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의 낡은 문갑속은 언제나 우리에게 신비하고 비밀스런, 보물창고였다 늦은밤 동생과 내가 군것질 거리에 목말라하면 할머니 문갑속 어딘가에서 구석구석 감추어져 있던 박하사탕이며 색색의 묘한 과자들이 어떤 때는 무명 손수건에 싸여서, 어떤 때는 누런 종이 포장지에 싸여서 끊임없이 나오곤 했다 어느날 해그름에 할머니께서 그 비밀스런 문갑 서랍을 죄다 빼셔서 마루로 가져나와 정리를 하셨다 바로 아래의 남동생과 나는 이런 신기한 볼거리가 어디있나 싶어 할머니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서랍에서 쏟아져 나오는 진귀한.... (사실은 하잘것 없는 옷핀이라든지 단추라든지 헝겊조각 이런거 였으리라) 할머니의 보물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진귀한 보물들 속에서 신문지로 약첩접이를 한, 거무스레하고 붉으레한 신기한 가루들이 나왔다 옷감을 물들이는 색색의 물감가루였다 그 작고 고운 가루가 갖가지 오묘한 색을 낼수 있다는게 너무 신기해서 동생과 나는 물감가루가 든 신문지 조각을 펼쳐들고 서로 제 얼굴 가까이에서 그것을 관찰하겠다고 실강이를 했다 그러다가 어이 없게도 손가락에서 튕겨진 신문지 속의 초록 물감이 동생의 눈 속으로 튀어 들어가 버렸다 금새 동생의 눈 주위가 눈물에 섞여서... 그야말로 초록빛 눈을 가진 얼굴이 되고 말았다 눈동자며 흰자위가 온통 초록색으로 물든..... 장손의 눈이 그 지경이 되어 버렸으니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시간이 지나 눈물이 씻어낸 눈빛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아수라장 속에서 할머니가 동생에게 눈이 초록색이 되었으니 필경은 모든 것이 초록색으로 보일터라 급한대로 마당 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석류나무를 가리키며 저게 무슨 색으로 보이냐고 다급히 물으셨다 동생이 초록색이라고 하자 아이구 이일을 어쩌냐 기겁을 하시던 장면을 떠올리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어차피 초록나무 였던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