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새해 새 아침, 새 희망

이양자 |2007.01.11 16:50
조회 34 |추천 0

 

새해 새 아침, 새 희망


소위 '막가파'의 원조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작정 상경파'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사회사는 무작정 상경파에서 막가파로의 발전사라 요약할 수 있다. 이를테면 먹고살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서울로만 치닫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제는 뭐라도 저지르지 않으면 목숨을 이어가기 힘든 시절로 접어들었다는 말이다.

부자는 '맨션'에 살고, 가난뱅이는 '맨손'으로 산다. 부유한 사람은 '개소주'를 마시고, 가난한 사람은 '깡 소주'를 마신다. 돈 많은 사람은 매일 '소고기 조림'을 먹고, 빈털터리는 '소고기라면'을 먹는다. 슬프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어쨌거나 부유하다는 것은 마시면 마실수록 사람을 더욱 목마르게 하는 소금물과도 같은 것이리라. 그런데 부자의 쾌락은 이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닐는지 ….

OECD 가입 10년의 통계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지난 1996년 10월11일 OECD 이사회는 한국의 가입을 결정했고, 이에 발맞춰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이제 우리 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선언하며,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실정은 과연 어떠한가.

OECD가입 이후 10년 동안 우리 경제의 덩치는 커졌다. 국내총생산(GDP)은 2005년 7875억 달러로 96년의 5574억 달러에 비해 41.3% 증가했다. 수출액도 1297억 달러에서 2844억 달러로 119.3%나 증가했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 의하면, OECD 30개 회원국과 비교한 분야별 순위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

1인당 GDP는 1996년 1만 3843달러로 22위였으나, 2004년에는 2만 907달러로 23위로 물러섰다. 특히 국민의 삶의 질은 여태 제자리걸음이다. OECD의 2001년 공공복지지출 통계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사회보장 및 복지 분야 재정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1%로 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국 가운데 최하위이며, 이들 국가 평균인 21.2%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전통적인 복지국가인 유럽국가들은 스웨덴 28.9%, 덴마크 29.2%, 프랑스 28.5% 등이며, 복지지출이 적은 것으로 평가되는 미국과 일본조차 각각 14.8%, 16.9%나 된다. 멕시코와 터키도 각각 11.8%, 13%이었다.

연간 근로시간 역시 1996년 2648시간에서 2004년 2423시간으로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1위를 자랑한다. 민간부문의 노동생산성은 10년 동안 평균 3.5% 상승해 4위를 차지했지만, 1인당 보수 증가율은 평균 5.0%로 9위에 머물렀다.

어쨌든 OECD 가입 이후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더욱 거세졌고, 이런 흐름이 결국 양극화, 투자부진, 내수침체 등 현재 한국경제가 앓고 있는 병폐를 초래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IMF 사태 및 신자유주의로 인하여 사회적 불평등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우리 경제규모는 세계 11위라지만, 빈부격차에 따른 양극화 현상은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으로 등장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나라 전체 가구에서 절대빈곤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절대빈곤층은 가구가 벌어들이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계층으로, 국가로부터 생계비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집단이다. 또한 절대빈곤층이 가난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떨어지는 추세라 한다. 일단 빈곤의 함정에 빠지면 헤어날 길이 막막하다는 말이다.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빈곤층이 7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요컨대 전체 인구의 15%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셈이다. 고용여건이 더 나빠지면서 저소득층일수록 소득이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 양극화를 심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무서운 현실이다.
게다가 가난과 낮은 학력이 대물림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무전유죄, 유전무죄에 이어, 이제는 '무전무학'(無錢無學), '유전유학'(有錢有學)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법은 없다고들 입을 모은다.

인간 사랑을 실천하자
유럽과는 달리 우리 민족은 '휴머니즘 시대'를 체험한 적이 없다.
그런 민족에게 '인연'이란 것은 지극한 인간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지 않았던가. 과연 이보다 더 지독한 인간 사랑이 또 어디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서양인들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살벌하게 가르쳤다면, 우리 선조는 "이웃 사촌"이라 일렀다. 얼마나 정답고 훈훈한 인정이었겠는가. 우리들에게는 바로 이 '이웃 사촌'이라는 따스한 삶의 정서가 곧 종교의식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인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것에만 전념해왔다. 이를테면 우리는 서로 돕고 아껴야 할 이웃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참담한 '경영학적' 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함께 이 세계를 같이 떠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생명체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절대평등의 지상명령인 것이다. 인간은 굶어 죽지 않을 천부적인 권리를 지니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는 주위에 굶어 죽어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무조건 살려내야 할 천부적인 의무도 역시 주어져 있다.
혹시 우리는 옆집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순간에도 나의 꽃밭에 자상하게 물 뿌리고 있는 사람들은 아닐까.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한다.
도쿄 올림픽 준비로 경기장 확장 공사를 하다가 지은 지 삼 년밖에 안 되는 집을 부득이 헐게 되었다. 그런데 인부들이 지붕을 들어내다가 꼬리가 못에 박힌 채 꼼짝 못하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그 도마뱀은 집 지을 때 못에 박혀 삼년 동안이나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이다. 인부들은 어찌 이 도마뱀이 한 자리에 붙박인 채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몹시 의아했다. 그들은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얼마 후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꼬리에 못이 박힌 자기 동료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도마뱀은 그 기나긴 삼 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친구를 위해 먹이를 날라주는 고행을 말없이 수행했던 것이다.

하찮은 도마뱀조차 이러하거늘 하물며 인간은 어째야 할까.
나는 지금 이런 꿈을 꾼다. 얼마 전 삼성이 쾌척한 8천억 원을 다소나마 우리의 이러한 양극화 현실을 치유하기 위해 활용한다면 어떨까 하는 꿈을 ….   글쓴이 / 박호성   서강대 사회과학대 학장 정외과 교수.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