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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터너티브(alternative) "

김준현 |2007.01.15 22:25
조회 44 |추천 0


클래식과 팝 음악처럼 그 목적과 구성에 따라 장르가 구분 되어 지는것과 달리 얼터너티브가 음악의 한 장르를 차지한다라고 보아 지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면 얼터너티브란 말 자체가 일종의 반항적 이미지, 기존의 음악들에 대한 반기의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음악에 반항적 요소를 첨가 했다고 해도 무관할듯. 즉 블루스적 사상 개념이 강하게 내포 되어 있다. 또 블루스는 락과 메탈을 낳지 않았던가! 원래의 블루스적 음악들이 대중화 되면서 그 부분에 대한 반기의 차원에서 얼터너티브란 또 하나의 분야가 생겼다고 해도 무관하다. A(반항)->B(대중)->A'(반항)의 원리처럼. 하지만 이 A'가 다시 B'가 돼버린 지금 얼터너티브를 장르적 개념에 집어 넣기도 사실상 모호해져 버렸다. 이런 이유로 불과 50년 사이에 나왔던 여러 음악 장르들을 계속 유지하고 그 이름을 불러야 하느냐?는 것도 문제가 돼버렸다. 현재 진행 중이고 그 결과는 모호해 지고 일반화 되고 서로 섞일 그 이름들을 말이다. 서론은 여기서 마무리 하도록 하고, 과연 이 얼터너티브가 무엇인지 보도록 하자. ★얼터너티브(alternative) MTV 뮤직 비디오 시상식에서 '베스트 얼터너티브 비디오상'을 받은 록 밴드 스매싱 펌킨스의 리더 빌리 코건은 "우리가 아직도 대안적(alternative)이라니 행복하다"는 말로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이제 얼터너티브라는 말은 개똥이 되어 땅에 떨어져 버렸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로부터 출발했는가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장면은 얼터너티브라는 용어의 '모호함' 의미들을 잘 보여준다. 싫든 좋든 얼터너티브는 90년대 청년 문화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어떤 이는 얼트 문화라는 용어에 반문화의 지위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은 "도대체 무엇에 대한 대안인가?" 라는 의문과 더불어 얼터너티브가 주류 문화 속에 정착해 버렸다는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코건의 말처럼 얼터너티브의 출발점의 의미가 아직도 중요하다면, 출발점에 서 얼터너티브는 과연 무엇이었고, 또 지금은 무엇인가? 출발점에서 대답은 비교적 명료하다. 얼터너티브는 화려하고 번드르르한 80년대의 주류 대중문화의 대안이었다. 80년대 신보수주의 문화 정치는 이전 시기의 유산 중 거칠고 지저분한 요소들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가족,국가, 교회 등 전통적 가치가 복권되면서 모든 개인들은 주류 미국 사회의 지고의 가치인 '성공의 윤리'를 따라 착착 조직되었다. 쇼 비즈니스계는 마치 4,50년대처럼 가족 연예를 부활시키려고 노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은 성인 못지않게 계산적이고 세속적이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20세기 후반 현대사의 주요 추동력이었던 청년 문화 는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기성의 가치를 거부하는 세력이 전멸한 것은 아니다. 도심 빈민구역의 게 토화된 흑인 들은 골목 곳곳에서 블록 파티를 열면서 '힙합 문화'를 발전시켰다. 교외 노동계급 10대들은 더욱 속도가 빨라진 헤비 메탈 속에서 악몽같이 권태로운 삶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전 통적인 하위 문화의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얼트 문화는 60년대 청년 문화처럼 백인-남성-중산층에서 배태되었다. 먼저 일부 대학생들 중 심으로 주류 팝 음악에 식상하면서 '대안적' 음악을 추구하는 층이 형성되었다. 몇몇 선구자들은 이런 틈을 이용하여 인디펜던트(인디) 레이블과 대학방송국 등을 통하여 메인스트림에 종속되지 않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갔다. 이와 더불어 단편영화, 실험영화, 다큐멘터리 전문 상영 관이 만들어졌고, 비주류 미술가들은 허름한 공간을 빌려 전시회를 개최했다. 80년대의 인디 씬은 컬리지 록을 중심으로 하는 음악 네트워크를 말하지만, 넓게 는 여타의 예술장르를 망라하는 문화적 네트워크를 의미하기도 한다. 국지적이었지만 의미심장한 이 흐름들은 매우 다양하면서도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화려하고 결박한 주류 문화에 반대하여 거칠고 지저분했다는 점이다. 인디 씬은 얼터너티브의 징후이긴 했어도 아직 주류 문화에 타격을 가하는 반문화 는 아니었다. 얼터너티브는 이런 고립분산적 활동에 한계를 느낀 이들이 본격적으로 주류문화에 잠 입하면서 비로소 폭발할 수 있었다. 1991년, 마침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음악에서는 너바나를 비롯한 '그런지 밴드'들의 투박한 비디오가 레코드 매장과 MTV를 점령했고, 그 해 여름 얼터너티브 음악 축제인 롤라팔루자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음악만큼 극적이지 는 않았지만 영화계에서도 구스 반 산트의 (1991)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같은 '어두운' 독립영화가 전국적인 파장을 던졌다. 불량한 청년들의 반항을 그린 TV 만화영화인 나 이 선풍적 인기를 누린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 그리고 캐나다의 작가 더글러스 커플랜드는 90년대 청년 세대의 좌절감을 묘사한 책을 발간하여 90년대 청년문화를 공개적 토론의 장에 올렸다. 그런데 90년대 중엽에 접어들어 얼터너티브 문화는 출발점에서의 열기는 많이 가라 앉아 보인다. 얼터너티브라는 용어는 음반 세일즈 용어가 된지 오래고, 버드 드라이사는 '얼터너티브맥주'까지 만들었다. "You are so alternative"라는 말은 "You are cool"정도로의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청년 문화가 다시금 상업주의의 덫에 걸렸다고 말하고 있고, 조금 나이든 논자들은 60년대의 반문화가 70년대에 상업화되어 버린 예를 들어가면서 이 모든 것이 다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그만일까? 미디어나 학술 연구에 의하면 X세대들의 정서는 혼돈, 좌절, 소외 등으로, 그리고 그들의 정체성은 낙오자(loser), 얼간이(nerd), 게으름뱅이(slacker) 등으로 표현된다. 즉, 90 년대의 청년 들은 기성세대(여기에는 '히피 부모'들도 포함된다)가 물려준 열악한 사회 환경에 분노하고 있지만, 그 환경의 개선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야망 없는' 세대이다. 이 무관심이 때때로 자해의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그들의 정치는 '무관심의 정치' 혹은 '자해의 정치'라고 아이러닉하게 표현된다. 이런 담론들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는 어쩌면 얼터너티브의 일부 측면만을 일반화시키는 것일 수 있다. 얼터너티브는 기성의 규칙에 반대하는 태도와 신념이지만, 그 태도와 신념이 오직 '하나'인 것은 아니다. 또 얼터너티브는 단지 예술 장르가 아니라, 주류에 반대하는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로서, 90년대 이 전부터 전개되어 온 에콜로지, 페미니즘, 채식주의, DIY(Do It Yourself) 운동, 아프리카 귀환 운동, 외계인(혹은 UFO)연구 등 매우 이질적인 사회 운동들을 넓게 아우른다. 따라서 90년대를 얼터너티브의 '시대'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여러 대안들이 서로 접속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적 장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얼터너티브가 단순히 비주류가 아니라 주류에 반대하는 문화라면 (그런 의미에서 '반' 문화라면), 그것은 메인스트림과 인디펜던트, 메이저와 마이너의 확고한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문화적 장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얼터너티브의 현재 그리고 미래는? 그것은 다양한 대안들의 접속의 고리 들을 해체하여 각각의 대안을 '게토(GHETTO)'로 만들던가, 아니면 그것들을 더 많은 얼터너티브로 증식하여 더 넓은 연대를 달성하는가에 달려있다. 전통적으로 백인-남성-중산층 중심이었던 미국의 청년 문화가 이를 지속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분명한 것은 얼터너티브라는 용어를 쓰든 말든 그것은 한 시대의 질문이고, 그에 대한 답변은 미국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다른 시각에서 얼터니티브를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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