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리 감정의 많은 부분들을 억압해야만 한다.
(싫다면, 아프리카의 울창한 정글 속에서 늑대소년과 함께 살던지)
여기, 신경과를 찾은 환자들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사이,
무의식에게 자신의 존재 전체를 몽땅, 잡혀먹혀버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라부라는 매게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에 걸어들어가, 스스로 무의식과 의식의 균형을 이루어내는,
뭐, 그런 이야기.
특히, '프렌즈'의 주인공.
핸드폰의 노예가 되버린 10대 청소년 이야기. 굉장히 인상깊었다.
(10대의 교우관계는 자신의 존재증명과 같다.
가장 큰 공포는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본문 中-)
다~~저런 시절을 겪어왔지.
나이가 들어서도 저런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친구를 질보다 양이라 생각하거나,
일주일내내 풀로 스케줄이 빡빡해야 한다거나,
핸드폰이 울려대지 않으면, 우울해하거나, 이런 것.
글쎄, 물론, 나도 전혀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ㅎㅎ;;;
그래봐야, 다 빚 좋은 개살구인 걸..
저자도 그렇지만, 외국소설은, 역자가 누군냐?는 굉장히 중요하다.
때론, 작품자체보다, 역자후기가 훗날까지도 기억되는, 기이한 현상이 생긴단 말이지. 이 작품 역자는 양억관님이신데, 욜라 맘에 든다.
내가 본 일본소설들 역자는, 거의 김난주님와 양억관님이었다.
역자는 그냥, 그 나라 말만 할 줄 안대서 하는 게 아닌 가보다.
해서, 어느날부턴, 꼭, 역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라부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 유타는 생각했다.
이 남자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미움받는 걸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뭘 맞춰 준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
그래서 혼자 있어도 편한 게 아닐까.
이라부의 순진함이 부러웠다. 혹시 그것이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지 않을까.
-네번째 단편 '프렌즈'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