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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의 4대 요소

이선행 |2007.01.03 22:59
조회 115 |추천 0


1. B-boy


굳이 설명을 안해도 이미 이것에 대해 알고 계시는 분들은 많을거라 예상된다.체조경기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현란하고 복잡한 동작을 구사하는 거리의 춤.땅바닥에다가 매트를 깔아놓고 랩을 들으며 춤을 추는 이 브레이크 댄서들은 '비-보이(B-Boy 또는 B-Girl)'로 불렸는데 이것은 '브레이크 비트를 들으며 춤을추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역시 DJ 쿨 허크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브레이크댄싱의 인기는 '80년대 초와 중반에 잠시 절정을 맛보았지만 그 이후로 쇠퇴하여그래피티 아트와 마찬가지로 언더그라운드로 물러나게 되었다. 지금은 '비-보이'가 대체로 '힙 합에 몸을 바쳐 사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브레이크 댄싱은 영화 , 에 아주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 영화들의사운드트랙 앨범에는 '80년대 초 힙 합 음악이 총망라 되어 있어 초기 힙합 음악을 공부하는 데에는 제격이다.


2. DJ


이는 랩 음악의 근원이다. 최초의 힙 합 DJ는 자메이카 출신의 DJ 쿨 허크(DJCool Herc)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메이카의 사운드 시스템 (sound system: 자메이카 고유의 야외 DJ 파티. 거대한 앰프와 스피커를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며 파티를 열었는데 주로 레게를 틀었다)에서 실력을 키웠고 '70년대 초에뉴욕으로 건너왔다. 그는 음반을 틀 때 곡중 리듬과 비트가 강한 부분을 집중적으로틀었으며 그 위에 갖가지 구호나 은어를 외쳐 최초의 힙 합 래퍼로도 인정받고있다.그러나 노래중에 그가 선호하는 '연주만 나오는 부분(소위 '브레이크')'은너무짧았다. 

그래서 그는 두 개의 턴 테이블에 같은 음반을 한 장씩 올려놓고오디오믹서를 사용하여 두 개의 음반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그가 원하는 부분만을 계속 이어서 틀었다. 이렇게 해서 생긴 비트가 '브레이크 비트(breakbeat)'라 알려지게 되었고 이 브레이크 비트에서 힙 합 음악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후에 영국DJ들이 이 브레이크 비트를 가속시켜 현재 테크노-댄스계의 정글(jungle)과 드럼앤 베이스(drum'n'bass) 음악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믹싱 이외의 힙 합 DJ의 또 하나의 필수 기술이 바로 '스크래칭(scratching)'이다. 스크래칭은 턴 테이블 위의 음반을 앞 뒤로 밀고 땡기면서 효과음을 내는기술이다. 랩 뮤직 비디오를 본 후 집에 있는 턴테이블로 스크래칭을 시도해 본독자들도 꽤 있으리라 생각이 된다. 이런 기술들을 겨루는 소위 'DJ 대결(DJbattle)'이라는 것도 생겨나게 되었다. 두 명의 DJ가 열광하는 관중들 앞에서 그들의 스크래칭과 믹싱(또는 커팅) 기술을 겨루며 뽐내는 경기인 셈이다(DJ대결을 보고 싶으신 분은 영화 를 꼭 보기 바란다. 필자의 기억으로는고인(故人) 래퍼 투팩(2PAC)도 이 영화에 출연한다). 스크래칭과 믹싱 기술은 그랜드매스터 플래시(Grandmaster Flash)의 Adventures of flash on the wheels ofsteel이라는 곡에 아주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Wheels of steel(철로 만든 바퀴)'은 바로 턴테이블을 의미하는 것이다.



DJ 쿨 허크와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와 함께 힙 합 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끼친 DJ들은 다음과 같다. 즉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 그랜드위즈시어도어(Grand Wiz Theodore : 그가 13세 때 이미 스크래칭을 발명했었다고한다), 재지 제이(Jazzy Jay), 토니 토운 (Tony Tone), 허비 러브 벅 (HurbyLove Bug) 등. 특히, 아프리카 밤바타가 소울소닉 포스 (Soulsonic Force)와 함께 만든 Looking for the perfect beat와 Planet rock과 같은 곡들은 사운드 면에서 시대를 앞서 가는 작품들이었다.



지금 초기 힙합 음악을 들으면 왠지 구성과 사운드가 빈약하다는 느낌이들지만 아프리카 밤바타의 곡은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1985년 이전에 만든 곡들이지만 오히려 지금 '90년대 말기의 곡들 보다도 앞선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1983년에 그는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보컬이었던 존 라이돈(John Lydon)과 함께 World destruction을 불러 화제를 일으켰다. 후에 이루어지게 될 록과 랩의 결합을 예견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또한, 전 갱(gang) 멤버들로 구성된 '유니버설 줄루 네이션(Universal ZuluNation)'이라는 힙합 단체를 설립해 '평화, 단합,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데 힘을 썼다.


3. Graffiti


그래피티는 모든 힙 합 문화와 같이 1970년대 중반 뉴욕의 흑인과 라틴계슬럼가에서 발생되었다. '그래피티'란 '낙서'를 뜻하지만 그래피티 아트는 일반적인낙서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여러 가지 색깔의 락카 캔을 사용하여 슬럼가의 벽이나 지하철 열차에다가 현란하고 아름다운 그림이나 글씨 등을 그려 삭막한 도시 풍경에 신선한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락카로 그림을그리는 것 자체는 '바밍(bombing: 폭탄 떨어뜨리기)'이라 불리었는데 이는 불법이어서 아티스트들은 늘 경찰들의 눈을 피해야만 했다. 경찰들의 단속에도 불구하고슬럼가 (또는 게토: ghetto) 여기 저기에 멋진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뉴욕시에서는 그래피티 아트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게 되어 뉴욕 지하철열차의 '바밍'을 허가했다. 


이리하여 지저분하기로 유명했던 뉴욕 지하철은 탈바꿈을하게 되었고 열차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80년대 말기에 뉴욕시는 다시 '바밍'에 대한 정책을 바꿨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그려진 열차들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않다. 많은 유명 아티스트들은 그래피티계를 떠나 주로 컴퓨터 디자인 분야에서명성을 떨치게 되었고 남게 된 사람들은 또 다시 경찰들의 단속을 피해 그들의 '위험한' 예술세계를 추구하게 되었다.


4. MC


랩은 자메이카의 '토스팅(toasting)'에서 전해져 내려왔다는 말도 있지만그 근원은 고대 아프리카의 부족 사회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그 당시 통신 수단은 오직 사람의 입. 한 사람이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최근의 '뉴스'를 알렸다.그 사람이 어느 마을에 도착하게 되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 곳에 모였고마을의 음악인들은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그리고 이 메신저(messenger)는 그 비트에 맞춰 소식을 전하였다. 쿨 허크가 DJ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자 그는 오직 음악을 트는 것에전념하기 위해 따로 랩을 할 MC들을 영입했다. 코크 라 록(Coke La Rock),티미 팀(Timmy Tim), 그리고 클라크 켄트(Clark Kent)로이루어진 이 3인조 랩 팀은 '허큐로이즈(The Herculoids)'로 알려지게 되었다.


어쨌거나 최초의 힙 합 MC는 DJ 쿨 허크로 알려져 있지만, 그 전에도 음반을 틀어놓고 그 음악 위에 '잡담'을 하는 DJ들은 꽤 많았던 걸로 전해지고 있다. DJ들은 이런 '잡담'을 통해 청중들과 호흡을 맞췄고 파티나 클럽의 분위기를 고조 시켰다. 이렇게 랩 음악 초기에는 음악을 만들고 제공해 주는 DJ와 랩을 하는 MC의 팀워크가 강조 되었지만 랩의 인기가 폭발하게 된 '80년대 말기부터 스포트라이트는 점점 더 MC쪽을 비추게 되었다. MTV라는 매체가 생겨나고 '보는음악'인 뮤직비디오대중화 되면서 뒷쪽에서 열심히 턴테이블을 돌리는DJ 보다는 앞에서 랩을 하는 래퍼에 관심이 쏠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지도 모른다. DJ 대결이 있듯이, MC 대결도 있다. 이는 '프리스타일(freestyle)'이라고도 하는데, 즉흥적으로 랩을 만들어 상대방 MC와 대결을 하는 것으로 고도의 순발력을 요한다. DJ 대결은 지금도 성행되고 있지만, MC 대결은 거의 소멸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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