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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함정윤 |2007.01.20 12:24
조회 90 |추천 2
  우리 시대 도시인의 현주소를 엿보는 달콤쌉싸름한 재미   서른 한 살…… 사랑이 또 올 거 같니? 쿨~한 척하는 그녀들의 진짜 속사정  


- 2007년 1월 19일 금요일 -

'아내가 결혼했다'이후로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현대 소설이다. 아직 20대의 첫차를 타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에게도 돌아오게 될 30대의 고민과 일상, 그리고 결혼에 대해 미리 고민하게 해주었다. 은수,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 재인과 유희. 태오와 영수, 그리고 유준. 이 젊은 사람들이 이끌어 나가는 달콤한 도시의 세계는 아름답고 또 신비롭다.

은수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마음 속 깊이에 간직하고 있는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쩜 이렇게 마음에 와 닿을 수 있을까? 사랑에 고민하고 직업에 있어서 한계성을 느끼고 일상에서의 탈출을 바라지만, 막상 하지는 못하며 약간의 속물근성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 비쳐진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나의 30대가 어떻게 전개 될지 심히 궁금해 진다. 두려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생의 시작도, 사랑도,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도... 내가 어느 곳에 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삶의 한 순간 순간마다 그 순간을 느끼며 달콤하게 맞이하고 싶다.

 

 

-------43쪽

후회하지는 않으련다. 혼자 금 밖에 남겨진 자의 절박함과 외로움으로 잠깐 이성을 잃었었다는 핑계는 대지 않겠다. 저지르는 일마다 하난하나 의미를 붙이고, 자책감에 부르르 몸을 떨고, 실수였다며 깊이 반성하고, 자기발전의 주춧돌로 삼고, 그런 것들이 성숙한 인간의 태도라면, 미안하지만, 어른 따위는 영원히 되고 싶지 않다. 성년의 날을 통과했다고 해서 꼭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나는 차라리 미성년으로 남고 싶다. 책임과 의무, 그런 둔중한 무게의 단어들로부터 슬쩍 비껴나 있는 커다란 아이, 자발적 미성년.

 

-------53쪽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래왔다. 선택이 자유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항상, 뭔가를 골라야 하는 상황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진땀을 흘려대곤 했다.

때론 갈팡질팡하는 내 삶에 내비게이션이라도 달렸으면 싶다. "백미터 앞 급커브 구간입니다. 주의운행하세요." 인공위성으로 자동차 위치를 내려다보며 도로 사정을 일러주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처럼, 내가 가야 할 길이 좌회전인지 우회전인지 누군가 대신 정해서 딱딱 가르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106쪽

모든 고백은 이기적이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고백을 할 때, 그에게 진심을 알리고 싶다는 갈망보다 제 마음의 짐을 덜고 싶다는 욕심이 더 클지도 모른다.

 

-------114쪽

쇼핑과 연애는 경이로울 만큼 흡사하다.

한 개인의 파워를 입증하는 장(場)일뿐더러, 그 안에서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정서적 안도감을 느낀다. 여유로운 시간과 젊음이 있을 때는 경제력이 받쳐주지 않고, 경제력이 생겼을 때는 여유로운 시간과 젊음을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재화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쇼핑도 연애도 인간을 고뇌하게 한다.

 

-------139~140쪽

나는 소비하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소비하는가.

좋다. 살기 위해 소비한다고 치자. 그런데 카드 영수증과 교환한 물건들을 받아들어도, 인생을 탕진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치미는 것은 왜일까?

인생을 소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관계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사랑에 몸을 던지나 보다. 순간의 충만함, 꽉 찬 것 같은 시간을 위하여. 그러나 사랑의 끝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소모하지 않는 삶을 위해 사랑을 택했지만, 반대로 시간이 지나 사랑이 깨지고 나면 삶이 가장 결정적인 방식으로 탕진되었음을 말이다.

 

-------148쪽

어제와 오늘이 별다르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과 내일 사이에도 경천동지할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에는 매듭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한하게 지속되는 그 반복성이 두려워 자꾸만 시간을 인위적으로 나누고 구별 짓고 싶어한다. 아아, 그렇게 해서라도 복잡한 현재를 깨끗이 털어버리고 맑은 새날을 맞이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맨발로 폴짝폴짝 뛰어 내일을 마중 나가겠다. 

 

-------226~227쪽

"그래, 결혼하니 좋아?"

유희의 질문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재인의 대답은 썩 아리송했다.

"좋거나 나쁘거나, 뭐 그런 성질의 것은 아니야."

"그럼?"

"그런 걸 초월한 어떤 단계에 진입했다고 할까. 작은 감정들에 예민하게 일일이 신경을 쏟으면 힘들어서 살아갈 수가 없어. 뭐랄까, 업무가 지루하고 반복적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꽤나 안정적으로 신분 보장이 된다는 장점이 있는 회사에 취직한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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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엔, 서른 살이 넘으면 모든 게 명학하고 분명해질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 반대다. 오히려 '인생이란 이런 거지'라고 확고하게 단정해왔던 부분들이 맥없이 흔들리는 느낌에 곤혹스레 맞닥뜨리곤 한다. 내부의 흔들림을 필사적으로 감추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일부러 더 고집 센 척하고 더 큰 목소리로 우겨대는는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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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말들은 잘한다. 각자의 등에 저마다 무거운 소금 가마니 하나씩을 낑낑거리며 짊어지고 걸어가는 주제에 말이다. 우리는 왜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판단하고 냉정하게 충고하면서, 자기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만 하는 걸까. 객관적 거리 조정이 불가능한 건 스스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차마 두렵기 때문인가.  

 

-------359쪽

싸움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할 때, 잘못된 관점을 교정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저 사람을 내 힘으로는 죽어도 바꿀 수 없다는 확신이 들 때는 싸움 대신 외면을 택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오랫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440쪽             

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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