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원의 반계수록
노광우
|2007.01.17 14:36
조회 174 |추천 0
이 책은 정말 읽은 기억은 있는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그래서 언제 시간이 되면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벼르고 있는
책중 하나다. 책은 동서양의 고전을 총망라하여 출간한 삼성문화사
인가 삼성출판사에서 나왔다.
이런 고수필류의 책을 읽을 때 어려운 점중 하나는 미터법도량형을
배워서 옛날 도량형 용어를 몰라 옛날 토지나 기구의 길이, 무게,
나비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책을 낼 때 책말미에 도량형
환산표를 하나 달아주던지, 아니면 관련도표나 삽화가 나올 때 괄호
열고 미터법 도량형을 표기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거 정도가 기억난다.
내용상으로 보면 유형원이 당대 조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일종의 경제 사회 정책론으로 보면 된다.
유형원 개혁의 핵심은 아마 여전제인가 한전제인가 일텐데 (둘중
하나는 정약용것인데 어느 게 누구 것인지 솔직히 기억이 안난다)
여전제는 일종의 토지공동소유제도일텐데, 토지를 개별 소유용
토지와 공동경작지인 여(閭)를 두고 이를 공동체구성원들이 함께
경작하는 제도인가 그럴거다. 비슷한 제도로 정전제가 있는데
이는 토지를 우물 정(井)자로 아홉개의 지역으로 구획하고 가운데
토지에서 나오는 산출물을 왕에게 바치는 제도이다. 여전제는
공동체의 성원이 나누는 분배제도라는 점, 정전제는 결국 조세제도
라는 점이 다르다. 한전제는 토지소유의 상한선을 두어서 부의
편중을 막자는 얘기일 것이다. 이런 제도의 이론적 기반은 유형원
이나 정약용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고, 중국의 하은주시대에 형성된
토지제도를 참고로 해서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하자는 얘기이다.
결국 그들의 교양의 근간은 유교이니 거기서 온고지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그러는 거다.
혹시 여기서 결국 또 중국의 제도를 본받는가 왜 우리는 우리 고유
의 것이 없는가 하는 자괴감을 가지시는 분들이 계실 지 모르는데,
서양의 르네상스라는 게 결국 그 당시 유럽사람들이 잊고 지내던
그리이스 고전문화를 되살려낸 거부터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리
독창적이지않기는 우리나 그들이나 매한가지라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요컨대 '독창적'이라는 말에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이
차라리 '동아시아적'이라는 말로나마 있는 것은 있는 데로 인정
하고 새시대에 맞게 갱신하고 경장하여 '르네상스'에 버금가는
흐름을 인류에게 선사하는 게 더 낫다.
(흥, 기억이 안난다고 해놓고는 잘도 떠들고 있군. 어쨌든 그래서
시간되면 다시 읽어야된다)
조선사회가 농업에 근간을 둔 사회였음을 감안하고 지금 사회가
상공업 나아가 서비스업 위주의 사회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결국
경제적인 문제는 재화의 독점과 이로 인해 야기된 부의 편중이
사회문제라는 점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별로 다른 게 없는 것같다.
논리의 비약일 지 모르나 생산력을 증진시켜 절대빈곤을 해결하는
것과 생산력은 그저 그런 수준일 지라도 부의 편중을 막음으로써
만민의 복지를 꾀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인간적이고 더 효율적
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야 뭐 딱히 굶지만 않는다면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그만일 뿐이지만.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기본적인 것은 달라지지않는다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맥락은 다르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역시 기본적인 문제는 달라지지않았다)
유형원의 반계수록이 나온 게 아마 광해군-인조-효종조의 17세기
초반일 거다. 서양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된 게 15세기이고, 토마스
모어의 이상적 공산주의 저작 '유토피아'가 나온 게 17세기,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가 나온 게 아마 17세기말에서 18세기초,
사회계약설이 대두된 게 18세기초중엽이라고 보면, 유형원의 사상
(또는 내가 윤색한 사상)이 그리 늦게 나온 것은 아니다.
다른 점이라면 유형원의 개혁사상은 실현되지않고 좌절된 반면에
서양의 사상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후대의 인물들은 부분적으로
나마 그것을 실현했다는 게 차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