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쥬룩쥬룩 내리는 빗속에 기분좋게 운전하며 집엘 돌아왔다. LA에는 통 비가 안오기 때문에 어쩌다가 비가 내리면 어떻게 윈드실드 와이퍼를 켜는 건지 생각이 나질 않아서 번번이 이 스위치 저 스위치를 마구 돌려본다. 하늘로부터 공짜 카워시를 받게될 줄을 알기나 한듯이 먼지묻은 차를 내둥 타고 다녔던게 신통방퉁하고 기쁘다. 이럴 때는 내가 얼마나 쪼잔한가 새삼 느끼면서 웃음짓게 된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Jon과 Toi 부부의 파티엘 다녀오면서 약간의 와인 기운에 축축한 차창을 내다보며 운전하는 기분이 감미롭고 좋았는데, 한편으론 파티에 갈 때 화창한 오후의 햇살속에 프리웨이에서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었다...
Jon네 집이 있는 Pasadena로 가는 길인 프리웨이 5에서 2로, 아니면 프리웨이 2에서 134로 갈라서는 길목쯤에서였던가? 차가 마치 공중부양을 해 떠가는듯 스무스함과 동시에 완전한 조용함을 문득 느꼈었고, 즉각적인 내 연상작용은 죽음을 떠올렸었다. 삶에서 죽음으로 들어가는 길은 타이어로 길바닥의 질감을 느낄수 없을만치 아주 스무스할 것 같다는... 험한 다운타운의 한복판에 사는 나는 울퉁불퉁하게 깨져나간 아스팔트 길에 아주 익숙해서, 아마도 맨들맨들한 프리웨이를 선선히 미끄러지듯 나갈때의 스무스함을 각별히 주목했던 모양인데, 나는 여기서 웬일인지, 죽음은 삶 가운데 이렇듯 스무스하게 살며시 스며드는 거라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내 생각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하나의 그래프로 표현해본다면, 직사각형의 그래프 용지에 사선 하나를 왼쪽 아래 모퉁이에서 오른쪽 위 모퉁이를 향해 그려 넣으면 될것 같다. 물론, 왼쪽 끄트머리는 태어나는 시점이고, 오른쪽 끄트머리는 죽는 시점이다. 개인에 따라 그 사선은 약간의 굴곡을 이루기도 하겠지만, 대체로 하나의 삐딱한 사선이면 될 것 같다. 그 사선은 그래프 용지의 직사각형 면을 두개의 맞물린 삼각형으로 나눌 것이다. 하나는 태어남에서 죽음까지 decrescendo로 그려진 삼각형, 또 하나는 태어남에서 죽음까지 crescendo로 그려진 삼각형. 이 두 삼각형은 서로 반비례되어, 상반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소위 말하는 '인생'이란 육적인 존재로 태어나 영적인 존재로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뜻하는 것. 즉, decrescendo로 표시된 부분은 육적인 삶을, crescendo로 표시된 상반된 부분은 영적인 삶을 상징하는데, decrescendo의 끝이 그래프에서 작은 꼭지점으로 축소되어 육성이 소멸되고, crescendo의 끝이 그래프의 꼭대기까지 도달해 영성이 충만해졌을 때, '인생'의 목표를 완성하는게 아닐까 하는게 내 생각이다.
성숙한 인간으로 영글어가는 길은 '육성'을 벗어나 '영성'을 체득해가는, '나'라는 자아를 탈피하고 '우주 일체'로 다가서는 과정이다. 죽음이란 삶 속에서 인간이 영적인 존재로 진화해가다가 아마도 그 완성의 시점에 자연스럽게 실체를 드러내는, 꾸준히 삶 가운데 준비되는 현상이 아닐까. 죽음은 어떤 사건도 아니고, 슬픈 엔딩도 아니며, 그저 존재 진화의 지속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잘 살아진 삶일수록 더욱 그렇다고 믿는다. 온전한 영성(spirituality)을 체득한 사람이 죽음을 통해 영생(spiritual life)에 들어가면, 육신적 한계가 없기 때문에 영생(eternal life)하게 되는게 아닐까? 그와 반대로, 그래프 용지에 여백이 없도록, 육신이 더 지탱하지 못할만큼 인생을 살았으되 아직도 그래프가 삼각형을 이루지 못하고 사다리꼴의 형태로 남아 육성과 영성이 공존하는 상태로 육신의 죽음을 맞게되면, 영으로서의 영원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게 아닐까?
수리학에서 사람은 흔히 7년마다 삶의 새로운 장으로 들어감을 얘기한다. 육적인 존재로 태어나 배고프면 울고 안기고싶으면 떼쓰던 유아기를 지나 7살이 되면, 자아의식을 가진 아이가 되고, 14살이 되면 생리적으로 성숙한 성별을 완성하고, 21살이 되면 독립된 개체로서 인식된 존재를 이루고, 28살이 되면 사회적 존재로서의 도전을 경험하며, 온전한 성인이 된다. 성장기를 마치고 육체적 쇠잔을 향해 가면서 35살을 지나 42살, 49살, 56살, 63살을 거쳐 70살, 즉 칠순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직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나이의 삶이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영적 인성이 성숙되어가고, 그 완성이 즉, 죽음이어서, 이는 태어날때 crecsendo 의 가장 좁은 뾰족한 점에 불과하던 영성이 육성을 지배 통제하게 되어 그래프 용지의 오른쪽 위 끄트머리까지 가득 치달았을때, '인생'의 과정을 지나 '영생(spiritual life)'의 존재로 넘어가게 되는 아주 지극히 자연스런 진도 나감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어서 그 멋진 경험을 해보고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었다. 스무스한 죽음으로의 진도 나감, 영성의 결실! 달콤한 상상이긴 하지만... 빗방울 맺힌 유리를 통해 내다보는 축축한 거리의 그림이 좋아서 윈드실드 와이퍼도 뜸뜸이만 사용하며 슬슬 운전하는 빗길의 낭만을 지나온 나는 지금의 삶을 또한 즐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