셨고 임신후에도 열명이 넘는 가족들의 수발을 들어오던 어머니는 그만 양수가 터져 8개월만에 남동생을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동생의 탄생또한 축복받지 못하였습니다
못난 어머니를 꼭 빼어닮았다는 이유로..아버지를 닮은곳에 한군데도 없기에 바람핀것이 아니냐는 의심때문에..
어린 아기였던 동생을 그토록 미워하는 아버지때문에 어머니는 심신이 말로 할수 없이 괴로웠고 출산후 단 이틀만에 쉴새도 없이 다시금 힘든 집안일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차츰 차츰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 할머니 두분모두 돌아가시고 막내 아들이었던 우리 아버지는 그 모든 재산을 강압적으로 모두 자신이 빼앗듯이 물려받아 노름에 탕진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 노름만 하는 아버지..농사일을 제외하고는 돈버는 일이라고는 해본적 없기에 집안일만 하는 어머니..
아주 짧은 시간 그 모든 재산을 탕진하게 된 아버지 때문에 우리집안은 더욱더 고통의 나날들로만 가득해져갔습니다
외가댁에서 땅을 팔고 논을 팔아 가지고 온 돈들마저도 아버지께서 노름으로 탕진하자 외가댁에서는 이혼을 하라 하셨답니다
하지만 두 어린 아이들만 놔두고 이혼할수 없었던 우리 어머니의 고집과 무슨일이 있어도 이혼해주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고집이 만만치 않아 결국 어머니는 외가댁과 등지고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진것 없는 서러움에 고통속에 날로 늘어만 가는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속에서도 참고 사셨던 어머니는 1997년...그해에 아버지의 폭력을 더이상 이기지 못하고 질기고도 질긴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셨습니다
어린 자식의 목에도 칼을 들이민 아버지의 행동때문에 두려움이 가득차버린 너무나도 어렸던 우리 두남매는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어머니를 구할수도 없었습니다
그저..이때껏 버텨왔는데...조금만 더 버텨주지.....조금만 더 힘을 내서....우리랑 도망이라도 가서 살아주지라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미 늦은 뒤에 애타게 불러볼뿐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아버지는 상해치사로 10년형을 받아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너무 짧은 형량에 또 다시 보복을 하진 않을까라는 두려움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충격과 아픔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 없었던 저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만 했습니다
너무나 어두운 시절의 옛 기억때문에 잊혀지지 않는 어머니의 죽음과 그로인한 정상적이지 못한 생활때문에 학교공부도 할수 없었고 마침 그때즈음 사춘기가 찾아왔던 저는 친척집에서 가출을 하였습니다
이미 외가댁에서는 우리 남매와 연락을 끊은지 오래..어머니의 장례식날에도 두번다시 저희가족은 물론 저희조차도 보기 싫다며 친가에서 키우지 못하겠으면 고아원에 보내라고까지 하셨던 외가댁이었기에 그곳에 찾아갈수도 없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친가쪽 가족들의 형편때문에 동생과도 떨어져 살수 밖에 없었던 저는 혼자 자립을 하겠노라 생각을 하였고 돈되는 일이라면 나쁜짓을 빼고 모두 마다 하지 않았던 저는 하루 3시간씩 자면서 열씸히 돈을 벌었지만 어린 나이에 학벌도 없이 시작한 사회생활이라 넉넉치 않은 월급으로 하루하루 살기조차 빠듯했습니다
제대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였고 이성과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을 그 나이..두명의 남자를 알게 되었고 그 속에서 어머니의 삶이 내게로 반복되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애인이라는 사람에게 구타를 당하였고 돈을 뺏기고 사기를 당하면서까지도 무엇이 옳고 그른것인지를 분간할수 없었던 저는 이미 많은 피해를 보고 후회와 고통의 눈물을 흠뻑 흘리고 나서 보니 남은것은 황폐해진 마음과 건강하지 못한 신체뿐이었습니다
잘먹고 잘 놀아야 할 나이에..배달이란 배달은 모두 해보고 식당에서 무거운 음식식기의 서빙에 그마저도 시간이 남으면 게임방이나 만화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렇게 해서 한달 버는 돈 고작 80만원 남짓..
식비와 비싼 방값과 필요할수밖에 없었던 핸드폰비를 제외하고 나면 갖고 싶은 옷 한벌 사입을수도 없을만한 돈이 남았습니다
한푼 두푼 모은돈을 한꺼번에 사기로 날리게 되니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더이상의 그 어떤 희망도 가질수 없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난 남자는 내게 구타를 일삼았고 내 돈을 훔쳐가 술집에 갖다 바치기 일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모님들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며 자신의 아들이 행한 구타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고 돈을 훔쳐가도 이해하고 내게 폭행을 해도 이해하고 살라며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견딜수 없는 고통에 저는 집도 이사하고 연락처도 없애버리고 먼곳으로 잠수를 타게 되었고 그후로 또 다시 돈을 모을즈음...
한남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랑 하진 않았지만 저를 정말 아껴주고 위해주던 그사람은 제게 청혼까지 해주었고 많은 고통과 아픔속에서 살아왔던 저는 저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그사람은 저를 지켜줄수 있을거라 믿었습니다
여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야 잘산다는 그 하나의 말만 믿고 저는 그를 사랑이 아닌 정만 있더라도 행복할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사람의 부모님까지도 제 상처를 알고 저의 다친마음을 위로해주고 도닥여주셨는데...
그와 혼인신고를 하고 2개월쯤 뒤에 받게 된 한통의 전화때문에 그 모든 행복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평소 이모 전화번호라고 했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의 핸드폰을 받았는데..내가 알고 있던 이모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별거중이라는 그의 약혼녀...결혼을 준비중이었지만 두사람간의 사소한 문제가 생겨 결혼을 미루었다고..
이미 양가 상견례도 끝났고 동거도 3년간 해왔다던 그 여자의 말은 세상이 무너지는 말이었습니다
결혼후 직장을 옮기겠다며 2개월이 넘도록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놀기만 하는 그사람을 이해해준것도, 가끔 일자리를 구하러 나가보겠다며 돈들고 나가 밤새도록 들어오지 않다가 아침이 다되서야 술냄새를 풍기며 여자의 화장품을 옷에 잔뜩 묻히고 오는 그를 보고도 아무소리 않고 넘어가준것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 전화를 받은뒤 바로 다음날 집으로는 가압류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결혼전 그가 썼다던 카드 빚 천만원에 대한것과 핸드폰 미납요금 150만원에 대한것이었습니다
월세방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집이 내이름으로 되어있다 하더라도 혼인신고를 하였고 세대주가 그사람인 이상 그 집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입장도 내겐 없고 그대로 모두 날릴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딱히 배워온 기술도 없었던 저는 이미 그사람과 살면서 빚을 300만원정도 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제 월급 가지고는 월세를 내며 두사람의 생활조차 힘들었기 때문에 제가 선택한것이었습니다
더이상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던 그당시 저는 이혼을 요구했고 그사람은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되려 마음잡고 일하려는 사람을 못살게 군다는 이유로 구타를 일삼았고 그로인해 경찰서도 몇번을 갔다 오고 병원에도 입원했지만 그사람의 행동은 나아질줄을 몰랐습니다
후에는 전기가 끊겨버린 집에 그는 더이상 들어오지 않았고 한겨울 추워서 벌벌 떨며 자고 있는 저를 놔두고 그사람은 새로 일하게 된 직장에서 직장동료와 바람까지 나서 연락조차 끊어버렸습니다
일단 먹고 사는것이 시급했던 저는 월급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보려 하루 투잡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한 보름간 일했을때에 그사람의 애인이라는 사람이 직장까지 찾아와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그 일마저도 짤리게 되었습니다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 사람은 나인데 오히려 그 여자는 내가 이혼해주지 않고 있다라는 말을 듣고와버린 결과였습니다
일을 관두고 여러날동안 제가 찾아가고 찾아가게 되어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고 그사람의 채무만을 다시 내게서 없애는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한 저는 돈한푼 없는 그사람에게서 위자료따위를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후....지금의 신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진것이 없어서 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며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저의 행복을 위해 만남을 거부하기까지 했던 그의 따뜻한 마음씨에 오히려 저는 더 그를 놓칠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저희는 힘들게 시작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참 많은 사랑을 했습니다
서로때문에 아파하고 힘든적도 있지만 그래도 서로를 버리지 않고 많이 아껴주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못했던 저는 이론적으로만 사랑에 대해 알고 있던 저는 올바른 길로만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사랑으로만 이루려 하고 있었고 그는 저와는 다른점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다툼과 눈물을 흘리면서도 저희는 서로를 버릴수 없다는것을 진실하게 깨닫고 사랑했습니다
저희 사이에 또 한번의 위기가 찾아왔을때 저는 임신 4주라는것을 알게 되었고 그 계기로 서로를 더욱더 사랑하고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주위의 반대가 심할것이 불보듯 뻔했고 특히나 저와는 달리 가족이 있는 그의 집안의 분위기는 안봐도 뻔한것이었으니 저희로서는 나름대로 참 많이 고민하고 고민하여 혼인신고를 저희끼리 해버리는 사고까지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후...부모님을 찾아뵙고 말씀을 드렸지요...
다행히 기독교 신자셨던 신랑의 부모님께서는 저와 그리고 신랑을 이해해주시고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주셨습니다
어두웠던 저의 어린시절도 감싸주셨고 이렇게밖에 할수 없었던 저희 상황도 이해해주셨습니다
배부르기 전에 결혼식을 서둘러야 겠다며 가진것 없는 저인걸 알면서도 모든준비를 해주시려는 부모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또 죄송했습니다
저희집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함을 아시고도 저를 도닥여주셨던 부모님께 이 많은 은혜와 죄송스러움을 무엇으로 갚아야 하는지 몸둘바를 모를정도로 제게는 큰 행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크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저는 혼인을 한번 한적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저의 고통이었지만 부모님께는 그것이 큰 상처가 될줄을 알았기에 그 사실만큼은 말하지 못하였는데 우리의 결혼식으로 인해 이루어진 신랑의 가족회의에서 그문제가 붉어져 나왔었나봅니다
정말 임신인지를 확인하고 제가 처녀였다는것을 알아야 혼인을 성사시킬수 있는 문제라는 가족들의 의견이 나왔다시며 확인을 해보아야 할것 같다는 아버님의 말씀에 저는 숨겼던 사실을 털어놓을수밖에 없었습니다
혼인을 한적이 있노라고...
순간 기절직전까지 가시는 아버님을 보고 역시 이문제가 부모님께는 얼마나 큰 상처인지를 또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숨겨서 사기결혼을 하려고 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아버님께서는 신랑또한 이 모든 사실을 알고 혼인을 한 사실을 들으시고는 더욱더 화가나셨고 부모님을 농락하고 기만한것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시고 저에게 합의이혼을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애를 지우고 이혼하거라! 당장 이혼 하지 않으면 부모자식간에 연을 끊는수밖에 없다!"
제 행복때문에 저희의 사랑때문에 신랑이 부모와 연을 끊는것을 볼수 없었던 저는 합의이혼을 하는 대신 아기는 내가 낳아 내 힘으로 기를테니 아기 낳는것을 허락해달라 하였습니다
임신 4주임을 알게 되었을때 산모의 몸이 약해 아기가 조산의 위험도 있을뿐더러 입덧이 심한 엄마덕에 잘 크지 못하고 고생을 하고 있지만 지우게 된다면 불임가능성이 커질거란 얘기를 들었기에 아기를 포기할순 없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신랑과 저의 사이에서 생겨난 이 아기를...너무나 사랑하는 우리의 결과물이며 증거인 아기를...
버릴수는 없었습니다
아주 들릴듯 말듯한 약한 심장소리까지 들어버린 저는...아기의 심장소리를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6주가 된 우리 아기를...저는 그렇게 버릴수는 없었습니다
비록 축복은 받지 못하였더라도 엄마 아빠의 사랑속에서 태어난 우리의 아기를, 이미 아주 조그마한 심장까지 생겨 심장이 뛰고 있는 그 아기를 죽이는 짓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아기를 두번다시 갖지 못하게 될거라는 너무나 큰 이야기를 들었을때에는 이 아기가 제 인생에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기에 아기를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나로 인해서 신랑이 고통받게 된다면 저는 제 사랑을 포기하고 그를 부모님께 보내줄수도 있었습니다
부모자식간의 연을 끊자는 말씀을 하시는 아버님의 말씀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를 보며 어쩌면 내 행복이 그에게는 불행이 될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제 욕심만으로 그를 제 곁에 둘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기까지 지우라는 부모님의 뜻을 따를수는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내 모든것을 줄수있을만큼 사랑한 이남자...
이사람 또한 버릴수는 없었지만 이사람을 보낼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내게 남는 단 하나의 사랑이라도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내가 앞으로 살아갈수 있을것만 같았습니다
그러기에 부모님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그 말만은 들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사람이 내곁을 떠나면 난 숨조차도 쉴수 없을것만 같은데 아기마저도 하늘에 보내야 한다면 제가 또다시 어떻게 무슨 희망을 안고 살아갈수 있을까요...
아기를 지우고 조용히 헤어져 준다면 먹고 살수 있을만큼 경제적 지원을 해주시겠다라는 말씀까지 하셨지만 그말속에 부모님의 고통이 얼마만큼인지 알수 있었지만 또 부모님의 한줄기 희망이 그사람뿐이라는것 조차도 알수 있었지만 저또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사람을...보내야만 한다면......아기만큼은 제게 남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부모님이 이해하실수 없는 말도안되는 고집을 부렸습니다
절대 아기는 지울수 없다고...
그리고 그사람은 저를 선택해주었습니다
모든 짐을 싸가지고 사라지라는 아버님의 명에 그는 조용히 옷가지를 들고 내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해주었습니다
"너는 나 없이 살수 있어? 아기만 있다고 살수 있니? 나는....나는 못살거 같은데..."
추운밤이었지만 시골길을 걷고 걸어 힘들게 버스를 타고 올수 있었습니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오는 도중 몸이 너무 아파 몇번씩의 빈혈도 찾아왔지만 꾹 참고 버텨주길 바라는 엄마마음을 알고 있는지 우리 아가도 잘 참고 버텨주었습니다
오는 내내 둘다 말이 없고 눈물만 흘렸지만 우리 두사람은 서로 무슨생각을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를 위해 부모님의 마지막 소원까지도 저버렸던 우리 신랑...
한번 그를 버렸다는 죄책감이 들지만 두번다시 그를 놓치지 않을것입니다
저와 아기를 택해준 너무나도 어려운 결정을 한 우리 신랑이 항상 건강하길 바랍니다
무탈하게 회사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나와 아기를 바라보며 행복할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엄마 몸이 약한 탓에 힘들어하는 아기도 이러한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며 꾹 참고 건강하게 나와주길 빌고 또 빕니다
일을 할수 없는 저의 몸상태때문에 더이상 일을 할수도 없게 되어버렸고 신랑 월급으로는 당장 먹고살기 조차 힘들만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은 걱정이 따르지만 어려운 결정을 한만큼 저와 신랑을 힘내서 살아보려 합니다
단지 제가 받았던 고통을 우리 아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것이..세상의 빛을 보고도 축복받지 못하는 우리 아가의 탄생이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옵니다
하지만 우리 아가만큼은 큰 행복속에서 엄마아빠의 사랑속에서 건강하게 잘 클수 있도록 노력할것입니다
꼭 그렇게 키울것입니다..
항상 부모님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항상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그렇게 살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보다 더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도 많다는것을 기억하며 그렇게 살겠습니다
언젠가 부모님께서 용서해주실거라 믿으며...
주님..저희 부부가 잘 할수 있도록 용기를 주세요
아버지 어머니께 너무나 큰 불효...죄송합니다
그리고 나의 신랑에게 너무 미안하고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그리고.......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