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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여신[Rainbow Song]

강혜빈 |2006.12.06 17:15
조회 24 |추천 0


그렇게 가까이에 있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아이에 대해서도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이와이 슈운지. 예전부터 그의 얼굴을 보고 "악당같이 생겼다"는 생각을 많이 했더랬다. 덩치 좋고 무기 휘두르는 그런거 말고, 고도의 지능형 범죄게임으로 쫓는자와 당하는자 모두를 서서히 말려죽이는, 그러나 자신은 매우 냉혈한 범죄자. 확실히 그는 악당이다. 한편에게는 켜켜이 묻어두었던 아픈 기억을 되새김질 하도록 해 주기에, 다른 한 편에는 나에게도 영화처럼 안타까운 사랑 한번 찾아오길 바라는 사춘기 소녀의 꿈을 연장시키며 눈만 높여놓기에, 그는 정말 나쁜 인간이다.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현재에 만족하며 살려고 하는 현대인의 적이다. 그리고 나도 그의 수법에 여러번 당한 피해자다.


영화는 '늦어버린 사랑'에 대해 절절이 외친다. 수많은 멜로가 표방하는 사랑의 어긋난 타이밍에 대한 이야기. 이것이 관객들을 끄는 이유는 너무나 보편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사랑의 타이밍이란 결국 늦거나-늦지 않거나 (아쉽게도 회색분자는 허용치 않는다)이므로 어쨌거나 살면서 경험할 확률은 50%쯤 되는게 아닌가(따지지 말자. 나는 문과니깐) 그리하여 이와이 슈운지의 '마수'에 걸려든 불쌍한 관객들은 칼로리 소모해가며 울고짜고 고민하고 맘 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했던 늦은 사랑에 대해 저마다 떠올려 보게 될 것이다. '그 때 나는 왜 그를 놓쳤을까'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녀는 잘 살고 있을까?' 그리고 선택하면 된다. 한없이 우울해지거나 아련한 미소를 짓거나. 인간의 어떤 면을 자극하면 마음이 뭉클 해 지는지, 어떻게 하면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하게 되는지, 어떻게 하면 눈물을 흘리게 되는지 정확히 아는 그의 영화는 마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에게는 슬픈 사랑의 경험이 있는가? 그런 경험은 한번으로 족하다며 세상 아픔은 다 가진 것처럼 시 쓰고 놀고있지 말아라. 혹자는 사랑이 달콤하다 했지만 사랑이 달콤하다고 자신있게 손들 수 있는 사람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슬픔이고 아픔이다. 너무 사랑하면 마음이 달아서, 너무 안 사랑하면 그 자체로 불행하고, 이도저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관계는 억울하고 아까워서 슬프다. 사랑의 속성은 네거티브다. 그러나 맘 속 골방에 넣어둔 그 아프고 슬픈 기억들은 꺼내질 때마다 계속해서 덧칠되고 포장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영화 속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내 사랑을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두 시간 동안 이러한 사고과정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지루하다. 참 지루하다. 전개도 느리고. 심심하고. 똑같은 장면 반복되는 것처럼. 그런데 가슴이 먹먹해 진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씩씩해지리라 했던 수없이 많은 다짐들이 모래탑처럼 허물어진다. 사라진 줄 알았던 많은 기억과 감정들이 옳다구나하고 기어올라와서 당황스럽다." 당신의 뇌와 눈물샘에서 이루어진 화학작용들은 주인공들에 대한 동일시 결과 당신이 선택한 일이다. 당신은 이미 걸려들었다. 슈운지의 마수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내 경험을 현실적으로 직시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 일부러 그러고싶지 않아한다는 것. 나도 안다. 그러나 슈운지는 나보다 훨씬 더 먼저 알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그렇게 자주 나오던 액자식 구성. 그러나 그런 구성의 작품들이 흔히 그렇듯 결말과 관계된 것은 액자 속의 이야기이다. 하고싶은 말은 그 속에 다 있다. 어떤 면에서 액자식 구성은 반전영화의 육촌 형제 쯤으로 분류해도 될 것 같다. 지극히 예측 가능하고 수긍할 수 있는 반전. 그러나 그 반전에 당하는 사람이 관객이 아니라 둔한 주인공이라는 것만 다른. 이쯤에서 정말 궁금해 지는 건, 정말 남자 주인공은 모르고 그랬을까 아님 알면서도 그랬을까 하는 것이다. 정말 골때리는 건 현실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는 당사자조차도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인생은 이렇듯 편안한 의자에 기대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기에 흥미진진하다.


꿈을 꾸는 듯도 하고, 안개낀 듯한 일본영화 특유의 흐릿한 영상이 답답한 면이 없잖아 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주인공 이름도 금세 잊어버릴만큼 청순한 나의 기억력도 그 흐릿한 느낌만은 예쁘게 남기고 있는 것 같다. 남녀 주인공 둘과 함께 어우러진 파란 하늘이 선명했더라면 그 여운이 지금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쓰다보니 안티처럼 되어버렸지만, 나는 사실 이와이슈운지 빠순이다. 10년 가까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 러브레터와 이와이슈운지만의 그 감성이 어떤건지 말로 정의할 순 없지만, 목숨걸고 죽네사네하는 신파가 아니라 사랑인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한 알쏭달쏭하고 미적지근한 그 미성숙함이 난 너무 좋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다른 문제니깐 딴지는 다른 곳에서) 그런 의미에서 나와 같은 이유에서 빠순이 혹은 빠돌이가 되어버린 수많은 미련한 이들과 함께 되새기고 싶다. 

"혼자선 아무 것도 못하는 점도 좋아.

둔한 점도 좋아. 웃는 얼굴이 제일 좋아."


끝난 건 혼자 뿐이던 아오이의 닿지못한 사랑을 안타까워하며. 끝난 뒤에 영문을 알 수 없는 울음을 꺼이꺼이 토해놓는 멍청한 토모야를 괜히 탓하며. 그리고 '사랑은 타이밍' 이라는 변치않는 인생의 진리를 재확인하며.

근데, 수평무지개, 우리나라에도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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