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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

조은석 |2006.12.13 20:20
조회 95 |추천 2


현명한 사람은 남의 실패를 자신의 교훈으로 받아들일 줄 알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실패를 보고서도 교훈을 생각할 줄 모른다. (Wise men learn by others` harms, fools scarcely by their own.)’

한국 축구가 또 다시 패배공식을 답습하며 이슬람 징크스에 무너졌다. 대한민국 아시안 게임 대표팀은 12일 밤(한국 시간) ‘도하 아시안게임 2006’ 남자 축구 준결승전에서 ‘중동의 복병’ 이라크를 만나 0-1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지난 2002년 홈에서 펼쳐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도 이란과의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금메달 도전에 실패했던 한국 축구는 고비 때마다 이슬람의 끈적거리는 수비 축구를 상대로 패배공식을 되풀이하며 무너져왔다.

▲ 철저히 ‘패배공식’대로 무너진 한국

한국은 이날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볼점유율 75% 대 25%, 슈팅수 20 대 6, 코너킥 18 대 1을 기록하는 등 경기를 완전히 압도했다. 그러나 이라크의 밀집 수비를 뚫지 못했고, 단 한번의 실수로 내준 위기가 실점으로 이어지며 패하고 말았다.

이라크를 상대로한 패배는 ‘이변’임에 분명했지만 ‘불운’했다고 평하기엔 우리에게 ‘데자뷰(deja vu)’와 같이 낯익은 장면이었다. 한국은 이와 유사한 충격패를 수차례 당해왔음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일까.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변함없는 모습으로 실패했다.

심판의 노골적인 편파판정과 페어플레이 정신을 잃은 이라크의 교활한 시간 지연 행위는 억울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견된 위험 요소’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제를 지적할 수 밖에 없다.

▲ 상대 밀집 수비에 허둥지둥… 단조로운 공격루트

애초부터 한수 아래로 평가됐던 이라크가 수비 위주의 역습 작전으로 나서리란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한국은 상대의 중앙 밀집 수비를 상대로 좌우측면 공격만을 고집한 단조로운 공격 루트로 일관해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의 공격 루트는 좌측 40%, 우측 40%, 중앙 20%로 기록됐다. 무려 80%의 공격이 측면으로 집중된 것이다.

측면을 통한 공격도 매끄럽게 이어진다면 충분히 효율적인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측면에서의 부정확한 크로스가 중앙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김동현이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기 전까지 공중볼을 제대로 확보해줄 선수마저 그라운드에 없었다. 무려 18차례의 코너킥 기회가 주어졌고, 상대팀이 신체적인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 못했음에도 한국은 제대로 된 세트피스 공격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측면 공격이 계속 실패했음에도 중원 지역을 통한 변화는 시도되지 않았다. 지난 10월 시리아와의 아시안컵 예선 경기에서 보인 국가대표팀의 모습과 같았다.

경기를 계속 주도하고 있음에도 실제로 이뤄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볼을 잡고 공격을 시도했지만 상대 밀집 수비를 공략할 해법을 찾지 못했다. 몇 차례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지만 이마저도 마무리의 세밀함 부족에 골운마저 따라주지 못하면서 득점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물론 결정적인 기회도 있었다. 그 장면에서 볼의 궤적이 1cm만 틀어져서 골이 들어갔다면 경기는 감독이 원하던 방식으로 풀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득점에 실패했다. 골운이 없었다기 보다 골을 넣지 못했다는 것이 정확하다.

이같은 흐름으로 선제골 획득에 실패한 한국 축구가 한수 아래의 약체로 평가된 팀들을 상대로한 경기에서 고전해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 한 순간의 실수로 실점 허용… 너무도 쉽게 무너진 수비진

거듭된 공세 시도에도 골을 뽑지 못하면 총공세를 펼치기 위해 선수단 전체가 전진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상대팀은 이로 인해 생긴 배후를 노리고 날카로운 역습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최후방 수비수가 어김없이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고, 실점으로 이어진다.

이라크와의 경기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전반 23분에 선제골을 내줬다. 단번에 이어진 이라크의 스루패스가 너무도 쉽게 한국 수비의 배후를 찔렀고, 칼레프 유네스가 한국 문전으로 달려들었다. 유네스는 김영광을 가볍게 제치며 빈 골문에 슈팅을 연결했지만 골라인 앞에서 김진규가 육탄 방어로 이를 저지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흘러나온 볼을 무즈벨이 재차 헤딩으로 연결하며 끝내 득점에 성공했다.

이 장면에서 상대의 스루 패스를 통한 역습을 허용하는 것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지만 김진규가 육탄 방어로 골라인 앞에서 볼을 처리했을 때는 김영광 골키퍼를 비롯해 한국 수비수들이 자기 진영으로 돌아온 뒤였다. 수적으로 열세에 있던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2선에서 침투한 무즈벨의 헤딩을 자유롭게 내둔 것은 불운으로 설명하기에 너무도 허술한 수비였다. 준비되지 않은 수비, 약속되지 않은 조직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은 지난 10월 시리아와의 아시안컵 예선 홈 경기 당시에도 단 한번의 역습으로 동점골을 내주며 비긴 바 있다. 너무도 쉽게 상대의 스루패스로 배후를 허용했음에도 1차적인 공세 시도를 막아섰다. 그러나 수비수들이 다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2차 슈팅을 막지 못하며 골을 내줬다. 수적 열세 속에 상대 역습은 불가항력적이지만 수적으로 대등한 상황에 맞은 2차적인 상황은 조직되고 약속된 플레이가 있었다면 자리에 선 채로 허무하게 골을 내주지 않을 수 있었다. 바로 두 달 전에 같은 방식으로 골을 내줬음에도 전혀 대비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중동팀의 빠른 역습에 의해 골을 내준 장면은 비일비재했다. 이란과의 아시안컵 예선 경기에서의 막판 동점골 허용이라는 최근 경기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 오만 등의 팀들은 물론 심지어 베트남에게 까지도 역습을 통한 실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같은 방식으로 골을 허용하고 있다.

▲ 골키퍼의 오버액션, 축구의 정의마저 훼손된 억울한 패배

선제골 득점 이후 이어진 이라크 선수들의 노골적인 시간 끌기와 거짓된 부상 연기, 쉴새없이 이어진 골키퍼의 시뮬레이션 액션은 경기 막판에 선수들은 물론 경기를 지켜본 모든 팬들을 분노케 했고 패배감을 짙게 했다. 이라크의 행동은 비스포츠적 행위이며 축구의 정의를 훼손한 행동이다. 특히 중동팀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장면이다.

페널티킥을 얻기 위해 이어지는 공격수들의 시뮬레이션 액션 뿐 아니라 시간 지연을 위한 수비자의 시뮬레이션 액션에도 ‘직접 옐로카드’, ‘직접 퇴장’과 같은 강력한 제재가 취해져야할 시점이다.

한국 축구에게 상대팀의 이같은 매너 없는 플레이도 낯선 장면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04년 1월, 카타르 친선 대회에서 정확히 겹쳐지는 경기가 있었다.

당시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준비하던 한국 올림픽 팀은 모로코 올림픽 팀과 결승전에서 만나 1-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당시 경기는 한국의 일방적인 공세였고, 모로코는 이날 경기에서 드러난 한국 축구의 패배공식처럼 밀집수비에 이은 역습을 통해 득점에 성공했다. 당시 모로코의 골키퍼는 이날 이라크 골키퍼와 마찬가지로 수차례 비상식적인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시간을 지연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자행했다.

카타르는 당시 대회와 이번 아시안게임의 개최지다. 당시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들 가운데 김영광, 김치곤, 김동현, 김두현, 최성국이 이날 경기에도 출전했다. 하지만 억울하고 분통터진 패배였다는 공허한 메아리만 있었고, 사후 대책 수립은 없었다. 우리는 그때와 똑같이 화만 내다가 무기력하게 당했다.

당시 우리는 다음번에 이겨서 되갚는다고 다짐할 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런 행위가 그라운드에 일어나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다른 누가 해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위험 요소는 우리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저지할 필요가 있었다.

▲ 비난의 화살이 아닌 철저한 대비책 마련 촉구해야

한국은 분명 이라크보다 우위의 전력을 갖췄고, 우위의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주심의 편파판정과 이라크의 경기 막판 비신사적인 시간 지연행위로 인해 억울한 패배를 당했고, 선수들 모두 큰 상처를 입었다. 먼 원정길에서 분투하며 ‘중동 텃세’로 객지의 설움을 당한 한국 대표팀에게 우리가 돌을 던져선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매번 같은 방식으로 실패가 거듭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대비책을 마련해야할 부분이며 개선을 촉구해야할 부분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선수들 개개인으로선 병역 면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천금같은 기회를 잃었다. 또 한국 축구는 아시안 게임에서 20년째 정상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고 베어벡 감독은 부임 이후 맞은 첫 공식 대회에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2007년에는 아시안컵 대회가 열리며 2008년에는 베이징 올림픽, 2010년에는 월드컵이라는 더 큰 무대가 연이어 한국 축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패배에서 건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다시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는 대비책을 수립할 기회를 맞는다는 것이다. 실패한 팀을 무턱대로 문책만할 것이 아니라 더 강하게 이끄는 것에 역점을 둬야한다.

비온 뒤에 땅은 더 굳는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 너무도 많은 비를 맞았다. 이제는 무른 땅을 굳게 할 차례다. 오답 노트가 두터워질 수 록 정답으로 갈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한국축구는 이제 진정으로 패배에서 교훈을 얻어야할 차례다.

우리는 반세기에 걸친 실패 끝에 2002 월드컵을 통해 4강 신화를 이룩하며 강팀을 상대하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약팀을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는 틀을 구축해야한다. 한국 축구가 진정한 아시아의 강자로 거듭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아시아에서의 확실한 패권을 잡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앞서 2007 아시안컵을 맞이할 한국 축구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할 것이다.

한준 기자

사진=이라크 골키퍼의 시간 지연 행위에 분노한 한국의 오장은과 이천수 ⓒGettyImages/Multibits/나비뉴스/스포탈코리아

 

 

 

(뉴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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