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에 10개 솔드(sold)”, “던(done).” 7일 오전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19층 딜링룸. 구길모(37) 선임 외환딜러의 시선이 로이터통신 금융정보 등이 담긴 6개의 모니터를 뚫어지 듯 응시하고 있다. 입으로는 주문을 내고, 한 손으로는 매매 내용을 입력하느라 여념이 없다. 암호같은 대화는 한 딜러가 “1000만달러(1개=100만달러)를 달러당 918.9원에 사고 싶으니 팔라”고 하자 구 차장이 “오케이”로 답한 것.
1초 만에 수억원이 생겼다가도 ‘물거품’처럼 사라지다보니 자연스레 오가는 말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쉴새없이 울려대는 핫라인 전화 탓에 딜링룸은 말 그대로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는 풍경이다.
이날 오전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6원 오른 918.0원에 개장한 뒤 오전 한때 920선에 복귀했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허망하게 다시 910선으로 주저앉았다. 구 차장은 “정부의 시장 개입성 멘트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실탄’을 넣을 것이란 기대가 무너지면서 수출업체의 ‘네고’ 물량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 차장이 맡은 ‘스폿 트레이딩’(spot trading·현물환거래)은 한마디로 환율 변동을 틈 타 달러를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차익을 남기는 일이다.
“저 같은 경우 ‘포지션’(position·달러를 살지, 팔지에 대한 입장)을 하루에 100번 이상 바꿉니다. 이 중 50%를 맞추면 본전이고, 60∼70%면 딜러로서 능력을 인정받죠. 80%를 넘기면 그건 ‘신’(神)입니다. 저는 하루 최대 4억원까지 환차손을 봐도 되는 재량권이 부여돼 있지만, 그 수준이라면 딜러를 그만둬야죠.”
최근 환율이 ‘바닥’을 모른 채 급락하자 매매 추세도 바뀌었다는 게 그의 설명. “저는 매도건, 매수건 한 방향으로 2억달러까지 거래할 수 있는데 최근 시장 리스크(위험)가 커지면서 매매 규모는 줄어든 대신 회전량이 늘었어요. 쉽게 말해 ‘박리다매’하자는 분위기죠.”
환율이 7.90원이나 급락(916.4원)한 지난 6일 구 차장 손을 거친 외환은 무려 20억달러. 그는 “920선이 무너지자 막판 투매가 쏟아졌다”며 “장이 오후 3시에 마감되지 않고 10분만 더 갔어도 915원까지 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 차장은 후배 딜러들이 장 중에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다른 은행 딜러와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못하게 막고 있다. 딜러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면 취약한 한국의 외환시장은 한 방향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올해로 벌써 6년차. 점심을 자장면과 햄버거로 때우는 게 일상이 됐고, 화장실도 제때 다녀오지 못해 “안구건조증이나 방광염, 치질같은 잔병이 늘었다”고 한다. 가끔은 퇴근하고 나서도 불안감에 컴퓨터를 켜고 블룸버그통신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보통 딜러는 40대가 되면 현장을 떠납니다. 시장을 꿰뚫는 눈은 한층 넓어지는데 체력과 순발력이 따라주지 않아요. 물론 돈 버는 게 딜러의 최대 미덕이지만, 제 경우 이보다는 외환은행이 앞으로도 시장에서 메이저 위상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환율이 또다시 2.6원 내린 913.8원에 마감된 오후 3시. 구 차장은 안경을 벗고 엎드른 채 양 팔에 얼굴을 묻었다. 피말리는 하루의 전투는 마무리됐지만, 그는 또 다른 승부를 준비한다. 유럽·뉴욕 외환시장이 곧 문을 열기 때문에 지구 반대편의 딜러들과의 또 다른 ‘머니게임’을 벌여야 한다.
황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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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에 수억이라...
환율을 이용한 매매의 긴장감을 이루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선물옵션보다도 더욱 피말리는 게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식 그리고 선물옵션 ...여기서 좀더 발전되면 채권딜러,외환딜러..
게임중에서 가장 숨막히는 것이 머니게임이 아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