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연길의 여름은 살갗을 태워버릴정도로 따가웠다.
17만의 조선족이 설움의 산역사를 짊어지고 사는 곳.
고등학교 1학년 무렵 ,
연길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더 내달려 찾았던 '도문'.
다리 건너의 북한을 바라보며
유유히 흐르는 두만강의 물결속에
강산에의 '라구요'를 흘려보내던 그 순간에,
한때의 소나기가 뿌려져 뙤약볕의 흥건한 내 설움을 식혀주던
97년 여름날의 추억이 스친다.
그 날은 두만강도 울고, 나도 울고, 그렇게 하늘도 울었다.
내 생에 처음으로 민족에 대한 단상을 갖게한 그 날이 있은 후로,
2003년에는, 6.15 남북 공동성명이라는 크나 큰 민족화합의 성과가
7000만 한반도인들의 묵은 체증을 토닥거리던 그 때의 감동이
내게는군복을 입고 보초를 서는 순간에 철통근무라는 아이러니한 현실로 다가왔을 뿐,
그 해 여름 이후에는 나는 늘 그냥 한국인일뿐이었다.
조선은 역사책의 조선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오늘 본 이 한편의 다큐는
마치 그 날의 소나기와 같았다.
조총련계 도쿄제2학교의 운동장 소유권에 관련,
도쿄도와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참혹한 현실속에서
단지 한민족이라는사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아름다운 어린이들과 그의 부모들과, 관련 교육인들은 화합이라는 영글어진 자존심으로
꿋꿋히 살아가고 있었다.
온갖 정치색이 만연한 골초적 사상들은 떠나보내고,
조선이냐, 대한민국이냐 국적을 논하기를 거부하는
재일동포들의 눈물겨운 소망은, 단지 통일이었다.
그들의 2,3세 자녀들은 자랑스러운 '한반도인'이었던 것이다.
11살 학생 셋이 모여앉아 이병헌, 배용준을 얘기하며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단다. 그리고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이야기 하더니 갑자기 주춤거렸다. 한 아이가 친구에게 ,그들의 동무에게 묻는다.
"왜? 통일되면 이름때문에 그러나?"
"응..."
잠시 숙연해진 그 순간에 씩씩한 녀석이 팔을 들고 나섰다.
"코리아!! 코리아가 좋겠어요!!"
"그래! 그거 좋다!!"
"통일코리아!!!"
"까르르르르"
통일코리아.통일코리아.
언젠가는 울며불며 반세기를 넘나드는 감동의 장이 판문점에서 열릴테다.
JSA공동경비구역에서 이병헌과 신하균이 침 뱉기 놀이를 하던 그 공간에 아이들이 고무줄을 하고 자유로이 뛰어 다닐 때는 곧 올테지만......
사투리를 쓰는 두 형제의 작교를 위해서 너와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실로 되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안팍으로 선행되지 못한 가슴의 준비를 이제 서서히 해야하지 않겠나.
통일코리아는 남북의 서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의 마음에서 부터 싹을 틔움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