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터와 장날·장꾼의 부활을 꿈꾸며(조찬용)
(장날과 3.1 만세와 남명의 부활을 위해)
천안시 병천면에는 아우내 장터가 있다. 1979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아우내 장터 봉화 축제는 유관순 열사를 중심으로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났던 독립만세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축제로, 봉화제와 횃불시위, 기념식 등을 하고 있다. 병천면은 유관순 열사를 비롯하여 임란시에 진주대첩의 김시민 장군과 독립운동가이며 정치가인 조병옥 박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인구 6천여명인 병천면 아우내 시골장터에는 순대집만 20여곳이 성업 중일 정도로 병천순대도 유명하다. 서울에서 병천순대 상호를 단 음식점이 늘고 있으며, 순대맛을 보기 위해 단체 관광객도 많이 찾아오고 있다.
우리 합천지역에도 아우내와 같은 삼가(三嘉)·합천·초계·가야·묘산·대병 장터와 장날, 그리고 3.1 독립만세 운동이 있다. 하지만 그 중요성과 가치성을 우리들은 망각하고 있다. 특히 유통구조의 디지탈화로 장터와 장날, 장꾼은 퇴락해 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작금의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만으로는 그 영화(榮華)를 되찾을 수는 없다. ‘유관순과 독립만세 운동, 장터와 장날·장꾼, 봉화와 햇불 등 축제, 병천순대'와 같이 테마가 어우러져야만 그 시끌벅적하고 사람 내음이 나는 장(場, 장터)과 장날, 장꾼이 그나마 복원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장(場), 즉 장터라는 공간과, 장날이라는 시간과, 장꾼이라는 사람을 매개로 1919년 기미 3.1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일본측에서 축소한 공식기록에 3월 18일, 3월 23일 양일간(당시에는 음력 장날로, 2월 17일, 2월 22일임) 삼가 장터 독립만세 운동에 삼가 쌍백 가회 대병 봉산 대양 용주 대의 신등 생비량 10개면에서 1만2백명(합천지역 전체에는 14,600명(삼가10,200, 대병3,000, 합천600, 가야450, 초계270, 묘산80))이 참여했고, 순국자는 5명(합천지역 전체에는 11명(삼가5, 합천4, 초계2)), 부상자는 20명(합천지역 전체에는 34명(삼가20, 초계10, 합천4))이며, 체포자는 38명(합천지역 전체에는 130명(대병54, 삼가38, 합천17, 초계14, 해인사7))으로, 4월 1일 아우내 독립만세 운동시에 참여자 3천명, 순국자 11명, 부상자 30명, 체포자 수십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삼가를 비롯한 합천지역에서의 독립만세 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비중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는 합천지역 전체에 무려 160명이 순국하고 518명이 부상했으며 290명이 체포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를 근거로 하면, 삼가 장날 독립만세 운동에는 40~80명의 애국지사들이 순국한 것으로 판단된다.
금번 6월에 ‘삼가 장터 3.1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기념비 건립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기념비를 장날, 장터, 장꾼과 유리(遊離)된 장소에 세운다면, 시공인간적(時空人間的)인 독립운동사를 함몰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후세들에게 단지 기념비 또는 기념탑이라는 조형물을 물려줄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삶의 애환과 의지가 깃든 장터, 장날, 장꾼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후세에 물려주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삼가 장터 독립만세 운동 기념비는 장(場), 장날, 장꾼이라는 역사적인 문화의 복원을 통하여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한다. 장터와 장날을 통해 양반, 지주, 소작농, 평민, 머슴들은 모두가 하나의 문화를 공유했다.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은 평민, 머슴, 아녀자(兒女子)를 불문하고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휴식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하여 정보와 인정을 나누는 날이며, 또한 치열하고 모질게 살아온 민중들의 삶, 바로 그 자신들을 상징하는 날이기도 했다.
장, 장날, 장꾼에서 3.1 독립만세 운동이 점화된 것은 300년 전부터 형성되어 온 장(場)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장(장터)에서 한마당 걸쭉하게 펼쳐지는 장날이라는 시간적인 공간과 장꾼이라는 사람이 결합하였기에 가능했다. 장터와 장날, 장꾼을 중심으로 불같이 3.1 독립만세 운동이 번져나간 것도 이런 이유이다.
이 중에서 삼가 장날은 그 역사성이 유구하다. 영조 정조 때에 오늘의 모습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삼가 장날이면 저멀리 충청도 금산 인삼과 경기도 안성 유기까지 보부상들이 가지고 왔었다. 삼천포 등 남해안의 풍부한 해산물과, 창녕 고령 진주 등지에서 오는 소장수, 풍성한 농산물, 삼베, 모시, 문종이, 숯 등 땔감시장, 옹기그릇, 입맛 당기는 돼지국밥과 막걸리, 쌍백 가회 대병 봉산 신원 용주 묘산 대양 초계 대의 생비량 신등 단성 안간 집현 신반 성주 거창 등에서까지 밀려오는 장꾼들!
장(장터), 장날, 장꾼은 고향을 떠난 우리들에게 단지 그리운 향수를 달래기 위한 관념적인 것들이 아니다. 정을 나누고 소식을 전하고, 생필품을 사고 팔고, 휴식과 풍류를 즐기고, 악착같이 우리가 생활한 구체적인 장소와 날(때)이었으며, 민족의 독립과 자주를 소리 높혀 부르짖었던 피와 땀과 눈물로 점철된 역사적인 현장이요 시간(날)이며, 우리 자신이다.
어느 장소에서, 어느 날, 어느 사람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고 독립만세를 외쳤는가를 기억하기 위해서도 역사적인 장(場)에 3.1 독립만세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념비는 단지 관광을 위한 전시적인 조형물로 전락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장터와 장날·장꾼, 그리고 3.1 독립만세 운동 기념비(탑)는 이런 역사적인 의미를 부활하는 첫걸음으로 인식해야 한다.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인 복원을 통하여 살맛나는 고향 건설에도 이바지하는 혜안(慧眼)을 가져야 한다.
삼가를 비롯한 남부 쌍백 가회 대병 등에는 아직 면민의 날이 정해져 있지 않다. 먼저 4개 지역면민의 날을 매년 3월 22일 삼가 장날에 개최한 후 확대했으면 한다. 즉, 가칭「남명 및 삼가 장터 3.1 만세 기념 장날 축제」라는 이름으로 남명선생과 의병 및 삼가 장날 독립 만세운동을, 300년 전부터 형성된 그 크고 화려했던 삼가 장날과 장터와 장꾼과 연계하여 축제의 한마당으로 살려 나갔으면 한다.
그러므로 순국의 장소이며, 장터와 장꾼과 연계되고, 삼가지역의 중심(센터)인 삼가면소에 삼가 장터 3.1 독립 만세운동 기념비(탑)를 세워야 한다. 삼가지역 발전논리와 애향탑이나 향후 건립해야 할 남명공원(삼가에 남명 동상 등 건립)을 건립하는 것과는 판이하기 때문에, 삼가 도심지 밖에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1927년 3월 20일에 대병 상백(평지리 소재) 백산(운곡리 소재) 가회 삼가 등 5개면 2천여명이 삼가면소내에 모여, "중등교육기관인 삼가농업보습학교 설립을 위해 5개 면민이 대결속하여 삼가농업보습학교 설립을 관철시키고, 설립비는 5개면의 호세(戶稅) 부과등급 표준 등에 따라 삼가 7천원, 대병 1천5백원, 가회 1천5백원, 상백 1천5백원, 백산 5백원을 부담하며, 창립위원은 대병 송헌식, 상백 정의규, 백산 김병규, 가회 윤병규, 삼가 趙순규로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여 추진한 결과, 1928년 12월에 삼가에 삼가농업보습학교가 설립(그 후 1938년 합천읍으로 이전, 합천중학교가 됨)되었다는 사실에서, 삼가 장날 3.1 독립만세 운동의 또 다른 결집력을 보여 준 사건이다.
남부 4개면과 봉산 대양 용주 생비량 대의면도 포함한 삼가 장날 3.1 독립만세 운동 당시의 주체들이 결속과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삼가 장날의 화려한 부활과 3.1정신과 남명정신을 선양하기 위해서도, 삼가면소내에 기념비(탑)를 건립하고, 매년 3월 22일 장날에「남명 및 삼가 장터 3.1 만세 기념 장날 축제」를 남명선생 선양회와 각 면 청년회 및 체육회 등이 주축이 되어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하여 매년 3월 22일 삼가 장날을 한마당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켜 나가자. 병천 아우내에서 25년 전부터 개최하고 있는 봉화 축제보다 더욱 알차고 내실있는 장터와 장날, 장꾼을 연계한 우리 지역만의 문화적 역사적 부활을 통하여, 후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지역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하자. 이는 지금 추진하고 있는 삼가 장터 3.1 독립만세 운동 기념비(탑) 건립에 관계한 모든 사람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책무이다. 우리에게는 남명(南冥)과 의병(義兵)이라는 걸출한 인물과 자랑스런 사건, 테마와 소재가 있지 않는가. 그리고 병천순대와 아우내 장날보다 더 좋고 큰 한우고기와 삼가 장날도 있지 않는가.
3.1 독립만세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난 대병과 합천읍, 대양, 초계에도 장터, 장날, 장꾼과 연계한 지역문화를 특화하는 지혜를 모으자. 또한 각종 축제와 행사 때마다 기관장이나 몇몇 단체들이 주인인양, 인사와 축사, 격려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주객이 전도된 잘못한 축제와 행사문화를 과감하게 청산하여, 모두가 주인인 한마당 축제와 행사문화를 발전시켜 나가자. 합천지역에서 기미 3.1 독립만세 운동시에 모두가 하나되어 일제의 야만성에 항거하고 민족의 자주를 소리 높혀 부르짖은 그때와 같이 모두가 하나되자.
*첨언 : 매년 합천에서 개최되고 있는 대야 문화제의 명칭 변경 검토와 아울러, 대야 문화제 때 제사를 지내고 있는 신라인 죽죽(竹竹)보다는 삼가 외토리에서 남명(南冥)을 제사 지내는 의식으로 바꾸길 제안한다.
-2003. 6월, '삼가 장터 3.1 독립만세 운동 기념비 건립 추진위원회'
발기인 모임을 끝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