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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배가 곺았다

토곡산 |2006.07.16 07:42
조회 562 |추천 0

찰떡을 먹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배곺픈 김에 뜨거운 찰떡을 덥썩 베어 물었다가 입천장에 달라 붙는 바람에 입안을 홀랑 데인 일이 있다. 일본에서도 어떤 노인이 찰떡을 먹다가 찰떡이 목안에 달라 붙는 바람에 숨이 막혀 사망한 일이 있다
일본인들은 세계에서 찰떡을 제일 좋아하는 민족이다. 고명(콩가루나 팟가루)은 묻치지 않고 떡을 떼어서 손으로 이리저리 굴려 가면서 먹는다. 식민지 시대 때, 찰떡을 먹는 왜인들의 모습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기억 하고 있다.

그 당시 왜인들은 우리가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 놓으면 모조리 강탈해 가고 우리에게는 콩깨묵을 배급해서 먹게 하였다. 어떤 노인의 증언인즉, 그나마 변질되어 냄새 나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들은 찰떡을 해서 배터지게 먹어댔다. 이러한 사례는 그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던 군산에서는 얼마던지 목격할 수 있었던 일이다. 왜인들이 찰떡을 해서 여유롭게 먹고 있는 모습을 담너머로 바라 봐야 했던 우리들은 너무나 배가 곺았었다.

탈곡을 할 때는 면사무소에서 일본인들이 나와서 행여 벼를 빼돌릴세라 감시를 했다. 그래서 웅덩이 옆에다 탈곡장을 벌린다음 눈치껏 볏가마를 웅덩이 속에다 집어 넣었다가 나중에 건져다 말려서 찧어 먹기도 했는데, 이렇게 물속에 들어 갔다가 나온 벼는 찧는 과정에서 모두 싸래기가 되어 버렸다.
군산시 옥구면 선제리의 창고에는 일제가 수탈한 양곡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배곺픈 우리는 이것을 수십리나 되는 군산항까지 지게에 짊어지고 가서 넘겨주고는 몇푼의 품삯을 받았다.

감시가 그리 심한 것도 아니였지만 볏가마를 지고 집으로 숨어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걸렸다가는 그날로 생을 마감해야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생을 마감해도 그낭 마감하는 것이 아니다. 초죽음이 되도록 고문을 당해야 하는 것은 정해진 순서이고, 고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불구가 되어 죽지도 못하고 비참하게 살아가야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은 재미삼아 우리 한국인들을 잡아다 놓고 두둘겨 패대는 일도 많았다.

왜놈 순사가 대청마루에 의자를 갖다놓고 앉아서 지휘봉으로 구둣 바닥을 탁탁 치면서 협박을 할 때, 불려온 마을 사람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토방아래 마당에 무릅이 끓린 채 고개도 들지 못했다. 행여 저항적인 모습으로 보여질가 보아 몸을 바짝 사려야 했던 것이니, 자칫 믿보이기라도 해서 끌려 갔다가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보내져 불귀의 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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