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신화창조]신화, 그들이 겪은 고난

김샛별 |2007.01.11 21:30
조회 191 |추천 1
· 소설 제목 - 신화, 그들이 겪은 고난.

· 작가 닉네임 - 도발적인신화

· 작가 메일 주소 - wnflsdl@hanmail.net

· 출저 - (다음카페)신화창조


-소설은 아니고 신화에 관한 글이에요-





































신화, 그들이 겪은 고난.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날씨도 점점 춥다.



요즘 솔로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신화가 너무도 걱정된다.



충재씨는 하필이면 날씨좋은 봄날이 아닌 초겨울 즈음에 데뷔를 해가지고는 팬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드



는지 모른다.



우리 건강한 ..............아니.. 건강하지 못한 신화...



고난은 있는데로 겪어본 이들이야 말로 정말... 가요계의 신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신화가 겪은 고난...



세어나 볼 수 있겠는가...



8년이라는 시간동안 난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그들은.. 얼마나 가슴 조리며 울고 웃었을까...



그 기억들을 되집어 보면 정말 몸떨리는 사태가 많았다.



신화창조가 그 신화때문에... 얼마나 울고불고 했는지 자신들도 안다.



그래서 지금 신화는 영원하다.



신화창조는 이제 버릴 수 없는 존재로서 자신들은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멤버들끼리의 우정과 사랑이... 가족만큼이나 두터워졌기에...




























- 신화, 그들이 겪은 고난. -












1집...








가히 아이돌그룹의 춘추전국시대라 할 수 있는 1998년 신화가 데뷔를 한다.



그 땐 HOT, 젝스키스가 한창 왕성하게 빠순이 부대를 끌고 다니던 시기였다.



이런 막강한 대형그룹에게 가려져서 1집은 말그대로 망한다.



타이틀곡인 해결사가 크게 어필하지 못하자 이들은 통통튀는 댄스곡인 '으ㅆ ㅑ 으 ㅆ ㅑ'를 후속곡으로



갖고 나오지만, 대한민국에 큰 홍수가 나는 바람에 그 작은 바램마저도 무너져 버린다.



'물놀이 가면 안될까요' 라는 이 가사는, 모든 재산을 깡글히 잃은 수재민들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



이들은 끝내 자신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활동을 접었다.



이수만씨가 다른 가수들처럼 쪼금만 더 밀어줬더라면, 아무래도 신화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 신화는 완전 밉상이였다고 한다.



이수만씨가 시키는 데로 할 수 밖에 없는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신화는 고집이 쌨다고 한다.



자기들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말도 잘 안듣고 그래서 맞기도 많이 맞았다고 한다.



만약 이수만씨가 시키는데로 했다면 아마 우리 앞에 신화는 없다.



그 갖은 구박 다 받아가면서도 끝까지 여섯명은 함께하겠다는 그 의리..



이 모습에 또 한번 신화창조는 그들에게 반했다고 난 생각한다.



갈기갈기 찢어져서, 채 빛도 발하지 못하고 '신화'라는 이름은 소멸해 버렸겠지 아마.














2집...








비장한 각오로 시작한 활동이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이번에 반응없으면 바로 해체해 버린다



는 결정하에서 두근두근 컴백을 한다.



결국, 클래식을 심플링한 우아한 타이틀 곡 T.O.P는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되었고, 2집은 대박을 친다.



음반도 많이 팔린다.



하얗디 하얀 백조같은 꽃미남들은 당연 10대들의 우상이 되었다.



이어서, Yo!도 연이어 히트를 쳤다.



그 때 정혁씨의 발목 부상으로, 팬미팅을 마지막으로 일찍 판을 접어야 했던... 그리고 민우씨도 다쳤다



고 들었다.












3집...









선호씨의 자살설이 있었다.



지금 선호씨의 성격과 행동으로 봐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문이 난다.



뭐.. 그렇게 사람을 달달 볶는 소속사 안에서 살다보면 천만번 죽고 싶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무책임하게



신화창조와 신화, 그리고 가족들과 친구들을 버리고 죽으려고 다짐하는.. 그런 악독하고 잔인한 사람은



아니라는거 모두 안다.



어떤 기자가 이런 악성루머를 지어냈는지는 몰라도 당장에 콩밥을 먹였어야 한다.



당시 그 어린 선호씨 본인은 얼마나 놀랐을까 생각을 해줬으면 한다.



이때부터 동완씨는 운동을 해서 '근육덩어리,근육남' 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또 부상으로는 선호씨가 목욕을 하다가 입술이 찢어져 꿰메기도 한다.



또, 그때 막 스티붕유 병역비리사건 이런거 터지면서 정혁씨와 선호씨가 구설수에 오른다.



이들은 바로 미국 영주권을 포기한다.



이 때, 정혁씨의 해병대 지원설도 나돈다.



결국 정혁씨는 해병대에 들어간다는 얘기도 아직 남아있다.












3.5집...








SM, 겨울 음반 냈을 때.



기도....



털옷입고 발구르면서 참 이쁘게 춤추고....



이땐 여섯명 모두 '꽃수' 였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뽀샤시하고 예쁘고 아름답다.



이 때, 민우가 감기 몸살에 심하게 걸려서 무대에서 라이브 하다가 가사를 까먹고 그 춤꾼이 춤도 제대



로 못추고 한참 해맨다.



그 때 무대 내려가고 대기실에서 바로 탈진해서 응급실에 실려간다.



직업 정신이 강한 사람... 아니... 신화창조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사람.



쓰러져도 무대에서는 절대 안쓰러지려 했던 신화창조를 생각하는 민우씨는 정말 돋보였다.



지금이라도 기립박수를 쳐주는 것은 어떨까 한다.














4집...








신화창조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시기다.



신화는 여섯명이 아닌, 다섯명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본인들은 선호씨 없는 다섯명으로 정말 나오기 싫었던 것 같다.



하지만, 소속사의 강압에 못이겨 다섯명이서 음반을 녹음하고, 자켓을 찍고.



그때, ses의 유진과 슈와 함께 부정입학건에 휘말려서 뉴스에도 나오고 선호씨가 나온 고등학교가 한국



에선 중학교로 밖에 쳐주지 않아서 대학 입학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선호씨의 학력은 중졸인 상태이다.



뭐, 군대를 입대해서 참여하지 못했다느니 하는 말들이 많이 있었지만 선호씨는 아직



군대에 가지 않았다.



아마, 팀의 이미지를 흐릴것 같다는 누구의 무식한 생각으로 다섯명만 내보낸 것 같은.. 이건 그 당시의



정황을 눈치보며 생각해 본 신화창조의 예상이다.



그리고.



이 때 우리나라에서 남성 최초 누드집을 찍었다.



충재씨와 정혁씨의 수고가 없었다면, 누드집은 빛을 발하지 못했을 듯.



노고가 크셨던 신화에게 다시한번 기립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리고, 다 지나서 하는 얘기로 필교씨가 말씀하셨는데 처음엔 모두가 누드 찍는것을



꺼리셨다고들 한다.



라디오에서 슬픈 목소리로, "소속사에서 우릴 이용해 먹는건 아닐까... 찍어도 될까..."



라고 말씀하시던 필교씨.



여자 누드집은 있어도 남자 누드집은 국내에서 한번도 발간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참 많은 고민을 한다.



하지만, 젊었을 때 한번 찍어봐도 될 거 같다는 생각으로 누드집 건을 동의하셨다고들 한다.



하지만, 정말 화끈하고 좋았다... 적어도 신화창조에게는 말이다.



그리고.



이때, 필교씨가 십자 인대 파열로 인해 수술에 들어간다.



춤을 제대로 못 출 정도였다.



그로인해 필교씨는 군대에 입대하지 못하게 된다.



병실에 우르르 몰려와 필교씨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신화의 눈빛이 생각난다.



그래서, 4집 후속곡인 와일드아이즈는 4명이서만 춤을 춘다.



필교씨는 왕처럼 쇼파에 앉아서 노래만 부른다.



그렇게 꽉차 보이던 무대에 멤버가 2명이나 빠지니 참 허전해보이고, 텅텅 비여보이고... 말이아니다.



또.



게릴라 콘서트 때.



팬들은 신화가 우는 건 처음 봤을뿐더러... 그렇게 통곡하는 충재씨의 모습을 보고, 모든 신화창조도



아주 통곡의 통곡, 또 통곡을 했었다.



10000명 도전이였는데 17000명 가량 왔었다.



정말 신화도 사람들이구나.



눈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구나.



게릴라 콘서트를 보고 처음 느꼈다.



아마 신화창조는 거의다 울었을 듯 하다.



그리고, 안대 낀 상태로 멤버들끼리 손 꼬옥 잡고 서로를 의지하는데.. 정말 의리있는 사람들이구나, 멋



있다, 남자답다, 눈물마저도 아름다워 보였던... 이것도 당시 카운트다운 하기 전, 눈물 펑펑 흘리며 슬퍼



했던 신화에게는 고난이였을 듯 생각된다.



하지만 게릴라 콘서트로 인해 우정은 더욱 진해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동완씨가 천국의 아이들이란 드라마를 찍으러 벤을 타고 가던 중에 교통사고가 난다.



그때 동완씨의 코디였던 유선양이 세상을 떠나버리고 만다.



동완씨는 한동안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맘고생이 무척 심하다.



거기다가 동완씨도 다쳐서 휠체어 타고 다녔다.



뉴스에서도 나왔었다.



4집이 제일 고단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신화도... 그리고 신화창조도 역시.












5집...








대상을 잡을 수 있는 시기였다.



이땐 적어도 대상 하나 정도는 탈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때 'Sweet Dream' 인가 그걸 코맹맹이 목소리로 부르던 J가수에게 대상을 넘긴다.



원래는, 당시 엠씨의 손에 있던 대상 가수가 적힌 카드에는 '신화' 라 적혀 있었는데,



대상 발표 바로 전 무대.



즉, 앤딩 무대에서 어떤 가수가 노래 부르는 사이에 어떤 스텝이 스리슬쩍가서 엠씨의 손에 쥐어진 카드



를 뺏고, 카드를 바꿔치기 했다.



'J가수'로 적힌 카드로.



이뿐이 아니다.



신화는 많은 가수들에게 대상을 양보한다.



모든 가수들의 최대의 로망인 '대상'을 말이다.



"우린 상복이 없나보다." 얼마나 속상했으면 이런 말씀을 꺼내셨겠는가.



그리고...



신화에게도 신화창조에게도 최대 이변이였던... 충재씨의 부상 사건.



5집 때, 어떤 쇼프로그램 촬영 도중 덤블링을 보이다가 시멘트 바닥으로 머리부터 떨어지는 바람에 다시



는 충재씨를 볼 수 없었을 뻔 했다.



사건현장에 있으셨던 팬들 말씀으론... 뇌에 충격이 가해져서, 몸을 부르르르 떨면서 입에



거품까지 물었다고 한다.



멤버들 흥분해서 소리지르고 욕하고.



녹화 중단되고 119오고... 난리가 아니였다.



그때, 신화창조는 울면서 응급차 따라서 뛰어갔다.



그때 의사가 "머리에 피가 고여서 오늘 밤 넘기기 힘들다..." 라고 말씀했다.



그땐 멤버들 모두 말을 잃고, 힘을 잃고..... 울고.



그치만, 우리의 만능스포츠맨 충재씨 몇일간 푹 잠을 자고 벌떡 일어난다.



멤버들은 뛸듯이 기뻐했다.



그때의 멤버들의 웃음을 보면, 참......



일어나서 밥도 맛있게 먹고, 일반병실에서 인터뷰도 하고 했었다.














6집...








SM에서 내는 마지막 앨범이여서 그런지.. 계약기간이 만료되가다 보니, 6집 활동은 소속사에서 잘 밀어



주지 않는다.



스케줄도 가요프로그램 아니면, 신화를 잘 볼 수 없다.



일단은 '너의결혼식' 이란 노래의 멜로디 자체가 밍밍하고, 가사는 팬픽에나 나올만한 비현실적인 부분



이 커서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진 못한다.



그러다가, 신화 계약건이니 뭐니.... 스포츠신문 1면을 여러번 도배한다.



SM에서는 이민우, 신혜성 둘만 재계약을 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소속사를 나가자는 제안을 슬며시 내립니다.



그럼 자동적으로 신화는, 여태까지 보여줬던 아이돌 그룹의 역사의 발판을 그대로 밟아 6집을 끝으로 전



격 해체라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반항아들은 이를 거부한다.



"저희는 여섯명이 아니면 안됩니다!" 며 자기들을 이정도로 이끌어 올려주었던 소속사의 권유를 뿌리치



고, SM 엔터테이먼트에서 나온다.



여기저기서 신화를 데리고 가려는 많은 소속사들은 56억 플러스 알파 까지 간다.



암튼 어마어마한 계약금을 내놓으면서 신화를 유혹했지만, 신화는 SM 직원들이 나와서 만든 신생 기획



사인 good에서 36억 플러스 알파의 계약금을 받고, 둥지를 튼다.



(참고로, good은 신화팬들의 적입니다.)



그리고, 계약하는 기자회견장에 필교씨가 등장 하지 않는다.



다섯명이서만 기자회견에 임한다.



기자회견을 한창 하고 있을 시간 마스크와 모자를 푹 늘러쓰고 필교씨가 강남 거리를 방황을한다.



그것도, 커다란 멍과 상채기들을 얼굴에 다룬채로.



이게 목격자와 찌라시들 말로는, 멤버들한테 집단 구타 당해서 그런거라지만.



이날 필교씨는 감기가 너무 심하게 걸려서 링겔을 맞을뿐.



필교씨 본인이 자기 입으로 직접 해명한 것이다.



6집도 참 순탄하지 못했다.



멤버들 각각의 개인활동은 성공하게 된다.



정혁씨는 첫드라마는 실패했지만, 결국엔 만인의 연인이 된다.



톱까지 올라가는데, 우린 잘 알지 못해도 정혁씨 나름대로 수많은 고난이들이 닥친다.














7집...








제일 공백기간이 길었던 7집.



" 10월에 나와요. 12월에 나와요. 3월에 나와요. 6월에 나와요. " 나온다 나온다 해놓고



코빼기도 안 비추게된다.



그러다가 개인활동으로 각각의 개성을 살린 멤버들은 한대 뭉쳐 8월 27일 컴백을 하게되고,



7집은 말그대로 완전 대박을 치게된다.



32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엘범이 팔렸고, 대중들은 하나둘씩 신화에게 이목을 집중한다.



신화 고정 쇼프로그램은 쇼프로시청률 1위를 달릴 정도로 사랑을 받게 된다.



'신화가 고정 출연하는 쇼프로그램은 시청률의 고전을 면치 못한다' 라는 선입견을 버리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신화는 서울가요대상과 SBS가요대전 두개의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게되고,



팬들은 7년동안의 한을 말끔하게 씻어냅니다.



그때 멤버들 막 눈물 글썽거리고, 정혁씨는 목소리 부들부들 떨고.



팬들은 너무 감격함과 동시에 믿을 수 없어서 운다.



신화 = 대상이란 두개의 단어가 왜이리도 잘 어울리던지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순탄하게 일이 진행된다면 7집 얘긴 꺼내지도 않았다.



코엑스에서 콘서트를 연다.



당시 6만원주고 끊으신 많은 분들의 좌석이 마련되지 않아 서서 공연을 보게 된다.



공연 시간이 몇시간씩 지연되서 팬들의 욕은 매우 심했다.



더 기가 막힌건, 거기 스텝이 말하는게 통로에 앉아있지 말고 나가라고 한다.



환불해줄테니 말이다.



환불해준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신적인 보상은 어찌하거나 해줄 수 없던 때 였다.



플라스틱 의자가 무대로 던져지고, 야광봉 던지고, 싸우고... 난리도 아니였다.



결국엔 관객들이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콘서트가 시작됬고...



아수라장이된다.



결국엔 몇명의 팬분들이 '신화'가 아닌, 콘서트 관계자들이였나? 굿엔터였나?



암튼, 그 사람들한테 소송을 건다.



결과는 팬들이 이기게 된다.



암튼, 괜한 불똥이 신화에게 튀여서, 신화가 맘고생 몸고생 다헀던.......



그래서, 6월에 보상 콘서트를 한다.














8집...








공백기간이 꽤 길었던 8집도 부상사건이 꽤 많다.



특히나 동완씨는 부산 콘서트때 어두운 조명때문에 시야가 흐려져 무대에서 떨어져



어깨가 탈골당하는 부상을 입게된다.



그리고 후속곡 뮤직비디오 촬영때도 카메라와 부딫혀 광대뼈가 붓는 사고도 있었다.



5월달의 팬싸인회에서는 필교씨가 부상을 당한 동완씨가 없어 혼자 외로이 팬싸인회를 하게된다.



그리고 정혁씨와 민우씨가 대학로에서 팬싸인회를 하는데 이때 민우씨가 몸이 좋지 않아



컨디션이 최악이게 된다.



8월달에 개봉한 영화 '원탁의 천사' 에서 액션장면을 촬영하다 손목을 부상당한다.



하지만 민우씨는 "다친줄 몰랐다" 며 강단 몸매를 재확인 시킨다.



한편 8집 활동이 끝난 뒤 각자가 개인활동을 하게되는데, 정혁씨는 드라마



'무적의 낙하산 요원' 을 끝내고 미국으로 가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선호씨는 MC와 오락프로그램 등을 출연해 개인활동을 하고, 11월달 충재씨가



솔로 앨범으로 데뷔를 한다.



그런데 선호씨가 인기가요(MC)녹화를 하느라 항상 황금어장(고정) 녹화에 늦게되어 스텝분들에게 많이



혼나고 심하게는 그만두라고까지 얘기한다.



또, 며칠전 충재씨는 급성폐렴으로 병원에 입원중이다.



솔로 앨범을 내 멋지게 성공한건 알겠지만 건강을 중요시 하지 않은 충재씨를 나무라고 싶다.



자신의 직업에 열정적인 것은 좋지만 조금만 자신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적당한 휴식을



취하면서 활동하는 게 어떨까 싶다.












8년... 아니 연습생시절때부터라면 한 10년정도 됬다.



이제 신화는 더이상 아이돌 그룹이 아니다.



자신의 몸관리를 좀더 신경써야할 필요가 있다.



이젠 젋은 소년도 아니다.



후배들보다 더 노력하는 모습은 보기좋다.



아주 맘에들지만, 그 노력으로 건강이 해를 끼친다면 그 노력마저도 할수가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신화창조를 걱정시키게 된다.



날씨도 점점추워 뼈들이 시려 통증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옷도 따뜻하게 입고 다니고 건강을 위한다면 제발 술과 담배를 끊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건강하지 못하면 영원하다는 외침또한 할 수 없기에...










신화가 없다면 살지 못하는 신화창조가 영원함을 소리치는 것을.



신화창조가 없다면 살지 못하는 신화가 평생 함께함을 소리치는 것을.





신화는 선택이 아닌 생명입니다.


신화창조는 취미가 아닌 문화입니다.





우리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고, 멀리할래야 멀리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신화와 신화창조는 영원히 존재할것입니다.





신화, 신화창조 영혼불멸사상.






















신화, 그들이 겪은 고난.








- The End -


























Written By 도발적인신화



















이글은 제가 쓴게 아니고 신화창조에서 퍼온거에요~!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