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1020세대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최대공약수 독서목록
10순위 안에는 꼭 들 것 같은 책,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
흔히들 이 책을 평할 때, 초등학교 시절 유아적인 신선한 사고를
가지고 읽을 떄와 세상의 풍파 속에 떄묻은 나이에 읽을 때와
현격한 서평의 차이를 가진다고 했다. 동심의 순수함을 간직한 채
접하게 되는 어린 왕자와 시간의 무심한 갈퀴질에 상하고 다친
속(俗)되버린 마음으로 읽는 어린 왕자는 마치 전혀 다른 두
문학을 접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경계선 상에
더 가까운 상태일까에 대해부터 생각해보기로 했다.
일단 확실한건 난 동심을 가졌다고 하기엔 몸과 마음이
너무나도 훌쩍 커버렸다. 단순히 커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세월의 물갈퀴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아스라니 남아있는, 조금은 세상을 아는 23살이다.
뭐 40대 어른들이 보기엔 저건 또 무슨 굼뱅이 앞에서 주름 잡는
퍼포먼스며, 조승우 앞에서 카드를 논하냐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식일지도 모르겠지만 또 반대로 10대들이 보기엔 나이살
꽤나 먹은 대학교 3학년 그리고 군인아저씨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연배 꽤나 있어보인다. 그 모든 인식은 상대적인 것이니, 그러한
가타논쟁은 잠시 집 안 책상 서랍에 부쳐두기로 하고ㅡ
여하튼 나는 서서히 세상이라는 곳, 사회라는 나를 구속하고 있는
이 무형의 거대공동체에 대해 점진적으로나마 알아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렇다고 내가 완벽하게 속(俗)에 푹 젖혀질만큼
오랜 경험과 다양한 사회생활을 한 것은 아니므로 난 스스로를
푸르른 동심(童心)을 가진 아이에서 검푸른 속심(俗心)을 알아가는
풋내기 사회 초년생 정도로 보면 적절하겠다.
여하튼 어린 왕자는 그러한 내게 크나큰 감동의 울림을 주었다.
그동안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속(俗)으로 이끄는 제반요소들
만을 접하며, 나름 순수함을 표방했었던 나를 점점 세속화 바꿔
말하면 재사회화 시키는데 여념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 사회가
다시 나를 예전에 나를 지배했던 이상주의(理想)의 관념 속으로
끌어당기는 기폭제를 주었다. 그동안 맥없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 쪽만을 향해 끌려갔는데, 이제는 그 불균형한 이끌림이 부당
하기라도 하다는듯, 사회는 나에게 어린 왕자라는 매개를 통해
그 불균형한 이끌림의 균형을 맞춰주었다.
간단히 말해서, 이 책은 그동안 우리네들의 눈물콧물을 짜내는데
첨병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자본논리의 상업주의와 결합한
시덥잖은 싸구려 감상주의를 듬뿍 바른 종이쪼가리 따위와는 질 자
체가 틀린 잔잔하고 고고한 감동이 담긴 책이다.
무소유의 저자, 이 시대 살아있는 불가(佛家)의 고승인
법정스님도 어린왕자를 화엄경과 더불어 자신이 꼽는 최고의
"경전(經典)"이라 했다.
첫번째 읽을 때는 "아, 그렇구나 아 그렇구나...."를 연발하게
되다가, 두번째 읽을 때는 쉽사리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그 문장,그 비유 하나하나가 담고있는 깊고도 넓은 내포적 의미를
생각하느라 멍한 상태로 애꿏은 책만 들여다보게 된다.
사실 책 자체는 그리 많은 양도, 그리 어려운 내용도 아니다.
그냥 슥~ 읽고 지나가려면 1시간이면 족히 읽어버릴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어린 시절 읽었다면 하루의 심심풀이 땅콩 정도 될까
말까 하는 그런 평범한 동화책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 한없이 가벼운 책이요,
무거운 마음으로 읽으면 한없이 무거운 책이다.
가장 진한 감동, 그리고 가장 깊은 사유를 하게 만드는 대목은
어린왕자가 여우와의 만남에서 나누는 '길들이기'에 대한
대화이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흔하디 흔한 장미꽃 그리고 자신의
행성에 두고와 항상 마음에 걸리는 자신만의 도도한 '붉은 꽃',
(그 꽃이 '장미'라고 불리우는 것도 지구라는 행성에서 처음 알아
버린, 어린왕자 행성에서 유일하게 그가 소중히 키우는 생물체)
사이에서 그 둘을 구분짓게 만드는 '길들이기', 그리고 어린왕자의
길들이기를 통해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그동안 아무 감성없이
바라만 봤던 밀밭마저도 애틋한 대상물의 연상매개체가 된 여우의
마음은 사랑을 찾아 갈구하고, 또 어렵게 찾아 만들어낸 그 사랑이
남긴 잔흔에 젖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 시대의 사랑시련의
근본적 해석논리라 할 수 있겠다.
'길들이기'는 사랑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생물을 가진 것들끼리의
총체적 교감을 논증할 수 있는 기본적 개념원리이다. 이 '길들이기'
를 시발점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의 각자 각양의 관계구성
(사람-사람, 사람-생물, 사람-무생물, 생물-생물, 생물-무생물)이
성립하는 것이다. 간단히 도식화된 위의 5가지는 한없이 깊고
넓은 파생뿌리를 지니게 되며 그 일일의 것들이 세상을 이루는
기본단위가 되곤 한다. 이 얼마나 간단하게 그리고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관계'라는 것의 기본개념성립인가!
결국 어린왕자는 쉽게 생각하면 어린 왕자의 지구기행기이고,
한차원 높여 생각하면 사회근간에 깔려 있는 각양각색의 '관계'라는
것에 대한 추상적 관념 해석이라 볼 수 있다.
아무리 봐도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신기루같은 매력의 소설이다.
만약 내가 어린 시절 이 책을 읽고, 별다른 감흥없이
'비행기 실종사고로 사라진 조금 특이한 이력의 프랑스작가 흥행작'
정도로 간주하고 '이미 읽은 책'으로 구분하여 다시는 읽을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들 다 읽을 때 안 읽은 나태의 산실이
이런 뜻밖의 행운으로 찾아올 줄을 몰랐다. 조금은 머리가 자란
상태에서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이 가진 무한한 가치의 일각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고, 이 책이 내포하고 있는 넓고 깊은 속내를 사장해
버리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맺고있는 수많은 관계가 너무나도 복잡하고 꼬인듯 하여
인생이 피곤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나, 반대로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가 한없이 옅고 얕아서 관계의 확충을 열망하는 사람들,
혹은 자신의 관계맺음에 대해 깊은 사고 없이 즉흥적 감흥으로
일관해 온 사람들은 특히나 더 어렸을 적 한번 훝고 집어던졌던
그 책 '어린왕자'를 옛 서재에서 뒤적뒤적 찾아 들추어보는 것도
뜨거운 라디에이터를 틀어놓고 두터운 솜이불로 몸을 감싸며
이 추운 한파를 몰고 다니는 동장군(冬將軍)에 맞서는 것보다
더 짙은 온기(溫氣)를 느낄 수 있는 또하나의 피한법(避寒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