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상트 페테르부르크 (Sankt Peterburg)

이준영 |2007.01.10 11:38
조회 21 |추천 1


러시아 제2의 도시다. 제정(帝政) 러시아 때는 페테르스부르크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1914년 페트로그라드(Petrograd)로 개칭되었다가, 1924년 레닌이 죽자 그를 기념하여 레닌그라드라 불렀다. 그 후 1980년대의 개방화가 진전되면서 1991년 러시아어(語)의 옛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되찾았으며, 페테르부르크로 약칭하기도 한다.

네바강(江) 하구의 101개의 섬과 함께 강 양안(兩岸)에 계획적으로 건설되었다. 말라야(小)네바강·볼샤야(大)네바강을 비롯한 수십 개의 분류(分流)에 놓인 500여 개의 다리로 연결된 정연한 거리는 ‘북방의 수도(水都)’로 불려왔다.

1703년 표트르 1세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스웨덴으로부터 탈환하였다. 그 뒤 러시아 절대왕정의 새로운 수도, 즉 ‘유럽으로 열린 창(窓)’을 건설하기로 하고,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를 세운 것이 이 도시의 기원이다. 이어 1712년 수도가 모스크바에서 이전해 오면서, 장대한 도시계획에 따라 건설이 진행되었다. 이후부터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는 말 그대로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창구가 되었다. 18세기 후반에는 러시아 최대의 무역항으로서 무기·금속\·조선·섬유 등 공업의 중심지가 되어, 1851년에는 모스크바와의 사이에 러시아 최초의 철도가 부설되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철도망의 정비 등에 힘입어 인구도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18세기 말에 22만이었던 인구가 1880년에는 84만, 1910년에는 190만, 1917년에는 230만으로 비약적인 증가추세를 보였다.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심장’이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머리’라고 일컬어진 그대로 러시아 서구주의(西歐主義) 운동의 선두에 있었다. 따라서 학술·문학\·음악·연극\·발레 등에서도 자국 내의 지도적 지위를 차지하였다.

한편, 정치면에서도 1825년 데카브리스트의 난 이래 절대왕정에 대한 혁명운동의 온상이 되었다. 또 20세기에 들어서서는 노동운동 및 공산혁명운동의 무대가 되었다. 1905년 ‘피의 일요일’사건으로 시작되는 러시아 제1혁명과, 1917년의 2월혁명·10월혁명이 결행됨으로써,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혁명이 성공을 거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8월부터 29개월 동안 독일군의 포위 속에서 40만 명이 아사(餓死)하면서도 시를 지켜냈다. 이로써 ‘영웅도시’라는 칭호를 받았다. 전후 피해를 복구한 후에는 1959년 시 창설 20년 기념 축제를 개최하였으며, 현재 모스크바에 다음 가는 공업·문화\·학술의 도시로 서구적 색채가 짙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사진 -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의회 건물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