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5일 (금) 18:03 경향신문
[영화리뷰] ‘묵공’


-평화와 사랑은 전쟁 앞에서 날개를 꺾다 -
‘묵공(감독 장지량·제작 보람영화사)’은 범아시아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홍콩의 차세대 감독 장지량이 연출을 맡고 유덕화, 안성기,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최시원이 주연을 맡았다. 거대한 스케일과 더불어 지금까지 선보였던 전쟁 영화들과는 달리 풍성한 드라마를 선보인다.
춘추전국시대, 조나라 10만 대군이 4천명이 살고 있는 조그만 양성을 침공한다. 항전이냐 항복이냐의 갈림길에서 의견이 분분한 양 조정. 이때 양성을 돕겠다고 묵가의 제자 혁리(유덕화)가 나타난다. 그는 결사항전을 주장하고 ‘버티기 작전’에 들어간다. 뛰어난 지략과 수성전술로 조나라 공격을 격퇴시키는 혁리는 백성들과 왕자인 양적(최시원)의 신임을 받게 된다. 그러나 왕과 권력자들은 혁리의 세가 커지는 것을 두려워해 누명을 씌워 성밖으로 내쫓는다. 번번이 혁리의 전술에 말려 패배를 거듭하던 조나라 명장 함엄중(안성기)은 결국 양성을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위정자와 백성의 차이는 전쟁에서 극명하게 갈라진다. 양나라 조정은 적이 침입했는데도 주색잡기에 빠져 있다. 백성들은 성을 지키는 것보다 제 한목숨 보전하기에 더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하나 혁리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군사를 지휘한 적도, 성을 지켜본 적도 없는 혁리는 뛰어난 위기응변과 통찰력으로 조나라의 파상공세를 번번이 막아낸다. ‘4천명대 10만명’이라는 숫자대결은 의미를 퇴색한다.
의심의 눈초리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혁리. 모두들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칭송하기 바쁘다. 그렇지만 피와 혼돈의 상황에서 ‘평화, 사랑, 반전’을 외치는 혁리의 사상은 그 뿌리를 온전히 내리지 못한다. “전쟁에서 억울하지 않는 자 없다” “전쟁에서 산 자나 죽은 자나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다”며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비극에 마음 아파하는 이타심은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진다. 묵가의 이상론으로 세상을 바꾸기에는 시대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묵가의 제자도 사랑 앞에선 떨리는 감정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 마음을 닫아걸고 옳고 그름만을 판단하던 그도 일열(판빙빙)의 아낌없는 사랑에 발길을 돌린다. ‘묵공’의 또 다른 볼거리는 전투의 스펙타클한 장면. 마치 ‘삼국지’ ‘초한지’를 읽는 듯한 느낌을 들 정도로 전략과 전술을 이용한 전쟁신은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슈퍼 35 카메라로 잡아낸 각종 병법과 장비는 실감을 더한다.
‘묵공’은 무겁고 진지하다. 말하려고 하는 주제도 혁리를 통해 구체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방대한 이야기를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유덕화를 제외한 인물들의 입체화는 많이 느슨하다. 혁리와 일열의 로맨스, 조연들의 고뇌가 드러나지 않는 등 드라마의 밀도는 탄탄한 편이 아니다. 1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