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가 난무하는 복수극 3부작을 통하여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된 박찬욱 감독이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이 바로 이다. 일단 제목부터 '박찬욱 스러움'이 묻어나지만 놀랍게도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이며 관람등급은 12세이다. 박찬욱감독의 마니아라면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아니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 맞는 말일 수 있겠다.

[무대인사를 하고 있는 박찬욱 감독과 주연배우 임수종, 정지훈]
박찬욱 감독이 HD 저예산 영화를 제작하는데 있어서 쉬어가는 느낌으로 영화적 실험을 많이 하겠다고 밝힌바가 있다. 하지만 박찬욱은 1일 기자시사회에서 "정지훈과 임수정이 캐스팅 되면서 관객에게 친절하게 바뀌게 되었다"라고 밝히며 최대한 관객의 시각으로 많이 수정했다고 언급했다. 과연 12세 관람의 박찬욱스러운 영화는 어떻게 나오며, 박찬욱스러운 로맨틱 코미디는 어떻게 나올것인가? 개봉전부터 매우 주목받은 이 영화에 대해 나름대로 리뷰를 해본다.

[무대인사에서 다정한 눈빛을 주고 받는 임수정, 정지훈]
12월 1일 박찬욱감독의 의 영화가 언론/배급 시사회를 가졌다. 역시 박찬욱감독이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월드스타 정지훈이 캐스팅된 영화여서일까? 평소 한산한 기자시사회의 모습과는 사뭇다르게 영화시작 전 티켓배부처 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국내외 언론 취재진들이 수없이 몰려 이 영화에 관심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수 있게 해주었다.
영화의 관람등급과 색깔이 변경되었다 하더라도 역시 박찬욱은 박찬욱이였다. 12세의 로맨틱코미디 장르라고 하면 다소 유치스러울 수 있지만 박찬욱은 영화에서 담고 있는 뽀얀 파스텔톤의 화면과 달리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정상적이지 않은 정신병동의 환자간에도 사랑이 있을 수 있다. 그들만의 의사소통을 그려내고 있는 이 영화는 '정지훈'의 스크린 처녀작의 순조로운 안착을 알렸으며 망가진 연기로써도 귀여운 매력을 충분히 발산시킨 임수정이 매우 눈에 띄는 작품이다.

[간담회 종료 후 박수치는 두 사람]
"복도쪽 형광등은 더 붙임성이 있으려나?" 라고 중얼거리며 자기가 사이보그라고 믿는 영군(임수정)은 형광등, 자판기와 대화하며 밥에는 입도 안 대며 도시락에서 각종 건전지를 들고다니며 자신을 충전하려고 한다. 영군의 할머니는 자신이 쥐라고 믿고 무만 먹다가 하얀맨(의사)들한테 잡혀갔다. 하얀맨들을 다 죽이고 할머니를 구하고 싶은 영군,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선 하얀맨들을 다 죽이고 구해야 하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정심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뭐든지 훔칠 수 있다고 믿는 먼저 입원한 일순(정지훈)에게 자기 동정심을 가져가 달라고 부탁한다.

[캐릭터 때문에 살이 더 빠진 임수정. 하지만 그녀는 아름다웠다]
라는 제목의 의미는 '싸이보그지만'과 '괜찮아 사이에 '사랑해도' 또는 '밥 먹어도'가 들어가야 좀 더 명확해진다. 즉, 일순과 영군의 사랑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사랑처럼 삼각관계나 신분의 차이, 부모의 반대도 없다. 단지 이 사람에게 밥을 먹이는 것만이 자신의 사랑의 표현인 일순과 그에게 동화 되어 밥을 먹게 되는 영군의 눈물겨운 사랑이 스크린 대부분을 채우기 때문이다.
사랑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애절함과 절실함을 심어줄 갈등의 요소가 없는 것이다. 두 남녀 사이를 가르는 걸림돌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 정도다. 여자는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고 남자는 반사회적 경향을 지닌 강박장애 환자다. 아무리 각기 다른 증세를 지닌 정신병자 사이라지만 상대방에게 동정심을 갖고 사랑을 나누게 된다는 줄거리는 평이하다. 그래서일까. 박찬욱 감독은 등장인물들의 엉뚱한 행동과 재치 넘치는 상황 설정에 주력하며 관객을 유혹한다. 박 감독은 "사랑과 웃음이 섞여 있어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라고 말하지만 은 판타지 멜로에 가깝다.

[귀여우면서 섹시한 의상을 입고 포토타임에 입장하는 임수정]
현실과 상상의 구분이 흐릿하고, 관객은 주인공들에게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그들의 머리 속으로 초대받은 느낌이 난다. 신세계 정신병원이란 공간도 마치 동화처럼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현실감이 없으며, 상상 안과 밖이 비슷한 셈이다. 영군의 손가락은 기관총으로 변신해 의사들을 공격하고 영군의 침대는 무당벌레처럼 작아져 하늘을 난다. 일순은 요들송을 잘 부르는 병원 환자의 목소리를 훔쳐 영군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180도 돌아간 영군의 머리를 잡고 입 맞춘다. 중요한 건 줄거리가 아니라 이미지이며 사건이 아니라 정서다. 탄탄하고 논리 정연한 이야기를 추구하는 관객에게는 정신없는 푸닥거리같이 보일 테고 새로운 영화 독법이 궁금한 관객에게는 이미지들의 성찬이 될 듯하다.

[마지막 노출 신에 대한 질문에 민망해 웃는 정지훈]
이 영화의 특징 중 또하나는 보통 주변 인물들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보조 장치로 쓰인다면 에선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그들만의 세계가 주어진다. 너무 겸손해서 앞으로 걷지도 못하는 신덕천(오달수)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언제나 주기만하는 탁구는 없을까” 따위 하나마나한 고민에 하나마나한 이야기만 한다. 중력을 이기고픈 왕곱단(박준면)은 두발을 비비면 하늘로 떠오르는 양말을 개발했다고 믿고 밤마다 비행한다. 이야기는 주변 인물들의 원심력을 타고 퍼져나간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당당한 박찬욱 감독]
박찬욱 마니아라면 충분히 환호하겠지만 보편적인 웃음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딸 아이도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박 감독의 의욕은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들 만큼 12세에게 설명하긴 불친절하다.
간담회에서 임수정은 자신이 연기한 싸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캐릭터에서는 "성 구별 없이 7, 8 살 아이의 심정으로 영군을 연기했다. 특히 감독님이 우리가 대본을 이해 못하니 읽지말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와라라고 할 정도로 마음편하고 느끼는대로 연기하라 했다"고 밝혔다. 또한 스크린 첫 데뷔작인 정지훈 역시 "대본을 보고 많이 어려웠고 생각을 많이 했다. 편하게 노는 마음으로 촬영을 하지 못한것이 아쉽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간담회장에서 질문에 답변하는 임수정과 정지훈]
[이날 정지훈은 첫 기자시사회여서 인지 긴장한듯 보였다]
확실히 이 로맨틱 코미디에는 "박찬욱 감독이 손을 대면 사랑 이야기도 달라진다"라는 말이 푹 묻어나온다. 피비린내 나는 장면에 의존하지 않고 엉뚱한 유머와 재치로 자신만의 독특한 연출을 해낸것이 사실이다. 거침 없이 엉뚱한 유머를 끌어 들이는 그는, 여전히 세상과 인간성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사이에서 배회하는 듯 보인다. 박찬욱의 영화답게 연출 세공도 수준급이다. 일급 스탭들이 참여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음악, 시각 효과들도 나무랄 데가 없다. 특히 HD 기술의 특장점을 살려 낸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주연배우 정지훈은 비교적 무난하게 스크린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포토타임에 박찬욱 감독과 임수정, 정지훈이 포즈를 잡고 있다]
임수정은, 만약 영화상 심사위원들이 그에게 여우주연상을 주지 않으면 제 정신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경이로운 연기력을 선보인다. 다만 정지훈과 임수정의 스타 배우의 캐스팅에서 오는 상업적 요소를 본다면 비주얼적인 영화 미술과 독특한 소재만 가지고는 상업적 성공을 이루기는 어렵다고 느껴진다. 일반 관객에게 얼만큼 어필이 될수 있을지는 매우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