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시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정일근

장동하 |2006.12.17 12:32
조회 323 |추천 0

이 글은 詩전문 격월지『시안』(2005년 가을호)에 '기획특집-시창작 강의의 현황과 문제점'이라는 주제로 실린 글들 중 詩人 정일근 선생님의 글입니다. 특히 저의 졸작인「나의 비행 나의 사랑」전문이 인용되었기에 부끄럽지만 이렇게 옮겨봅니다.

──────────

『시안』(2005년 가을호)

 

■ 기획특집-시창작 강의의 현황과 문제점

 

시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정 일 근│시인

 

1.

하동産 작설 작은 참새 혓바닥이 풀린다

더운 물 한 잔에 재잘재잘 몸 푸는 착한 혀들

섬진강을 흘러가게 하는 은어들의 작은 혀들

지리산을 덮고도 남을 일만 촉광의 별빛

마침내 쌍계사 노스님 부드러운 독경 한 자락

둥근 혀를 풀러 들려준다

 

우련히 풀리는 푸른 잎맥의 옆구리 사이

따뜻한 사랑, 軟綠의 결정

더운 풀잎이여

나도 둥근 혀를 풀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 몸의 착한 녹색을 찾아 방생하고 싶은 것이다

 

저 물 속에서 빛나는 善한 혀들!

- 윤향미,「녹색은 힘이 세다」

1994년 문화일보 사계문예(여름) 당선시,

울산 글수레문학회원

 

   1992년 울산에 오면서 처음으로 시창작 강의 요청을 받았다. 현대자동차 사원 부인들의 문학모임인 '글수레'라는 예쁜 이름의 모임이 있었다. 문학 소녀의 꿈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30~40대의 주부들의 모임이었다.

   3개월을 가르쳤는데 사실 뭘 가르쳤는지 세세한 기억은 없다. 그냥 열심히 시를 이야기했던 것 같다. 한 가지 기억나는 '책을 읽는 여성은 아름답다. 책을 읽는 어머니는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늘 강조했다.

   당시 등단 9년차 시인이었던 나 자신도 시를 어떻게 써야하는 지 몰랐다. 우선 좋은 시집을 읽는 것이 유익할 것 같아 나의 첫수강생들에게 좋은 시집을 읽는 ;고급 독자'가 되길 권했다.

   그런 방법을 권한 것은 내가 겪은 경험에서 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백일장에 나가 상을 받고 문학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던 나는 고등학교 때에는 문예부장을 지냈다. 초 · 중 · 고 12년 동안 내가 읽는 시들은 교과서에 수록된 시였고 읽은 시집은 단 두 권, 백일장에서 부상으로 받은 김소월, 윤동주 시집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한 나는 그때서야 창작과 비평사, 문학과 지성사, 민음사 등에서 나온 많은 시집들을 만났던 것이다. 만약 어린 시절 단 한 사람이라도 내게 교과서 밖의 시집을 추천했다면 내 시는 더욱 단단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좋은 시집을 권하고 같이 읽어나갔다. 그 방법이 좋았는지 몰라도 그 당시 수업을 받았던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그 후에 신춘문예, 문예지 신인상 등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그들의 당선소감에 내 이름이 언급되면서부터 나는 '시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글수레 문학동인들의 3개월 강의를 마치고 그들의 사례를 거절했다. 나는 당시 신문기자 신분이었고, 패기만만했던 젊은 시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념품만큼은 거절할 수 없었다. 처음 시를 가르치고 나는 칠보공예가 된 부부용 은잔 2개를 받았다.

 

2.

                    제 1 신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를 달이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 바다를 건너 牛頭峰을 넘어오다 우우 소울움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 하나 부질없이 부질없이 서울의 기별이 그립고, 흑산도로 끌려가신 약전 형님의 안부가 그립다. 저희들끼리 풀리며 쓸리어 가는 얼음장 밑 찬 물소리에도 열 손톱들이 젖어 흐느끼고 깊은 어둠의 끝을 헤치다 손톱마저 다 닳아 스러지는 謫所의 밤이여, 강진의 밤은 너무 깊고 어둡구나. 목포, 해남, 광주 더 멀리 나간 마음들이 지친 봉두난밭을 끌고 와 이 악문 찬 물소리와 함께 흘러가고 아득하여라, 정말 아득하여라.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미명의 저편은 나의 눈물인가 무덤인가 등잔불 밝혀도 등뼈 자옥이 깎고 가는 바람 소리 머리 풀어 온 강진 벌판이 우는 것 같구나.

                    제 2 신

   이 깊고 긴 겨울 밤들을 예감했을까 봄날 텃밭에다 무우를 심었다. 여름 한철 노오란 무우꽃이 피어 가끔 벌, 나비들이 찾아와 동무해주더니 이제 그 중 큰 놈 몇 개를 뽑아 너와지붕 추녀 끝으로 고드름이 열리는 새벽까지 무우채를 썰면, 절망을 썰면, 보은산 컹컹 울부짖는 승냥이 울음소리가 두렵지 않고 유배보다 더 독한 어둠이 두렵지 않구나. 어쩌다 폭설이 지는 밤이면 등잔불을 이루어 詩經講義補를 역는다. 학연아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이며 한이라는 것도 속절이 없어 첫해에는 산이라도 날려 보낼 것 같은 그리움이, 강물이라도 싹둑싹둑 베어버릴 것 같은 한이 폭설에 갇혀 서울로 가는 길이란 길은 모두 하얗게 지워지는 밤, 四宜齊에 앉아 시 몇 줄을 읽으면 세상의 법도 왕가의 법도 흘러가는 법, 힘줄 고운 한들이 삭아서 흘러가고 그리움도 남해 바다로 흘러가 섬을 만드누나.

- 정일근,「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전문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 대핛에 진학해서도 나는 갈팡질팡했다. 시, 시조, 소설을 모두 쓰기 시작했는데 안개 속에서 홀로 항해하는 나에게 등대가 없었다. 혼자 글 쓰고 혼자 책을 읽으며 망망대해를 향해해 나갔다.

   그래서 나만의 습작방법이 필요했다. 당시 나는 좋은 작품을 쓰는 길을 찾는 것보다 등단이라는 절차가 더욱 절실했다. 나의 꿈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신춘문예에 당선하는 것이었다.

   고백하자면 대학 4년동안 나는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신춘문예 당선을 염원했다. 군대를 다녀와 3학년으로 복학해서는 아예 수업을 포기하고 신푼문예에 매달렸다. 묘하게도 학기말 시험과 신춘문예 마감일과 겹쳤다.

   친구들은 도서관으로 갈 때 나는 내 방에 엎드려 원고를 썼다. 그 덕에 4학년 1, 2학기 모두 21학점을 신청해야했다. 내 전공이 사범대학 국어교육학이어서 성적과 무관하게 졸업을 하면 교사자격증이 나오게 되어 있었기에 취업걱정보다늠 누학에 질주했다.

   우연히 신춘문예에 당선한 어느 소설가의 습작시대에 대한 글을 읽다가 번쩍하며 정수리를 치는 '길'하나를 발견했다. 시골교사였던 그는 세셰문학전집을 노트에 다 옮겨 적었는데 그러는 사이에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그것은 '필사'였다. 문학작품을 열심히 필사하다보면 문학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때부터 나도 손가락에 '펜혹'이 박히도록 필사를 하고 그 펜혹을 칼로 깎아내며 필사를 시작했다.

   그 때 내가 택한 두 사람의 시인이 김명인, 송수권 시인이었다. 나는 송수권 시인에게서는 시의 리듬을 배웠고, 김명인 시인에게서는 시를 통해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필사는 내 문학 수업의 스승이었다. 대학 4학년 2학기에 김명인 시인의 시집『동두천』(문학과 지성사)을 필사한 덕분에 실천문학(5권) 신인상에 당선될 수 있었고, 송수권 시인의 시집『산문에 기대어』(문학사상사)『꿈꾸는 섬』(문학과 지성사)을 필사한 덕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할 수 있었다.

   나는 문학을 꿈꾸는 사람에게 '문학책은 눈으로 읽지말고 손으로 읽어라'고 권한다. 문학은 수공업이라는 것을 나는 필사를 통해서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김명인, 송수권 두 분 시인을 내 시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내가 그분들에게 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으나 두 분의 시집이 나를 공부시켰고,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나는 내 시의 스승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3.

형이 부은 허리를 핑계로 징집면제를 꿈꿀 때
나는 장기복무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계약에 따르면
나는 스물 다섯 살부터 서른 다섯 살까지 군인이다
형에게 장교가 되길 바랬던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을 날고 싶었다, 날고 싶다는 새의 열망이
날개를 만들었듯이 나는 생의 날개를 열망했다
염포동 미니빌라는 나에게 좁은 둥지였고
방에 엎드려 시를 쓰기에 나는 너무 뜨거운 나이였다
사랑의 촛불도 내 날개를 녹이지 못하였고
나는 겨드랑이에 아주 큰 날개를 달았다
나는 날고 또 날 것이며,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하늘의 길을 구할 것이다, 서른 다섯 살
계약이 만료되면 나의 비행기로
하늘의 우편배달부가 될 것이다
우편 배달기를 몰았던 생텍쥐페리처럼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 호를 타고 대서양을 날았던
우편항공기 조종사 린드버그처럼
뒷자리에 커다란 우편 자루를 싣고서 떠돌 것이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나도 밤하늘을 유영하는 야간비행을 즐길 것이다
또 하늘에서 시를 쓸 것이다, 사막에 불시착한다면
어린 왕자를 만나 그 분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별을 꿈꾸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우편항공기는 별처럼 불을 켜고 날아갈 것이고
그 때 그대는 내가 밝힌 하늘의 별 하나를 볼 것이다

- 장동하,「나의 비행 나의 사랑」전문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4년 1, 2월호

 

   울산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여러 해 시창작과정을 가르쳤다. 그러다 국문학과가 국문학부로 바뀌면서 국문학과정과 문예창작과정이 생기면서 시창작을 가르쳤다.

   나는 시간 시간 최선을 다해 강의를 했다. 필사 과제도 엄청나게 내주며 울산대학교가 깨지 못하고 있는 기록인 '재학 중 등단 시인'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것이 내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문예창작과정에 다니는 학생들은 문학에 혹사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었다. 학생들은 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소설, 수필, 희곡, 아동문학까지 배우며 강사들마다 경쟁하듯 내주는 과제에 혹사당하고 있었다.

   모든 강사들의 꿈은 동일했다. 자신이 맡은 문학 장르를 최고라 강조하며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시켰던 것이다. 시인이 되고 싶은 학생은 시에만 몰두할 수 없었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학생도 소설에만 몰두할 수 없었다.

   나는 문예창작교육의 실상을 알 수 있었다. 문예창작은 한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두루두루 적당히 알게 하는, 그 정도를 성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강의방법을 바꾸었다. 성적에 시달리면서도 그래도 시를 배우겠다고 오는 학생들이 고마워 시를 읽게 했다. 사실 그것도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학생들에게는 시간을 빼앗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학 4년 동안 한 주에 한 권의 책을 읽어도 200권의 책 밖에 읽지 못하기에 좋은 시집을 읽혔다. 문예창작과정이라는 이름으로는 그 강의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아니면 교육과정이 바뀌어야 했다. 시인이 되고 싶은 학생은 시만 배우고 쓰게 하고, 소설가가 되고 싶은 학생은 소설만 배우고 쓰게 해야 했다. 그것도 교육과정상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국문학부는 2년 만에 국문학과로,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건 학생 때문이 아니라 교수들의 문제였다. 국문학부가 국문학과와 문예창작과로 나눠진다면 정원이 넘치는 국문과 교수들의 불안감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국문학 정공 교수들이 문예창작전공 학생들을 전공을 포기하고 국문학전공으로 회귀시키기 시작했다. 문예창작을 포기하고 국문학으로 돌아간 한 학생이 울먹이며 나에게 전한 말은 '교수님들이 문예창작을 하게 되면 취직도 어렵고 문예창작과정에는 국어교사 자격도 주지 않는다'고 했다. 행위는 비열했지만 말은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3학년들은 다 포기했는데 4학년 한 학생이 끝까지 문예창작을 고집했다. 무슨 해프닝처럼 그 한 학생 때문에 교수들의 뜻대로 국문학과로 돌아가지 못하고 국문학부 체제가 1년간 더 유지됐다. 나도 그 용기 있는 학생 때문에 시간강사 자리를 작파하지 못했다.

   나는 그 학생을 졸업을 앞둔 2004년 1월에 내가 관여하고 있는 잡지를 통해 추천해 등단시켰다. 재학중 등단 시인 1호가 된 그 학생은 결국 울산대학교 역사에 유일무이한 문예창작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졸업하고 공군장교로 입대한 학생, 장동하 시인은 현재 공군중위로 근무하고 있다. 그의 꿈처럼 조종사는 되지 못했지만 정훈장교로 멋있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4.

11월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 듯이

배추가 제 삶의 한창때를 건너고 있다

꽃을 피우고 싶어하는 푸른 이마에
금줄같은 머리띠 하나 묶어주려고
이참 저참 때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배추는 중심이 설 무렵
묶어주어야 한다고 귀뜸을 한다
배추도 중심이 서야 배추가 되나보다
속잎이 노랗게 안으로 모이고
햇살 넓은 잎들도 중심을 향해 서기 시작한다
바람이 짙어지는 강물보다 더 서늘해졌다
띠를 묶어주기에는 적기인 것 같아
결 재운 볏짚을 들고 밭에 올랐더니
힘 넘치는 이파리가 툭 툭 내 종아리를 친다
널따란 잎을 그러모아 지그시 안고
배추의 이마에 짚 띠를 조심스레 둘렀더니
종 모양 부도처럼 금새 단아해졌다
부드러운 짚 몇 가닥의 힘이 참 놀랍다
이제 배추는 노란 제 속을 꽉꽉 채우며
꽃과 또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이다
추수 끝난 들녘에 종대로 서 있는 배추들
늦가을의 중심으로 탄탄하게 들어서고 있다

- 심수향,「중심」전문

2005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울산시인학교 회원

 

   나는 '울산시인학교'란 이름의 시창작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글수레 문학회에서 처음 시를 가르쳤던 1992년을 울산시인학교의 원년으로 잡고 있다. 햇수로 치면 15년이나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시를 가르쳤고 내 욕심대로 그들은 대부분이 시인이 되었다.

   시를 가르치는 일이 내 업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시를 가르치지 않는다. 시는 읽는 일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시를 가르치면서 가장 즐거운 일은 사제가 함께 좋은 시를 읽는 것이다. 그보다 더욱 즐거운 일은 선생을 위협하는 제자의 시를 만나는 일이다. 그들의 예리한 칼에 찔려 피를 흘리는 일이다.

 

──────────

정일근

1984년『실천문학』1985년 한국 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바다가 보이는 교실』『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처용의 도시』『경주남산』『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