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의 마지막 회가 어제로 끝났다. 그 동안 보는 듯 마는 듯 했기에 뭐라 평할 자격이 없을지 모르지만 마지막 2회를 연속으로 본 느낌만으로도 명품 드라마라 칭할만한 대단한 드라마였다. 마지막 회는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조선 최고의 기녀 황진이가 아니라 조선 최고의 춤꾼으로서 마지막 모습을 보였는데, 그 그 답은 모든 것은 하늘의 뜻에 따라 순리대로 간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화담 '서경덕'(김종결 분)이 전격 투입돼 의 대단원을 책임졌으며, 박연, 서화담에 이어 자신을 송도3절의 마지막 자리에 놓은 황진이의 마지막 나레이션이 또한 감동적이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갈등 구도도 진한 휴머니즘으로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극의 초반 '백무'(김영애 분)의 라이벌로 '황진이'를 견제하던 '매향'(김보연 분)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역시 큰 인물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 조선여악이 행수자리를 정하는 자리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고차원적 결론을 내린다. 춤을 가장 강력한 변수로 전개됐던 드라마답게 주인공 황진이는 결국 춤에서는 최고가 되고 그 라이벌 부용은 여악의 행수로서 최고가 됨으로써 명예와 권력을 반분하는 바람직한 구도를 보여준 것이 바로 매향의 결단이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과정에서 드라마의 처음부터 집요하게 '황진이'를 시기하며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오던 '부용'과의 갈등 역시 부용이 스스로 황진이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스승인 매향의 결정에 반발하지만 황진이가 이를 따르도록 하는 식의 예상을 뛰어넘는 대반전으로 마무리된다.
바로 전 회 말미에 자신을 잡으려는 '김정한'(김재원 분)을 뿌리치려던 황진이가 계단에서 굴러 유산을 하면서 두 사람을 계속 이어줄 연결고리가 지워짐으로써 자연스럽게 정리된 김정한과의 애틋한 사랑, 그리고 황진이 모의 부르지 못한 노래와 악공의 끊긴 거문고 줄로 표현된 이승에서 못다한 애틋한 사랑의 여운이 모녀의 슬픈 여인네로서의 삶을 반추시키고 있다.
필부필녀로 숨어살며 사랑을 키워가던 '황진이-김정한' 커플의 모습에서 대리 만족을 느꼈던 시청자들의 간절한 소망은 이뤄지지 못했으나 '벽계수'와 그의 아이를 가진 '단심'의 관계와 그 아이에 대한 황진이의 애절한 눈길로 대신했다. 그리고 드라마의 중심 구도를 이뤄온 '황진이-김정한'의 관계가 끝난 자리에 역사적 사실대로 진정한 인생 스승의 이미지로 나온 화담 서경덕과의 애틋한 줄다리기와 고고한 사랑이 대신하는 구도가 또한 멋진 피날레로 다가왔다.
그런 한 인간으로, 한 여인으로서의 희생이 있었기에 재예가로서의 고고함이 나올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가슴저림을 느낀다. 기녀라기보다는 춤꾼으로, 그리고 춤꾼으로 보다는 차라리 위대한 인생 철학가의 모습을 황진이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아쉬움은 있지만, 모든 연기자들이 육체적인 소욕보다는 대의를 따른다. 해피엔딩이라기보다는 정경대원(正經大原:바른길과 큰원칙)이라 할 수 있다.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진한 여운을 남긴 것"이라는 제작사 관계자의 귀띔대로였다.
그런 엔딩으로 몰아간 극의 마지막 회 내용을 조금만 더 살펴보자.
저자에서 행색만 바꾸고 낮에 추었던 춤사위 그대로 추는 진이를 저자거리 사람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진이는 당혹해 하면서교방으로 돌아온다. 그런 진이에게 부용은 저자에서 구저분한 일상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재예는 쓸모없는 것이라며 그만 두라고 하고, 이에 진이는 사람의 심성엔 고하가 없다며 그 모든 이들을 설득할 수 없는 재예는 진정한 재예가 아니라고 맞받아친다. 상업예술로서의 춤과 순수예술로서의 춤을 얘기하는 듯한 두 사람의 춤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재예에 대한 180도 다른 견해를 확인한 두 라이벌은 다시 다음 행수자리를 놓고 벌어질 경합을 위한 자기식의 준비를 한다. 빗속을 뚫고 달려가는 진이. 진이가 찾은 곳은 화담의 처소이다. 자신을 천하제일의 창기라 일컬은 화담에게 진이는 창기노릇으로 그 은혜를 갚겠다며 당돌하게 말하는 황진이. 그리고 비록 남정네로서 서화담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게 인연이 되는 두 사람.
그리고 황진이는 자기만의 방식인 송도의 저자거리로 나서고, 부용은 서경으로부터 시작하여 행수경합에서 사실상의 심판들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8도 행수들을 찾아 비법을 전수받는다. 누가 봐도 뻔한 쉽고 편한 길과 어렵고 분명치 않은 길을 가는 두 사람,,
저자거리에서 춤을 추고 받은 전두로 연명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지면서 반신반의하는 서화담의 충고도 뿌리친 채 저자거리를 배회하는 황진이. 그러나 화려한 의상과 외모를 탈로 가린 채 춤을 추는 황진이가 저자거리 사람들에게는 그저 명기도 아니라 거렁뱅이급이었는지라 애시당초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아마 진짜 이효리가 시장 통에서 10 Minutes를 둘러도 저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대장장이는 화담에게 이를 전하고 화담은 명기 소리를 꿰찰 그릇은 되는 모냥이라며 웃는다.
전두 한푼 얻지 못한 채 지쳐 쓰러져 서화담에게 업혀온 황진이는 진정한 춤을 추기 위해 서화담(김종결 분)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황진이의 노력이 가상타여겼는지, 불쌍타 여겼는지 모르겠으나(사실은 그리 예쁜 여자 부탁이면 나도 들어준다마는) 서화담은 국화차 한잔으로 선문답 같은 답을 준다.
찻잔에서 말린 잎이 다시 펼쳐지는 국화를 보면 득도한(?) ‘황진이’는 시골 마을의 아낙으로 살면서 생활속의 춤, 살아있는 재예를 익힌다. 그 춤은 무보도 없고 악공의 연주도 없이 시연됐지만 춤결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작한 악공들의 반주 속에서 되살아나고 뿌리도 없고 내용도 없는 춤을 어찌 보냐며 도도하게 외면하던 행수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부용의 박수까지 받아낸다. 그러나 심판장인 매향의 기상천만의 판정으로 시합에서는 이기고 상은 빼앗긴 황진이.
그날 황진이가 빼앗긴 것은 상만이 아니었다. 황진이의 성공을 보길 간절히 원했던 어머니 현금이 그날 운명하는 장면. 그러나 역시 춤판에서와 같이 빼앗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줄 알았던 현금이 황진이의 손을 잡고서야 마지막 숨을 넘기는 집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악공의 애리도록 아름다운 사랑...
현금이 죽는 순간까지 임종을 지키던 악공에게 곡을 하나 부탁하고 참 좋은 소리였다면서 고마워하는 장면. 뒤늦게 돌아와 겨우 임종을 지킬 수 있었던 황진이와 기생들이 장례를 치르는 장면에서 악공이 없었다는 걸 뒤늦게 눈치 챈 황진이가 악공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을 때, 현이 끊어지고 부서진 채 쓸쓸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야금.. 이 가야금을 통해 악공의 현금에 대한 평생을 간직한 사랑 현금만을 위해 연주하겠다는 음악, 현금만을 위한 자신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쓸쓸히 떠나가는 악공의 모습에서 김수희의 애절한 노래 [斷絃]을 떠올린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기녀의 삶을 벗어나 진정한 춤꾼으로 남은 황진이가 백성들 속에서 춤을 추고 최고의 행수가 된 부용은 그 모습을 추억의 눈길로 바라보는 가운데, “아직 춤은 끝나지 않았다”는 황진이의 마지막 대사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 모든 모습들이 녹아 들어 예인 황진이의 일부가 되니 감히 스스로가 [名妓]나 [名娼]이라는 이름 대신 [絶]이라는 낙관을 자신의 이름에 스스로 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예술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음에도 모두가 춤 출 수 있는 신명나는 세상을 꿈꾸며, 꿈꾸는 걸 포기하지 않았기에 예인 황진이는 얼굴만 예쁜 명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예인으로 거듭났으리라.
교방의 담장에 가두기엔 너무 큰 춤꾼 황진이는 가두려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뛰쳐나갈 수 있었기에 자신의 춤이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시나리오, 한 컷 한 컷의 씬, 캐릭터의 생동감, 모든 연기자들의 혼신의 연기, 게다가 마지막 회의 깔끔한 마무리까지 금상첨화가 되었기에 드라마 의 여운 또한 끝나지 않았으리라 단순히 드라마라기 보단 문학 작품이라고 해야 좋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