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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탠리 큐브릭, 1968

이상원 |2007.01.05 19:27
조회 17 |추천 0

역시 뭘 만들어도 압도적인 시청각적 스타일!!

마치 우주의 신비를 경험한 느낌이다. 영화가 사람에게 어떤 감흥과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 가슴이 벅차다.

 

- 돌기둥의 정체 :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돌기둥의 정체를 궁금해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알 수 없다. 돌기둥은 정체를 파악하라고 등장시킨 것이 아니라 궁금해하라고 등장시킨 것이기 때문. 도저히 알 수 없는 돌기둥의 정체는 곧 무한한 우주의 신비, 그 탄생과 소멸의 순환의 불가사의 자체를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탄생과 소멸의 순환을 반복하며 진화해온 인류의 신비 자체를 상징한다.

 

어느날 갑자기 날이 샌 후 유인원들 앞에 돌기둥이 등장한다. 이 불가사의 이후에 유인원은 손으로 도구를 쓰게 되고 동물을 제압하며 도구를 쓰지 않는 다른 유인원 무리를 제압한다. 돌기둥이 등장한 후 진화가 일어난 것이다.

 

(도구를 처음 쓰는 장면은 엄청난 감동인데, 뼈를 내리치며 다른 뼈들을 부수는 장면과 소가 쓰러지는 이 느린 장면들을 교차편집했다. 이것은 소련식 몽타주 기법에 가까운 듯 보인다. 사실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영상의 배열을 통해서 의미를 창조하는 것. 뼈를 내리치는 컷과 소가 쓰러지는 컷의 교차편집은 사실적으로 유인원이 소를 쓰러뜨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미를 발생시킨다. 이런 류로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에 우루루 몰려다니는 양떼와 우루루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병치. 의미는 간단하게 느껴진다. 출근하는 노동자 떼거지는 곧 짐승 떼거지와 같다. 이는 곧이어 등장하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기계화되는 노동자, 즉 자본가에게 이윤을 남겨주는 기계와 하등 다를 게 없는 노동자의 상을 묘사하는 장면과 일맥상통한다. 또 하나는 거의 마지막 장면. 마틴 쉰이 말론 브란도를 죽이는 장면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소를 죽이는 장면과 교차되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무언가 미친듯한 또 원시적인 느낌. 이것은 마틴 쉰이 말론 브란도를 죽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살인의 의미, 느낌, 혹은 마틴 쉰의 당시 심정 등을 표현한다. 그는 미쳤다. 이 부분의 정확한 장면배치는 기억나지 않는다. 역시 기억해야 하는 영화는 정기적으로 반복해서 봐줘야 한다.)

 

이 유인원이 자신의 최초의 도구인 뼈다귀를 하늘로 던지면 시간과 공간이 전환되고 인류의 최첨단 도구인 우주선이 등장한다. 무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도구는 인류와 함께 그렇게 진화했다. 원숭이가 사람으로, 뼈다귀가 우주선으로!

 

이 미래의 달에서 또 다시 돌기둥이 등장한다. 그러나 먼 옛날 원숭이들에게 도착했던 것과는 달리, 달의 땅 속에서 유물로 발굴된다. 돌기둥의 시간은 인간보다 오래되었던 것이다. 이 때 또 다시 돌기둥 앞에 선 탐사팀에게 불가사의한 소리가 들리는 현상.

 

18개월 후, 목성으로 향하는 디스커버리호. 인간과 컴퓨터의 투쟁이 발생한다. 가까스로 컴퓨터를 제압한 최후의 생존자, 모르고 있던 임무를 알게 된다. 그것은 아마 돌기둥의 정체를 밝히라는 것. 이 때부터 진정한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펼쳐진다. 1968년의 놀라운 특수효과로 우주에서의 기묘한 시간과 공간의 여행이 눈앞에 등장. 이 부분이 주인공의 시점에서 마치 우주를 경험하는 느낌. 주인공의 탐사선 근처로 돌기둥이 다시 등장한다. 돌기둥 등장하자 역시 신비현상 발생. 주인공은 굴곡되고 찌그러져 압축된 공간을 빠른 시간 속에서 지나가게 되고 곧이어 새로운 우주가 펼쳐진다. 에너지의 폭발, 우주공간-힘의 생성, 행성의 탄생, 이 장엄한 우주의 신비, 그 장면들. 이것은 액션-모험의 스타일로 진행되는 수많은 SF영화들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진정함 우주의 신비감 그 자체다.

 

이 시점부터는 영화는 더욱 더 신비하게 진행된다. 우주공간을 지나 주인공은 어느 방안에 도착해 있다. 우주복 차림으로 막 도착한 그이지만, 어느새 노인이 되어있다. 옆방으로 그의 시야에 더 늙은 노인이 보이는데, 그는 더 늙은 자신이다. 시점은 더 늙은 주인공으로 옮아가고 우주복 차림의 주인공은 이내 사라진다. 그의 시점에는 이제 침대에 누워있는 죽기 직전의 노쇠한 자신이 들어오고, 시점이 다시 죽기 직전의 주인공으로 옮아가면 그 이전의 자신은 사라진다. 주인공이 침대에 누워서 손을 들어 무엇을 가리키면 그 자리에 돌기둥이 서 있다. 돌기둥이 있는 곳에 인류와 우주의 신비가 있다. 이제 시점은 돌기둥으로 또 다시 옮아가고 돌기둥의 시점에서 침대를 보면 태아가 있다. 시점의 이동은 청년-->장년-->중년-->노년-->돌기둥-->태아이다. 죽음과 탄생 사이에 돌기둥이 있다. 그러니 돌기둥의 의미는 앞서 밝힌 그대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화면은 다시 바뀌어 태아는 우주공간에 떠있고 지구가 태아 뒤편으로 보인다. 우주가 태아를, 생명을, 인류를 품고 있는 것이다. 우주, 인류의 어머니. 

 

오디세이. 어딘가를 향해 갔다가 돌아오는 여행, 그 서사시. 탄생하고 소멸하는 끊임없는 반복과 순환의 운동. 우주의 순환, 그리고 우주가 품고 있는 인류의 순환. 그 알 수 없는 신비의 영역, 돌기둥.

 

큐브릭의 인류학, 미래과학, 그리고 신비주의. 그러나 이 영화는 절대 學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예술이라서 學이 할 수 없는 영역에서 學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람을 일깨우고 자극한다.

 

스탠리 큐브릭 만세!! 영화예술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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