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새벽, 문득 영화가 보고 싶어져서, 뭘 볼까 고민하다가 어렵지 않게 이 영화를 선택했다.
이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던 사전지식은, 이제 막 사회에 입문한 풋내기 아가씨가 악마같은 상사 밑에서 비서일을 맡으면서 겪는, 뭐 그런 정도의 드라마. 그 정도만 기대하면서 영화를 봤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시각적 만족감이야 뭐 두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싶다. 중국영화에서의 화려한 색체와 현란한 연출의 그 만족감이 아닌, 헐리우드식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그럼 화려함. 바로 패션.
주인공 아가씨도 크고 선명한 이목구비에 눈이 흐뭇했음은 물론이고, 연출이나 카메라워크도 꽤 괜찮고 무난했다.
보면서 가장 절실히 느낀 것은, 여자가 아주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사랑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 내가 여자이기에 그런것이 더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 여자로 살면서 가장 큰 보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문제는 성별을 떠나서 인간이라면 제일 절실히 바라는 것이겠고, 이런 발언은 물론 지금의 진보적인 여성단체에게 몰매를 맞을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긴 하지만, 여자가 남자보다 감성적이기 때문에 남자보다는 더 타인에게 기대려 하는게 크다는 얘기다. 같은 의미로 여자는 힘들 때 타인에게 그 고민거리를 털어 놓으면서 위로를 받고 다시 힘을 내는데 반해, 남자들은 혼자 고민하고 일이 다 해결 하면 그때서야 타인에게 얘기한다. 이건 본능적인 성향의 차이다.
그리고 이제 그에대해 더 깊게 얘기해 보자. 남자보다는 여자가 '일'에 대해 연연하는 것이 적은건 공공연한 사실이 아닐까? 결혼 후 여자가 일을 하는 것은 남자처럼 생계를 위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나, 조금 더 여유로운 가계를 위해서가 아닌가. 여자인 입장에서 안타까운 얘기지만 IMF때 기혼인 능력있는 여자가 상대적으로 능력없는 기혼인 남자보다 더 빨리 해고당한 것도 그 때문이고, 이건 어머니만 있는 가정을 제외한 모든 가정에서 당연한 사실이고. 당장 나도 내가 남자였으면 미래의 내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림 그리지 않았을껄.
남자가 식량(돈)을 벌어오고, 여자가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태초적부터 해온 본능적이다 싶은 습관이니, 쉽게 발끈하여 남녀차별을 운운하면 안될 정도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싶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이론에 맞출 수는 없는 법. 여자들 중에서도 '일'을 더 중시하는 여자들은 그래서 당연히 사랑을 포기하고, 가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만약 그녀가 남자였다면, 일을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겠지요"
앤디(앤 헤서웨이 분)의 이 대사 한 마디가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자 주제가 아닐까. 위에 내가 구구절절히 썼던 그 이유로, 아직까지 사회는 남자들이 일을 더 하고 있고, 그래서 남자들이 일을 열심히 하면 멋진 커리어맨이고, 유능한 가장이지만, 여자들이 일을 열심히 하면, 그건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고, 워커홀릭이며, 어머니일 수 없고, 독종이고, 사랑스럽지 않은 여자가 될 뿐이다. 아직까지는.
이 영화는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고, 그러한 여자의 전형으로 미란다(메틸 스트립 분)를 내세웠다. 극좌라고 해야할까? 그에비해 앤디의 캐릭터는 그런 극단적인 모습을 덜고(어느 것이든 극단적인것은 좋지 않으므로) 조금 더 유연하고, 앞으로 추구해야 할 여성상을 그린게 아닐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여자들을 위한 성장 드라마 정도?
그래서 이 영화가 여자들에게 다분히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간파하고 받아들였든, 간파하지 못했든 간에 무의식 상태에서 그런것들이 여자들에게 깊이 각인되었을 테니까. 그래서 남자들이 이 영화의 인기를 이해 못하고 그저 '하이 패션이 난무하는 드라마'정도로만 생각하는거고. 이건 남자를 괄시하는 문장이 아니라, 사람은 전부 자기 입장만 알 뿐, 상대방의 입장이나 생각은 알 수 없으니까 당연하다는거다. 그저 최대한 할 수 있는건 이해하는 것 뿐.
서로 평생을 여자와 남자로 살 수 밖에 없고, 서로가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면서도 그렇게들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일 정도로 편을 갈라 싸우는 것도 그것때문이리라.
아무튼 이 영화는 굉장히 행복한 결말의 러브스토리도 아니고, 눈물 떨구게 하는 슬픈 영화도 아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장르조차 애매한 영화. 하지만 나는 이 영화 덕분에 깊이있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정도면 별 세개 반이 아깝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