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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을 들으면 말이야.. 언제나 촛농으로 얼룩져 있던

김현승 |2007.01.17 13:05
조회 25 |추천 0

 

 

라벨을 들으면 말이야..

언제나 촛농으로 얼룩져 있던 네 까만 그랜드 피아노가 생각나.

도서관에서 빌린 오래된 악보들이 겹겹히 쌓여 있어서 앉을 자리도 없던 네 방도..

해 지는 저녁이면

큰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라벨의 소나티네을 들으며 얘기하기를

우린 좋아했었잖아.

넌 항상 빨간 말보로를 피고

난 엄청난 양의 커피를 마시고

아직도 올리브빛 셰도우가 어울리던 네 예쁜 옆 얼굴이 생생해.

스탠드 조명을 티셔츠로 덮고선 자미로콰이로 깔깔거리며

둘이서 춤추다가 결국은 티셔츠가 다 타버렸던것도.

불 꺼진 학교 오페라 하우스에서 마주보며 잠깐씩 잤던 낮잠도.

음악 얘기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떠들어댔던것.

같이 비엔냐브스키나 사라사테 소품 따위를 같이 얼렁뚱땅 연주하곤

없었던 일로 하자며 웃었던것도.

양파를 썰땐 명품 선그라스를 끼고

소시지의 끄트머리는 들개들을 위한다며 꼭 밖으로 던졌지.

그렇게 많이도 웃었는데

우리가 나눴던 수많은 얘기들의 대부분은 참 슬픈 얘기였던거 같아.

공부와 생활은 혼자서도 했지만

그 외의 홀로 감당해야 하는 거대한 감정들에는

우리 둘다 너무 어렸으니까..

그렇게 많이 울고 웃었던 우리

아직도 새벽에 네가 찾아와 내 방 문 앞에 끼워놓고 간 편지를 가지고 있어.

너와 나만이 아는 추상적인 개념의 표현들..

아마 앞으로도 더이상 날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것 같아.

평생 간직하고도 아까울 만큼

그렇게 소중히 간직해..

 

 

오늘 말이야..

주문한 라벨 음반이 도착했어.

분명 똑같은 라벨인텐데

그게 너랑 같이 듣던 꼭 그 곡 같지가 않아.

누가 연주한 건지 그 때 물어볼걸 그랬나보다고

몇 번이고 후회해..

한 번 들어보면 금방 알 것 같은데

그걸 찾기가 참 쉽지가 않아.

 

 

 

지금쯤 독일에 있겠지..?

 

So , you  happy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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