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공항에 도착했을 땐, 얄상한 비가 환영을 대신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미야자키의 하늘은 비에 아랑곳없이 파랗고, 쟈스민의 지독한 향기는 우리들 주변을 맴 돌았다.
알록달록하게 치장을 한 양귀비는 도도하게 앉아 미소 짓고 있었다.
일본의 문인들과 우리들은 국가간의 쟁점들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서로에게 그다지 큰 이슈는 되지 않았다. 사실, 서로 간에 현 정치적인 사안들은 질문을 금하기로, 그래서 양국간의 만남이 서로에게 상처가 아닌, 사랑으로 끝맺음 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로 무언의 약속이 되어 있었다.
공항에서 우릴 마중한 것은 비록 봄비만이 아니었다. 미야자키의 에세이스트 ‘와다나베 쯔나모도’ 회장과 에세이클럽회원들, 우릴 백제마을로 안내할 미야자키 펜클럽회원인 시인 '미나미 쿠니카즈'를 비롯한 많은 일본문인들이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공항입구에서 맞아 주었다.
그들의 옆에는 미야자키 소년합창단과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일본 땅에 발을 딛기 전까지만 해도 여러모로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들은 오직 손님으로만 우릴 대해줘서
마음이 편했다. 물론, 각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나왔고 신문사에서도 문인동정에 대해서만 취재를 하였다.
세미나를 마치고 양국간의 문인들은 만남의 장을 마련하여 서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 일본에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가와바타 야수나리가 “산맥 전체가 불타는 듯하다.” 라고,서쪽산맥으로 넘어가는 노을에 반해 머물렀다는 그 호텔에서 우리들은 문학의 정기를 받기위해 여장을 풀었다.
호텔 정문에 가와바타의 문학비가 외롭지 않게 서 있기에 비를 맞으며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일찍 서둘러 호텔정문에 세워진 버스에 올라탔더니 일본 문인들이 일렬로 줄을 맞춰 손을 높이 치켜들고 흔들었다. 한두 번 흔들고 말겠지 했는데, 그들은 버스가 자신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흩어짐 없는 굳은 자세로
손을 흔들었다. 흡사 전쟁터로 나가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 듯, 그렇게 하니 일행 중 한 사람이 “우리가 징병 가냐?”라고 해서 모두 파안대소를 하였다.
버스는 난고 손(南 鄕村)에 자리한 백제마을을 향해 떠났다.
섬나라답게 도로는 굽이굽이 휘어져 감기듯, 작은 어항(漁港)이 자주 나타났다. 세계 삼대 미항이 아름답긴 하지만 아담한 어항들은 인간의 심연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삶의 실체와 잠재된 그리움을 던져주므로 상당한 미적 감각을 안고 있었다. 혹시, 우리 땅의 작은 어항들에 길들여진 나의 두 눈과 마음의 잔해들로 하여금 세계의 미항들 보다 초라한 어항에 미련을 두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매끄러운 물결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촌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우린 긴 시간 끝에 난고손에 도착 했다.
오락가락하던 비는 난고손에서는 좀더 많이 내렸다. 마을 입구부터 한글로 된 백제마을이란 입간판이 뚜렷이 서 있었다. 가슴이 설레며 흡사 우리 땅 백제마을에 견학을 온 기분이 들었다. 난고손은 그렇게 우리들을 맞이하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기다리고 있던 마을 사물놀이패가 환영의 한 판을 크게 놀기 시작했다. 역시 감격을 하여 이상하게 눈동자가 흐릿해 짐을 느꼈다. 마을 촌장은 고바우영감의 마스코트인 모자를 쓰고, 백제마을 박물관 관리자들과 통역을 대동하여 함께 입구에서 우릴 마중 나와 주었다.
백제박물관 안에는 지나온 백제의 1,400년간 역사를 서술하고 있었는데, 그곳의 주인공인 백제왕족, 정가왕(禎嘉 王)과 그의 아들 복지오(福智五)의제를 천년을 이어 지내오고 있는 사연을 안고 있었다. 그곳에는 백제왕의 전설이 담긴 귀중한 사료들과 학술적인 연구대상의 고대사들이 남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백제왕의 전설로 남은 자료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고 촌장이 상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난고 신문신사(神門神社)에는 정가왕이 있고, 본성의 신사에는 복지왕의 제신이 모셔져 있는데, 해마다 본바닥 사람들의 존경하는 마음과 숭배를 받고 있다고 한다. 박물관에서는 그들의 연례행사를 영상으로 관람객에게 보여 주었는데, 어딘지 일본사람들의 옷차림에서 어색함을 느꼈지만, 그들은 백제의 멸망을 가슴으로 아프게 받아들이며 그네들의 역사로 흡수하고 있었다. 멸망한 나라를 버리고 훗날을 기약하며 이국에 뼈를 묻은 우리의 선조가 이국의 역사가 되고 전설이 되어 버렸다. 언젠가는 돌아가리라 다짐하며 눈물을 흘렸을 망국의 왕은 결국, 한(恨)만을 남겼고 왕을 따라 나라를 버린일행의 후손들이 터를 일궈 천년의 갈피를 넘기고 있었다.
신사의 지붕과 박물관전체의 바닥에는 한국에서 실어온 기와와 돌을 깔았으며, 한국인 기술자들이 건너와 건립하였다면서 자신들의 노고를 자랑했다. 왕족의 넋을 위로하는 행사인 ‘시와스마츠리’라는 제신은 음력 12월경에
개최가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곳엔 왕족의 고분이 실제로 존재한다. 고대사의 수수께끼와 전설적인 난고손이었다. 현재 난고손의 사람들은 백제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의 부여와 자매결연을맺고 있다. 흩뿌리던 빗줄기가 조금씩 거칠어지고 우린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역사의 서글픔을 되새겨 보았다.
차창으로 비춰진 촌장의 일행들도 한 줄로 길게 서서 징병 가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 듯, 그렇게 비를 맞으며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흔들고 있었다.
*실제, 일본 난고손의 백제마을을 가 본 사람도 많겠지만 가보지 않은 사람도 한번쯤은 가서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