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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희옥 |2006.12.14 12:22
조회 46 |추천 0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노트북 자판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떨어지는구나

 

오늘따라 겨울 밤하늘은 왜 이렇게 시름없이 높고 

달은 왜 저렇게 서럽게 높이 떠있는지

여러분들의 서늘한 눈매를 생각하면 할수록 목이 메는구나

안그래도 내 복잡한 심정에

툭 건드리면 목을 놓아 버릴 것만 같다 

 

사은회를 마치고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이며 그때마다 잔을 비웠다

더러는 눈치를 챘지만, 얼른 말꼬리를 돌려 버렸다

" 샘께 졸업번역 신청했어요"라는 졸업을 앞둔 제자와

" 샘수업 듣게 되어 너무 좋아요"라는 어린 제자의 메일을 받고

그리고 '비밀이야'에 부쩍 늘어난 너희들의 고민을 읽으며

얼마나 맘이 짠했는지 모른다. 너희들은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처럼 이 겨울강의가 끝나면

더이상 정겨운 한신의 교정에서

백묵가루를 함께 나누며 만날 수 없게 되겠구나 

더이상 열어볼 페이지가 없는 계절의 아스라함이나

끊어진 막차를 기다리는 허전한 정류장에 서있는 것 같구나

중간고사 시험지 한켠에  '시'를 빌어

내 마음을 보낸 것도 이런 이별의 예행연습이었던 셈이다

 

몇일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생각했다

"선생님 세상이 자갈밭 같아요"

면접을 마치고 돌아온 핏발선 상심한 얼굴

"선생님 언제부터인가 저에겐 설레임이 없어요"라는

한없이 착한 제자의  답답한 마음

"선생님, 저에게도 비춰줄 등불이 있는가요?"

직장생활에 지친 막 사회에 나간 너희들, 그 힘겨움 

동네 공원한켠에서 차가운 김밥을 삼키면서도

"선생님 저 괜찮아요" 하면서 울먹이며 전화를 받던,

학습지를 돌리던 가난한 제자들의 서글픈 삶에 대해

한참 동안 먼 산만을 바라보면서

너희들과  또 속수무책인 나를 위해 울었다 

 

너희들은 이 불민한  선생을 만나 불운했겠으나

나에게 너희들은 허전한 마음에 핫백이 들어온 느낌이었다

내가 너희들을 사모하고 사랑했었다는 것을 고백하마

그래서 내밀었던 손을 놓는 그 서운함도

첫사랑의 헤어짐만큼이나 가슴아린 일이다

 

나름대로 망설이고 또 망설였고

뒤돌아보고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수없이 많은 번민의 밤을 보내면서  

그리고도  이 정든 교정을 뒤로하기로 마음을 정할때에는

오직 너희들의 서늘한 눈빛과

남아있을 선생님들의 허전한 어깨만이 내 마음을 눌렀단다

힘겹고 무거웠다

 

양산동은 너희들과 사랑을 나눈 곳이다

서른 다섯에 부임하여 고스란히 제 청춘을 쏟은 곳이었다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준 동산이었다

 

너의 모든 존재를 다 걸고 이 세상을 돌파한 적이 있느냐

먹이만을 위해 하늘을 날 수 만은 없지않느냐

언제 세상이 우리에게 따뜻한 곁을 준 적이 있었냐

세상에 나갈 몸을 만든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느냐

그렇게 다그치며 나약한 너희들을 독려했던 것은

하늘밖에 또 하늘이 있다(天外有天)는 것을

믿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곳곳마다 추억이고 사랑이고 그리움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한신공원의 예쁜 수련과 물오리떼

우리가 심은 군자를 상징하는 회화나무와 그 옆의 벤치 

석양의 교회당과 성큼 커버린 소나무들

봄이면 화려한 개나리, 벚꽃과 철쭉들 

연구동 앞 할미꽃과 쑥부쟁이,개망초, 이름없는 들풀까지  

양산동 곳곳에 추억은 그렇게 다정하고 오롯이 담겨 있다

 

'한번은 잘 살아야한다, 꼭 잘살아야한다'고

어깨를 토닥이면 여러분은 어금니를 깨물던 일이 생각난다

한신교정의 꽃들은 앞으로도 어김없이 피고 지고

너희들과 또 너희들 후배들이 이곳을 거쳐갈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한신은 자랑스럽게 우뚝 서게될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강산이 변하도록 이 동산에서 함께 웃고 울었으므로

그 인연을 그 어떤 것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이냐

그래서 이곳, 그리고 너희들은

차마 지울 수 없고 언제나 나를 설레이게 할 것이다

 

제부도와 대성리의 그 수없이 많은 날의 M.T들

제주도와 설악산을 휘저어 다니던 그 정답던 수학여행

한신공원의 벤치에서 막걸리를 놓고 한 야외수업

피자와 자장면을 놓고 한 번역실습 

학교앞 라면가게와 기숙사 학생식당에서 들었던  이야기들

가정방문을 하면서 함께 눈시울을 붉혔던 복잡한 가족사들

베이징, 상하이, 선전, 칭따오의 그리운 이국의 추억들

수원역 선술집을 전전하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들

 

되돌아 보면 후회막급이다

바쁜 일상에 쫒기듯이 살면서

교육하는 사람의 본분을 잊기도 했다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수많은 제자들과

언제나 이 언덕에서 너희들을 기다리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게 되었구나

"성공하면 찾아뵙겠다"며 종적을 감추고 전화도 꺼버린

제자들이 허탕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가슴아프구나

 

낚시의 기초는 "낚시꾼이 원하는 미끼를 쓰는 것이 아니라

고기가 필요로 하는 미끼를 쓴다"는 것을 가르치면서도

일상속에서 너희들에게 진정을 다했는지 반성한다

너희들이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을 씻어주고

돌길에 넘어지면 일어나 걸어갈 수 있게 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에 처해 나의 도움을 정녕 필요로 할 때

'왜'를 묻지않고 '어떻게'를 물었었는지를 반성한다

 

이제 정답고 그리운 곳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헤어지기에는 너무 멀리와 버린 느낌도 든다

"만나고 알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했고

"삶은 부평초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나에게는 단 한번의 다툼도 없이 이곳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너희들과 남아계신 선생님들의 몫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분에 넘치는 너희들 축복속에 내가 있었던 셈이다

 

세상은 갈수록 우리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을 지도 모른다

세상살이는 어렵고 치열한 경쟁은 갈수록 격화될 것이다

그러나 힘들고 지칠 때에는 슬며시 내 마음에도 찾아오렴 

세상의 비바람을 피할 우산하나 마련해 두고 있거나

비오는 저녁 가난한 호프집에서도 너희들 맞으마

 

졸업하고 함께 늙어가는 제자들은 다동의 골뱅이집에

공부하러 떠날 대련, 청도, 북경,천진,상해에도

학교 근처의 수없이 많은 다정한 가게들에

수원역 앞 순대국집, 곱창집에도 마음으로 내려앉을께

 

조금만 나아가면 눈부신 세상이다

절대로 절대로 희망과 용기를 잃어서는 안된다

희망은 절망의 바닥을 딛고 비로소 떠오르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밖으로 도전, 도전해라

몸을 민첩하게, 가볍게 그리고 경쟁력있게 만들어라  

 

우리가 맺은 인연이 감히 영원하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의 시어지는 눈길와 얼굴을 모두 기억한다

마음으로부터 여러분들의 이름을 부르마

'샘~ 혹시 제 이름을 기억하실런지'라고 주저하지 말고

'샘~'하고 달려오는 영원한 제자들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다만 다행이고 위로가 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는 진짜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이다

한없이 따뜻하고 삶의 지혜를 주시는 유선생님

세상의 이치를 진정으로 알려주시는 이선생님

그리고 언제나 삶이 푸르른 김선생님이 계신다

이런 선생님들은 다시 없을 것이다

 

'기억은 더 많은 것을 망각하는 과정이다'고 하지만

저는 든든한 기억을 동아줄처럼 엮을 준비를 하고 있을께

그것은 사제의 정을 맺은 의리이자 예의라고 굳게 믿는다

새로운 길을 가면서도 가지못할 이 길을 떠올리면서

이미 견고하게 뿌리를 내린 추억을 그리워 하게 될 것이다 

'대동중국'이라는 기억의 바이러스에 오랫동안 감염된 채

너희들과 함께 할께, 약속! 

이미 원형을 기억하기 때문에 복원은 쉬운 것이기에...

 

이 짧은 세상에 영원히 함께 사는 사람은 없지만

여러분들이 자라고 내가 늙어서라도

고맙게 자란 여러분들의 손을 기억할 것이다

 

"선생님", 너희들이 한번 이렇게 불렀으므로

영원히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없고

성규야, 은별아, 상철아, 정순아,...이렇게 불렀으므로

더이상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나의 제자들

그 이름을 몰래 부르면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구나

 

미안, 사랑한다

정말 미안하고 사랑한다

 

- 이 못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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