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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탐정 김전일 단편소설 - 길잃은 악마

윤자연 |2007.01.24 16:20
조회 79 |추천 1

데몬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무리도 아니겠지. 무릎까지 오는 눈 쌓인 산길을

장장 4시간이 넘도록 걸어왔으니까.

사체를 처분하기 위해 찾은 이 산 속에서 생각지도 않던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 악운의 시작이었다.

경관에게 검문을 받을 때까진 별다를 것 없었다.

소속되어 있던 극단에선 소위 연기파로 통한다.

고작 2,3분의 잡담으로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그놈의 개 때문에!

데몬은 발에 달라붙은 눈을 걷어찼다.

발목을 잡힌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만약을 위해 등에 감추어뒀던 칼로 잽싸게 경관을 찔렀다.

칼부림에 익숙지 않은 탓에 급소를 벗어난 게 원통했다.

피투성이로 쓰러지면서도 권총을 드는,

직업정신 투철한 경관 덕에 차를 내팽개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내리기 시작한 눈에 몸을 숨길 작적으로 산 쪽으로 향했지만

더욱 최악의 사태를 초라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때 지난 세찬 눈보라에 길을 잃고 이 꼴이 되어 있었다.

산기슭에선 대대적인 수색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눈 속에선 경찰도 옴짝달싹 못할 것다.

그나마 그것이 나름대로 다행이었다.

아직은 붙잡힐 리 없을 테니까.

모처럼 살인의 재미를 알기 시작했건만.

그러고 보니 이 손으로 목 졸라 죽인 사람 수도 이제 그럭저럭 아홉 명 째다.

이제야 두 자리 수가 되려는 찰나에 정말이지 재수가 없었다.

데몬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장갑 속에서 감각을 잃기 시작한 손가락이 세게 움켜쥐니 욱씬거리며 쑤셨다.

머리위로 쌓이는 눈을 털어내며 생각했다.

만약 도주에 성공하면 얼굴을 성형하고, 그 후엔 일자리를 찾고...

그렇게 자리를 잡게 되면 또다시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죽이자.

이 손으로.

모자기를 콱 비틀어서...

그런 생각을 하니 힘이 솟구친다.

멈춰있던 다리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쌓여있는 눈가루는 발로 걷어차니 마치 밀가루처럼

얼굴 주변까지 피어올랐다.

천천히 발치를 확인해가며 데몬은 산길을 걸어나갔다.

행선지 따윈 없었다. 하지만 길이 끊이지 않는 이상,

그 끝엔 뭔가가 있을 터.

그렇게 믿고 눈에 파묻힌 완만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이윽고 미친 듯이 흩날리는 눈보라 사이에서

눈길을 끄는 주홍색 지붕이 보였다.

민가 지붕이다. 창문에도 불빛도 보인다.

데몬의 입가가 슬며시 치켜올라갔다.

살인마 데몬의 예상치 못할 광기가 엿보이는 교활하고 잔인한 미소였다.

남은 수 백 미터.

단숨에 가자.

단숨에 가서... 또다시...

 

"이제 작작 좀 와라, 빌어먹을 눈아!"

김전일은 폴을 세차게 휘두르며 말했다.

폴에 걷어차인 눈덩어리가

자신에게 돌아와 콧등을 때린다.

"아이쿠~!"

그 모습을 곁눈으로 흘려보며 미유끼는 기가 찬 표정으로 말했다.

"전일이 네가 스키장도 아닌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내려오는 바람에 이 모양 이 꼴이잖아."

"그치만 눈보라 때문에 리프트가 멈춰버렸으니

그대로 똑바로 내려가면 펜션이랑은 완전 딴길로 가버릴 거 아냐.

같은 산이니까 사선으로 가로지르면 펜션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그렇게 말하며 전일은 콧등에 달라붙은 눈덩어리를 닦았다.

"그렇게 생각 안 해. 아무도."

미유끼는 점점 더 기가 차다는 얼굴로,

"-대개는 일단 아래까지 내려가서 택시를 타고

펜션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한다구.

원래 전일이 넌 어렸을 때부터 남들은 생각지도 않거나

가지도 않는 방향만 골라서 간다니까..."

"아, 말 되게 많네.

나 이거 참, 너랑 걑이 여행 오면 조난을 당하지 않나,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질 않나..."

"야, 김전일! 그건 내가 할 소리지.

에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잖아?

이상한 곳에 스키 타러 가자고 하더니 조난 당할 뻔하고.

거기다 간이숙소에 피신했더니 살인사건까지 일어나고..."

"어이, 미유키! 땡 잡았다!"

"야, 내 말 듣고 있냐? 남의 얘길..."

"그만 하고 저길 봐. 저 집 말야!"

전일은 폴로 경사면 밑으로 보이는 커다란 빨간 지붕을 가리켰다.

"어, 그치만 아까 있었던 별장에도 아무도 없었잖아.

이 주변의 별장은 겨울엔 아무도 안 쓰는 게 분명해..."

포기한 얼굴인 미유끼에 대고 방정맞은 웃음을 지으며 전일은 말했다.

"걱정 말래두. 봐, 저 고드름."

"고드름?"

"그래. 지금까지 봐오던 텅 빈 별장에는 저렇게 큰 고드름이 없었잖아?"

"그러고 보니까... 그치만, 그게 뭐가 어쨌다구?"

"고드름이란 건 일단 지붕 위의 눈이 녹아내렸다가

추위로 인해 다시 얼어붙은 거잖아.

커다란 고드름이 있다는 건

지붕의 눈이 쌓임과 동시에 녹아내린 만큼,

저 집이 따뜻하단 증거 아니겠어?"

"헤에, 그, 그렇구나..."

"자, 가보자. 분명 저 안엔 난방이 되어 있어서 따뜻할 거야."

"그래."

그렇게 대답하고 믿음직하진 않지만

이상하게도 믿음이 가는,

약간 특이한 소꿉친구의 등을 잠시 쳐다본 후,

"같이 가, 전일아!"

하고 미유끼는 웃으며 뒤쫓아갔다.

 

"이야아, 고맙습니다. 덕분에 죽다가 살았어요."

전일은 눈에 젖어 축축한 머리를 닦으며

드넓은 현관에다 스키화를 벗어던졌다.

그리고,

"엄청 큰 산장이다. 이 현관만 해도 우리 집 정도는 되겠어."

하고 말하며,

젖은 양말로 아무런 거리낌없이 고급스러운 마루 깔린 복도에 올라섰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얘, 전일아, 스키화는 가지런히 벗어놔야지!"

미유끼는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하며 난잡하게 벗어제친

전일의 스키화를 정돈했다.

"마음 편하게 먹고 쉬세요.

오늘은 두 분 말고도 손님이 더 오셨으니까."

이 산장의 주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웃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남자는 30대 중반쯤 되는 나이의,

머리를 헤어젤 같은 걸로 올백으로 빗어넘기고,

번쩍번쩍 광택 나는 두꺼운 옷감의,

정말이지 고급스러운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뿐이 아니라니."

하고 묻는 전일.

남자는 묵직해 보이는 나무문에 손을 댄 채 멈춰 서서,

"실은 아까부터 손님이 끊이질 않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갑작스러운 눈보라로 피난 온 모양이지.

정말 나도 이런 눈은 처음 봤다니까.

원래 같으면 지금쯤 날씨가 따뜻해질 계절인데.

나도 눈이 녹기 전에 스키라도 타려고 와봤는데,

이게 뭐, 일 주일 늦게 왔어도 충분히 탈 수 있었겠어.

이 폭설로 봐선. 역시 전세계적으로 이상기온인가 봐. 하하하하."

하고 혼자서 지껄여댔다.

"그래도 운이 좋았어요, 정말."

하고 말하는 김전일.

"이 주변엔 별장들이 꽤 있었지만,

사람이 있는 집은 한 채도 없더라구요.

이 집에도 사람이 없었으면 정말 조난 당했을지도 몰라요."

남자는 문을 밀며,

"그렇겠군, 그거 정말 행운이야.

나도 우연찮게 3일 전에 왔거든.

그것도 한 달만에.

여긴 별장이에요.

여름은 제쳐두고, 겨울엔 두, 세 번씩 와서

1주일간 스키 타고 갈 정도니까...

이 집 말고도 겨울엔 이 근처 별장은 전혀 쓰지 않는 것 같던데,

정말로 얼어죽을 수도 있었겠어. 하하하하."

비싸 보이는 가운에 걸맞는 여유작작한 웃음이었다.

두 사람에겐 웃을 일이 아니었지만.

전일과 미유끼도 얼굴을 마주보며 일단 애교웃음을 지어보였다.

"자, 어서 안으로 들어와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손바닥을 위로 하고 들어 정중하게 안내했다.

문 안쪽은 드넓은 홀처럼 생긴 곳이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물씬 풍겼다.

"와아, 멋지다."

미유끼가 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반달눈을 하며 말했다.

천장은 지붕의 경사면을 드러내는 형태로 탁 트여있고

군데군데에 나무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통나무가 죽죽 가로질러져 있다.

바닥은 전부 마루다.

그것도 두꺼운 진짜 마루일 것이다.

구석에는 커다란 관엽 식물이 보기 좋게 놓여있고

창가에도 천장에 매달린 화분에 심긴 화초가

공기청정기의 부드러운 바람을 맞아

그 잎이 살짝살짝 살랑이고 있었다.

차분한 흰색의 회반죽으로 칠해진 벽엔 군데군데

간접조명을 비추고 있고,

그 아래엔 제각각 고상한 그림이 걸려 있다.

"우와, 교과서에서 본 적 있는 저 그림...

어디 보자, 작가가 누구였더라. 아, 맞아... 파타리로!"

전일의 무식에 웃음을 터뜨리며 미유끼가,

"유트리로겠지? 엄청 유명한 파리의 화가잖아."

"오오, 그 유트리로. 쥑인다, 저거 얼마나 나갈까?"

"멍청아, 저건 복제품이지. 진짜는 루브르에 있다구."

"뭐야, 가짜였어."

"쉿, 으휴... 큰소리로 떠들어댈래!"

미유끼는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들어올려

전일에게서 멀찌감치 피해가듯 잽싸게 홀 안으로 들어갔다.

"쳇, 지가 그래놓고."

하고 투덜거리며 전일은 다시 한번 홀을 둘러보았다.

홀 안에는 커다란 철제로 된 장작 스토브가 떡하지 자리잡고 있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느껴졌던 아늑한 느낌의 온기는

거기서 나오는 모양이었다.

"아이구, 이거 또 조난자들입니까."

치직거리는 장작 타는 소리 사이로 우렁차고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장작 스토브를 둘러싸듯 놓여있는

가죽제 커다란 소파에서 나이로 보면 30대 전후반의

땅딸막하고 살찐 남자가 일어섰다.

"-오, 이번엔 상당히 어린걸. 고등학생쯤 됐나?"

덩치의 정면에 앉아 있던 히구치라고 불리는 여자가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히구치는 앉아 있어도 알아챌 만큼 키가 상당히 큰 여성이었다.

170센티 이상은 될 정도로,

어깨도 넓고 전체적으로 근육질의 인상이다.

머리는 짧은 커트로,

짙은 화장 탓인지 이목구비가 또렷한 얼굴이었다.

혹시 서양인의 피가 어느정도 섞이지 않았나 느껴질 만큼.

나이를 짐작 못할 외모지만 아마도 20대 중반은 됐을 것이다.

두 사람을 홀 안으로 안내하며 산장 주인은 격식 있는 표정으로,

"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하고 머리를 숙였다.

"전 이 별장 주인, 온다라고 합니다.

곧 따뜻한 차를 내올테니 천천히 몸을 녹이세요."

온다가 그렇게 말하며 나가자,

그를 대신해 살찐 남자가,

"어이, 얘들아. 너희들도 이리 와서 앉아. 여기 되게 따뜻해."

하고 말하며 자리를 비켜주기 시작했다.

전일은 그런 그를 향해,

"아, 땡큐땡큐. 먼저 오신 손님들이시군요.

우리 피차 고생이 많네요. 핫핫핫."

하고 넉살좋게 손을 흔든다.

"얘 좀 봐. 실례잖아.

처음 보는데다 나이도 많은 분들한테. 죄송합니다.

원래 상식이 없는 애라서..."

그러는 미유끼.

전일은 듣는 둥 마는 둥 폭삭 젖은 스키 재킷을 바닥에 벗어던지고

"오오, 따뜻하다. 야, 미유끼. 너도 빨랑 이리 와."

"전일아, 창피하게스리, 정말..."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유끼도 겨우겨우 확보한 자리에서

서둘러 엉덩이를 지지기 시작했다.

"옷차림으로 보아하니 스키 타다가 길을 잃은 모양이지? 아닌가, 학생들."

"맞아요. 이 녀석 때문에."

하고 미유끼를 가리키는 전일의 손에 미유끼의 손톱이 잭까닥 꽅힌다.

"전일이 탓이라구요!"

"아야야야! 노, 농담이었어!"

"큭, 재미있는 애들이야."

두 사람의 행동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키 큰 여자가 말했다.

"앉아. 어차피 이런 눈보라로 봐선

당분간 이 산장에 갇혀있어야 할 텐데, 사이좋게 지내자구."

"맞아맞아. ...아, 이 미녀 분의 성은 화산의 입구란 뜻으로,

미구치에 이름은 눈의 아이, 유키코,

히구치 유키코야."

"아는 분이세요? 두 분은?"

살찐 남자가 친한 척하는 모습에 아무 생각 없이 미유끼가 물으니

남자는 입을 쩍 벌리고 허연 이를 드러내며,

"하하하하, 아냐아냐. 우리도 좀 전에 만났다구.

그렇죠, 히구치 씨."

히구치 유키코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응, 맞아. 생판 남이지."

하고 말하며 시선을 돌렸다.

"히구치 씬 이 근처에서 자동차가 눈에 박혀서 못 움직이게 됐대.

난 등산하다가 폭설에 갇혔고...

재수가 없어서, 원.

일기예보에선 맑을 거라고 하길래 아무것도 안 챙겨 왔는데

죽을 뻔했지 뭐야. ...아참, 자기소개 시간이었지.

난 만엔 지폐의 만에 밭전, 만다.

빛나는 남자란 뜻의 미츠오.

만다 미츠오.

잘 부탁해요! 일단 코미디언이긴 하지만

전혀 유명하진 않죠. 하하하하."

"헤에, 코미디언이셨구나. 대단하다.

그럼 텔레비전에도 나오세요?"

하고 묻는 미유끼.

만다는 또다시 가지런한 이를 뽐내듯 입을 쩍 벌리고 웃는다.

"하하하하. 안 나와, 안 나와. 무대에만 나가지.

밥벌이는 거의 낮에 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니까.

...응? 지금 무슨 소리 안 났나? 딩동하고."

"맞아요, 무슨 소리가 났어요."

미유끼가 일어나서 현관 쪽을 살폈다.

만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포즈로 말했다.

"혹시 또 손님인가?"

잠시 후 온다가 5명분의 커피를 얹은 왜건을 밀며 새로 온 손님을 데리고 나타났다.

온다는 복잡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또 손님 한 명이 늘었네요.

스노보드를 타다 코스를 벗어나 길을 잃었대요..."

하고 뒤를 따라오던 키 큰 남자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20대 후반쯤의 나이에,

상하 모두 회색의 우중충한 옷을 입고 있었다.

스노보더 특유의 큼지막한 장갑을 제외하면

작업장에서 막 나온 스타일이다.

남자는 눈이 남아 있는 머리를 넙죽 숙이며 말했다.

"아니, 정말 장난이 아니었어요. 멍청하게 보드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이 눈보라 속에서 걸어가야 하나 싶어서...

아, 죄송합니다.

전 오오토리라고 합니다. 오오토리 타츠마. 잘 부탁합니다."

"...들으셨죠."

테이블에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 해도 졌으니, 이 분이 마지막 손님일 거예요.

이 폭설이 멈출 때까진 제설차도 못 올 테고,

여러분이나 나나 2,3일간은 여기서 썩게 생겼네요, 뭐.

사이좋게 지내보도록 합시다."

"썩는데..."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전일은 그 목소리에 이끌린 것마냥 문득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보이는 건 그저 미친듯이 흩뿌리는 굵은 눈과

숨이 막힐 듯한 밤의 어둠뿐이었다.

"맞다, 고등학생들, 자네들은 아직 이름이고 뭐고 밝히지 않았잖아?"

짧은 침묵마저 싫은듯 자칭 코미디언인 만다가 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전... 미유끼고,

얜 어렸을 때부터 친구인 김전일이에요."

"안녕하세요."

전일이 커피에 밀크를 넣으며 생뚱맞게 대답했다.

또 미유끼가 옆눈으로 흘긴다.

"김전일? 왠지 옛날 탐정 같은 이름이네."

하고 말하는 오오토리.

미유끼는 미소를 스윽 흘리며 대답했다.

"맞아요. 그 탐정 코우스케의 손자거든요, 얜. 맞지, 전일아?"

그 순간이었다.

전일은 뭔가 살기 같은 것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누구에게서 오는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순간 누군가의 악의가 전일에게 쏟아지는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천재로 불리는 탐정의 피를 이어 자신도 수많은 괴사건에 휘말려온

김전일 소년다운 직감이 그걸 가르쳐 준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데몬은 당황스러웠다.

설마 이런 산 속 별장에, 그것도 이런 눈보라 속에

자신 말고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었다니.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실수를 했다간

순식간에 되돌릴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어쨌건 밤이 깊어질 때까지 얌전히 연극을 하는 수밖에 없다.

밤이 깊어지고 이 녀석들이 잠들면...

데몬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피 잔을 입가로 가져가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이 분명 미유끼라고 했지.

등까지 내려오는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

부러우리만큼 윤기 있는 머리였다.

그 가느다란 목에 이 손을 가져가면 어떤 느낌이 들까.

멍청하게 경동맥을 압박하고 곧장 의식을 잃게 하면 안 된다.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즐길 수가 없으니까.

목을 비틀면서 기관을 막는다.

그렇게 숨통을 천천히 조여주는 거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언저리부터

뜨거운 것이 밀려 올라오며 목을 태우고

얼굴을 뚫고 뇌 속을 마비시킨다.

아니면,

아예 모조리 죽여버리면 된다.

자는 틈에 습격해 아무도 모르는 사이 한 명씩 처치해 버릴까?

아니, 그러면 재미없다. 그렇다. 미스터리 소설에 자주 나오듯,

이 눈 속에 처박힌 산장에서 아침에 눈뜰 때마다 한 명,

또 한 명씩 사체가 굴러나오는 패턴은 어떨까?

마침 명탐정의 손자라는 소년도 있고 한데.

재밌겠다.

잠이 들면 잽싸게 그 산장의 주인부터 처치하고,

그 후엔...

데몬은 옆 눈으로 미유끼를 훔쳐보았다.

...저 소녀다.

여주인공을 죽이면 명탐정의 손자 녀석은 어떤 낯짝이 될까.

진짜 기대된다.

데몬의 시선이 김전일을 찾으려 허공을 해매던 찰나였다.

"맞다!"

전일은 커피 잔을 소리나게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다, 일기예보를 봐야지!"

전일은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TV쪽으로 걸어갔다.

"아, 일기예보. 나도 봐야지."

마지막으로 나타난 손님인 오오토리가 말했다.

"실은 휴가도 그저께로 끝난 터라 눈이 멈추지 않으면 곤란하거든요."

"근데 텔레비전이 나오려나, 이런 산 속에서."

하고 말하는 자칭 코미디언 만다.

"그거 잘 나와요. 그러니까 갖다놨죠."

산장주인인 온다가 비웃듯 말했다.

"큭, 그건 그러네요."

그렇게 말하고 히구치 유키코는 만다를 무시하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아, 기분 나쁜데, 그런 웃음.

혹시 히구치 씨, 나 싫어해요? 유감이네.

여기로 피신해온 후 곧장 히구치 씨가 들어오길래

얼마나 기뻤는 줄 알아요?

이 만남이 사랑으로 발전되지 않을까 싶어서..."

만다의 농담 같지도 않은 수다를 막듯,

달칵하고 소리를 내며 컵을 내려놓고 히구치씨는 말했다.

"그만 좀 해요. 나 원 참. 난 당신처럼 한가하지 않다구요.

자동차가 눈 속에 처박혀서 걱정돼 미치겠구만.

조용히 좀 하란 말예요."

"이, 이보쇼. 그런 말이 어딨나. 그야 나도 돌아가면 일도 있고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한가하지도 않지만,

이런 식으로 갇혀버렸으니 체념하고 분위기나 띄울까 한 건데..."

"자자, 여러분! 뉴스합니다, 자자!"

말싸움이 일 만한 분위기를 무마시키듯 전일이 큰소리로 외쳤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텔레비전에 꽂혔다.

지역 자체 뉴스가 나오는 것 같았다.

도쿄에 사는 전일과 미유끼에겐

눈에 익지 않은 얼굴의 남자 아나운서가

그 고장의 연중행사에 대한 평화로운 뉴스를 전하고 있다.

"오늘 폭설 얘기도 좀 있으면 하겠지..."

전일이 말을 꺼낸 그때였다.

갑자가 아나운서와 옆에 앉아있던 여자 아나운서 앞에

무슨 원고 같은 것이 날아오면서

두 사람의 표정이 긴장되었다.

[방금 들어온 뉴스입니다.]

하고 말하며 아나운서가 미간을 찌푸리자 동시에

화면에 흰 자막이 비쳤다.

[흉악 살인범, 경관을 찌르고 하쿠시카 산속으로 도주!]

"에그머니, 하쿠시카산이라면 이 근처잖아. 볼륨 좀 올려봐, 전일아."

전일이 볼륨을 올리자

여자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퍼졌다.

[교살당한 남자의 토막 난 시체를 버리러 온

범인에게 경관이 질문을 던지자

이 경관을 칼로 찌르고 하쿠시카 스키장 근처의 산 속으로

도주한 범인의 신원이 판명되었습니다.

범인은 나가노현에 사는 연극 단원, 데몬 쇼우-]

그렇게 말하던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갑자기 탁 끊겼다.

동시에 화면도 먹통이 되었다.

"어라? 왜 끊기는 거야, 이 텔레비젼."

전일이 소리치자 즉각 히구치 유키코가 일어서며,

"아, 죄송해요. 내가 그랬나봐."

하고 소파에 떨어져 있던 TV리모콘을 주워올렸다.

"당장 켤게요, 어디..."

허겁지겁 몇 번인가 찰칵거리며 리모콘 버튼을 누르는 사이,

핏하는 소리와 함께 브라운관에 영상이 비쳤다.

화면은 컵라면 광고였다.

"엥? 채널이 틀리잖아요."

하는 김전일.

"어라, 그런가? 몇 번이었지?"

"아니... 잘 모르겠으니까 적당히 돌려봐요."

"어, 어어."

히구치 유키코가 찰칵거리며 리모콘을 조작하는 사이,

좀 전의 여자 아나운서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그럼, 다음은 나가노 시내의 초등학교에서

탄생한 잉꼬에 관한 뉴스입니다.]

"에잇, 뭐야 이거. 벌써 끝났잖아. 아까 그 뉴스."

퉁퉁거리며 말하는 전일에게 히구치는,

"어머머, 뭐야. 뭘 오버하고 그래, 저깟 뉴스가 무슨 대수라고?"

하면서 입이 뾰로통해진다.

"하지만 기분 나쁘잖아요.

하쿠시카 스키장 근처 산 속이라면 바로 이 부근인데.

게다가 우린 스키장에서 여기까지 쭉 스키를 타고 왔지만

이 산장 이외에 사람이 있는 집은 한 채도 없었다구요.

그 살인마 같은 놈이 눈보라를 피하려고

이 산장에 숨어들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럴 리는 없을 거야, 김전일 군."

하고 오오토리 타츠마가 끼여들었다.

"나도 스키장에서 왔지만

도중에도 사람이 없는 별장이 몇 채 있었어.

보통 도주범이라면 이렇게 사람이 있는 산장보단 그 쪽에 숨지 않겠어."

"그럴까요. 사람이 없는 별장에선 등유 같은 것도 없어서

취위를 피할 수도 없을테고, 먹을 것도 없잖아요.

게다가 우리도 사람이 없는 별장을 몇 채 봤지만

전부 굉장히 살벌하게 문단속을 해놔서 쉽게 들어갈 수 없게 보였어요."

전일이 반박하자 오오토리는 약간 발끈한 모습으로,

"어이, 자네. 명탐정의 손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미스터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닌가?

이런 곳에 처박혀 있으니 불안한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자자, 두 사람."

이번엔 온다가 끼여들며,

"도주범인지 살인마인지 섞여 들어온들 걱정할 건 없어요.

주인인 내가 집에 들이지 않으면 되니까."

"글쎄요."

하고 히구치 유키코가 말했다.

"그 살인마란 놈의 얼굴도 모르니,

실수로 집에 들일지도 모르죠.

...아니, 어쩌면 벌써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히구치의 말에 요상한 공기가 흐른다.

"히구치 씨, 무슨 뜻이에요, 그건."

하는 만다.

온화해 보이는 가는 눈으로,

그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음흉한 빛이 비쳤다.

"왜 추리물 같은 데서 흔히 나오잖아요.

눈 덮인 산장에 모르는 남녀가 갇히고,

그 안에서 살인이 일어나는 얘기요.

범인은 그 멤버 속에 있지만 누군지 모르고..."

"잠깐, 뭡니까 이거!"

히구치의 말을 가로막으며 텔레비전 앞에 있던 전일이 악을 썼다.

"뭐, 뭐야?! 깜짝 놀랐잖아."

하는 히구치.

"아니, 텔레비전이 ...어라? 이런, 연결이 안 돼!"

브라운관엔 회색의 노이즈만이 비쳤다.

음성도 안 나온다.

"분명 안테나가 눈 때문에 꺾이거나 어떻게 된 걸 거야, 야단났군."

온다는 어디까지나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 아니네!"

하는 히구치.

온다와는 대조적으로 흥분된 목소리였다.

"드디어 호러영화 같은 상황이 벌어졌군.

설마 정말로 여기 있는 건 아니겠지, 살인마가."

"이제 그만해요, 그런 얘긴."

발끈한 표정으로 미유끼가 말했다.

"왠지 추워진 것 같아. 배도 고프고, 저녁 먹지 않을래요.

온다 씨, 내가 뭣 좀 망들께요. 공짜로 재워주는 것도 미안한데."

"아, 아뇨, 괜찮아요, 미유끼 양. 손님에게 그런 걸 시킬 수는 없지.

장소가 이러니 거창한 건 못 만들지만 저녁은 내가 준비할 테니까

여러분은 쉬고 있어요. 맞다, 먼저 방을 안내하죠.

인원에 딱 맞게 방이 있으니까."

하고 온다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헤에, 굉장하네요. 난 현관에서 잘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하는 오오토리.

온다는 웃는 얼굴로,

"아니, 원래는 내가 경영하는 회사의 휴양소로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장소가 불편해서 결국 나랑 몇몇 친구들만 쓰고 있어요.

하지만 별장이란 건 방수가 많은 편이 좋죠.

자택하고 달라서 올 땐 한꺼번에 우루루 오니까."

"맞아요, 그렇겠네요. 그건 그렇고 온다 씨, 사장님이셨어요?"

"하하하. 뭐, 그렇게 됐네요.

...자, 갑시다. 방을 안내해드릴 테니까."

온다가 재촉하자 전원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 오오토리 씨, 지갑이오."

미유끼가 오오토리가 앉아있던 소파에

검은색 지갑이 떨어져 있는 걸 보고 주워들었다.

그때였다.

"잠깐, 그것 좀 봐요!"

히구치가 손을 휙 뻗어 오오토리가 떨어뜨린 지갑을 홱 낚아챘다.

"꺅, 왜 그래요, 히구치  씨."

미유끼가 묻자, 히구치는 그 지갑을 높이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봐요, 당신 오오토리라고 했죠, 이거 당신 지갑인가요?"

당황한 오오토리가,

"아, 맞아요. 내 건데요, 왜요?"

하고 눈을 깜빡거렸다.

"그렇군요. 그럼 이 이니셜은?"

히구치가 가리킨 지갑 뒷면엔

[S.D]라고 금색으로 이니셜이 들어가 있었다.

"아까 뉴스에서 말하던 살인마의 이름이 분명 '데몬 쇼'라고 했어요. 이니셜로 하면 [S.D]가 되는 거 아닌가?"

"풋! 아하하하하!"

묵묵히 서있던 오오토리가 갑자기 아래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웃기죠?"

"혹시 날 살인마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만 하십쇼. 아닙니다, 그건 내 본명이라구요."

"그럼 오오토리는 뭐예요."

"오오토리는 펜네임이에요. 보통 사적으로는 이 이름을 쓴다구요."

"어? 펜네임이라니, 그럼 오오토리 씨가 작가란 말이에요?"

미유끼가 물었다.

오오토리는 아직 웃음을 참으며,

"아니, 아직 그 정도는 아니구요. 일단 본업은 공무원이니까.

작가가 되는 건 아직 꿈이죠

이 펜네임으로 열심히 출판사를 들락거리고 있어요.

신인상 후보에는 여러 차례 올랐다구요, 이래봬도."

"흐음... 그럼 본명은?"

라고 묻는 히구치.

아직 납득이 안 가는 모양이다.

"아니, 그건 묻지 말아요.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사정이 좀 있어서요."

"무슨 사정인데요?"

"성격 되게 끈질기군요."

오오토리의 표정이 굳어진다.

누군가가 손뼉을 탁탁 쳤다.

온다였다.

"자아, 그 정도로 합시다. 먼저 방 안내부터 하죠."

온다는 그렇게 말하고 잽싸게 홀을 나갔다.

 

간접 조명밖에 없는 복도는 어둠침침한데다 길기까지 했다.

추위로 인해 불안한 마음이 더욱 커졌는지,

미유끼가 전일의 옆구리에 몸을 비비듯 다가오며 귓속말을 했다.

"있지, 전일아. 괜찮겠지?"

"뭐가?"

"이 안에 살인마가 없겠지?"

"살인마 데몬? 글쎄 모르지."

전일의 의미심장한 말투에 추위가 더해졌는지

미유끼는 부르르 떨며,

"있잖아, 펜션에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될까?

나, 여기서 자고 싶지 않아."

"나도 아까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전화가 연결이 안 되는 것 같애."

"어? 전화가?"

"응. 온다 씨의 얘기론 눈 대문에 선이 끊어졌든지 했을 거래."

"어머나..."

"무서우면 한방에서 같이 잘래?"

"돌았냐."

"그럼 방문은 확실하게 걸어잠궈."

"응."

"자아, 오십쇼. 미유끼 양은 이쪽 방이 괜찮겠죠?"

온다가 묵직해 보이는 나무문을 열고 방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네!"

미유끼는 얼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눈은 방안은 관심 없고 방문 잠금쇠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달려있어."

무심코 내뱉은 말에 온다가 물었다.

"뭐가?"

"아, 아니에요. 호호호호."

"잠금쇠요. 살인마가 들어오지 못하게."

전일의 말에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야, 김전일!"

황급히 제지하려는 미유끼에게 전혀 개의치 않고 전일은,

"여러분도 오늘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자는 게 좋을 거예요.

아무래도 예감이 안 좋아요."

하고 말하며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충고 고바워, 명탐정 씨."

누군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신호탄이 된 것 마냥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우울하고 답답한 응어리가 그 자리를 꽉 채웠다.

 

젠장, 재수 없는 꼬맹이 녀석!

데몬은 혀를 찼다.

그 김전일이라는 꼬맹이가 딱 맞춰 텔레비전을 켜는 통에

자칫하면 정체가 발각날 뻔했다.

하지만 아직도 운이 바닥나진 않은 모양이다.

절묘한 타이밍에 텔레비전 안테나가 망가진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

거기다 전화까지.

이 산장을 찾았을 때 혹시나 싶어 전화선을 끊어놓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누군가가 경찰의 전화를 받고 인상이나 체격 등을 알게 디ㅗ면

그거야말로 일이 귀찮게 될 테니까.

데몬은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새벽 2시.

좀 전의 뉴스와 김전일 놈 탓에 지금쯤 모두가 방으로 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자고 있겠지.

오늘 밤,

그 미유끼라는 소녀의 목을 비틀어버릴 즐거움은 사라졌지만

반면, 하밤중에 돌아다닐 고생은 하지 않겠지.

당분간 이곳에서 모두 갇혀 있을 것을 가정하고 손을 써둬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지?

그건...

여전히 세찬 눈보라가 몰아치는 창가에 서서,

데몬은 자문자답을 해가며 초조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잘 잤어, 전일아!"

미유끼의 밝은 목소리가 아직도 침대에 누워있던

전일의 귀에 시끄럽게 꽂혔다.

보아하니 문을 잠근 덕에 푹 잔 모양이다.

"다들 일어났어. 빨리빨리!"

"알았다, 알았어."

하품을 하면서 대답하고, 전일은 마구 벗어뒀던

스키바지와 스에터를 걸치고 방을 나왔다.

복도는 어젯밤 이상으로 따뜻해서 스웨터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기지개를 펴면서 홀 안으로 들어가니,

"좋은 아침, 명탐정 씨."

하고 히구치 유키코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늘 아침은 가벼운 느낌의 무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전일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녀는 잽싸게 그걸 알아차렸는지,

"어젠 렌즈를 꼈었어."

하고 말하며 웃었다.

그 미소는 안경 탓인지 어제보단 약간 부드럽게 보였다.

"잘 났어요, 김전일 씨."

물뿌리개로 관엽식물 화분에 물을 주고 있던 산장 주인 온다가

전일을 보고 특유의 여유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간단하게 토스트와 햄에그, 우유를 준비했어요.

거기 문 안쪽이 부엌이니까 가서 먹어요."

"아, 감사합니다..."

그 말만 하고 전일은 부엌으로 통하는 문을 밀었다.

넓은 부엌엔 중후한 오크 빛으로 칠해진 테이블이 두 개나 놓여 있다.

의자에 잔뜩 몸을 젖히고 앉아 있던 만다 미츠오가

어젯밤과 똑같이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어, 왔군, 명탐정 씨. 제일 젊은데 제일 늦게 일어나다니,

거물은 거물이야."

"뭘요, 하하하하."

애교 섞인 웃음을 흘리며 전일이 자리에 앉자

만다는 테이블 너머로 손을 뻗으며,

"피울래?"

하면서 담배를 건넸다.

"헤?"

"안 돼, 전일아."

김이 나는 커피를 들고 오던 미유끼가 재빨리 발견하고 나무란다.

"아이고, 고등학생이었지. 담배는 안 되나. 하하하하."

재미난 듯 웃으며 만다가 미유끼가 들고 온 커피 잔을

왼손으로 들어올려 입을 가져가려던 그 때였다.

"어이, 다들 이리로 와 봐요!"

무거운 나무문을 난폭하게 열어젖히며 오오토리가 뛰어들어왔다.

상의는 재킷, 하의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

"무슨 일입니까, 오오토리 씨."

하는 김전일.

오오토리는 스노보드용 방수 바지를 트레이닝복 위에 덧입으며 말했다.

"시체야! 밖에 사람이 죽어 있어!"

 

그 시체는 산장 현관에서 고작 1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몸은 반 이상 눈에 파묻혀 있었지만,

세찬 바람으로 눈이 날아갔는지,

간신히 스키웨어의 일부가 보였다.

그걸 바깥 날씨를 확인하러 나갔던 오오토리가 재빨리 발견한 것이다.

남자들이 힘을 합쳐 시체를 눈에서 끌어내고 현관입구까지 날랐다.

남자의 사체로, 언뜻 봐도 그리 젊지는 않았다.

아마 30대에서 40대 초반일 것이다.

그린색 스키복에 같은 색 스키모자, 양손엔 검은 장갑을 끼고 있다.

고글도 쓰고 있는 상태였다.

[스완즈]제 고급품이다.

스키화도 상당히 고급인 것 같다.

버클까지 전부 채운 그대로, 플레이트도 신고 있는 채였다.

양손엔 폴까지 움켜쥐고 있다.

전일은 그 사체의 상태가 약간 의심스러워 뚫어져라 살폈다.

스키복의 지퍼가 턱밑까지 채워져 있다.

재킷은 산지 얼마 안 된 신재품으로,

옷깃 주변엔 작은 금속 배지 같은 것이 달려 있는 것을 빼면

그 밖에는 쓸데없는 건 전혀 걸치고 있지 않다.

"저 배지를 보면 일급이야."

오오토리가 사체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분명 스키에 자신이 있어서 폭설에도 시킬 타려다가

눈보라에 휘말렸을 거야."

만다는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나 참, 재수가 없었어.

이 작자도 20미터만 더 갔어도 산장이었는데,

눈보라 때문에 안 보였나."

"그러고 보니 옛날에 어느 고등학교 산악부가

북알프스에서 조난 당했을 때,

산장까지 고작 50미터 남겨놓고 죽었다는 얘길 들었어."

그렇게 말하고 오오토리는 자신의 옷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

"무섭다..."

히구치 유키코는 그 말만 중얼거리고는

멀찌기서 남자들의 행동을 쳐다보았다.

"역시 이상해..."

전일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갑자기 웅크리고 앉아

사체를 만지기 시작했다.

"야, 뭐하는 거야, 전일아!"

미유끼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전일은

스키용 재킷의 주머니를 열어보려고 한다.

"어이, 무슨 짓이야, 김전일군."

보다못한 오오토리가 말리려고 했지만,

전일은 개의치 않고 재킷의 모든 주머니를 끌어당겨

안에 있는 것을 현관 앞 타일 위에 털어냈다.

나온 것은 손수건과, 검은색 지갑과

봉투가 뜯겨진 스키왁스, 휴대용 스프레이가 다였다.

"역시."

"어이어이, 뭐가 역시라는 거야."

하는 오오토리.

"그런 게 아니에요."

전일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보았다.

"이건 조난 당한 게 아니에요.

분명한 살인 사건이라구요."

"뭐, 뭐라고!"

오오토리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래요, 텔레비전에서 말했던 살인마...

살인마 데몬... 분명 교살한 사체를 토막냈다는..."

전일은 뭐라뭐라 중얼거리며

사체의 재킷 지퍼를 내려 언더웨어를 뒤졌다.

"사, 살인이라니 무슨 소리야?"

조심조심 묻는 히구치에게 전일은 말했다.

"이거라구요."

전일이 드러낸 사체의 턱에는 시커먼 멍이 남이 있었다.

양손으로 누군가가 목을 졸랐다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흉측스러운 흔적이었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아마 어제 뉴스에서 말했던 살인마일 겁니다.

그놈이 한 짓이에요."

"서, 설마! 그럼,

진짜로 살인마가 이 산장 주변을 어슬렁거렸다는 말야?!"

하는 히구치. 안경 속 눈동자가 젖어있다.

"아니, 사태는 더 심각할 거예요."

전일은 그렇게 말하고 모두를 둘러보았다.

"범인은 이미 우리들 속에 섞여 있을 겁니다."

"뭐, 뭐라고!"

문에서 얼굴을 내밀고 정세를 살펴보던 온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자, 잠깐. 전일아. 그게 진짜야?"

하는 미유끼.

전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게 한 가지 있었는데,

그 해답을 찾았어...

수수께끼는 전부 풀렸다구!"

전일은 갑작스러운 일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서로의 표정을 의혹의 눈으로 살피는 사람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죽 훑어보며 말했다.

"그래, 범인... 살인마 데몬은 이 안에 있어!"

 

"뉴스에서 말했던 살인마가 이 안에 있다고?!"

오오토리 타츠마가 큰소리로 외쳤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이 스키어를 죽인 건 분명 그 살인마인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 중에 섞여 있다고 결론지을 이유는 어디에도..."

"있어요."

전일은 말했다.

"그전에 전제로서 말해두고 싶은 건 거기 시체는 길을 잃고 오게 된 스키객 따위가 아니라는 겁니다."

"뭐엇?"

전원 일제히 소리쳤다.

"하, 하지만 스키어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라는 소리야.

이 차림새로 보면 누가 봐도 스키를 타다가 길을 잃고

이쪽으로 왔다고밖에..."

하는 온다.

만다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맞다구. 분명 우리처럼 조난 당하고 겨우 여기까지 도착했을 때 살인마의 습격을 당하고 목이 졸려 죽은 거 아니겠어?"

"아뇨. 그건 있을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 사체는 스키객이라면

반드시 들고 있어야 할 물건을 갖고 있지 않으니까."

"뭔데, 그게?"

히구치 유키코가 묻자,

전일은 누워있는 사체에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리프트권이오."

전원 숨을 죽였다.

전일은 자신의 재킷 주머니에 고무로 팔에 고정되게 되어 있는

리프트권 홀더를 꺼내 보였다.

투명한 비닐 홀더엔 아직 어제 날짜인 리프트권이 들어있는 상태였다.

"보통, 스키를 탈 땐 일일권이나 반일권을 사서 슬쩍 보이기만 하면 리프트를 탈 수 있도록 이렇게 홀더에 넣어서 팔에 끼우게 되어 있죠.

간혹 가다 회수권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스키를 잘 타는

상급자는 손해니까 일단 그런 짓은 안 하죠.

혹시나 해서 주머니안도 봤지만 리프트권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어요.

지갑 속은 안 봤지만 리프트권같이 자주 넣었다 꺼냈다 해야 하는 걸 그런 데다 넣을 리는 없죠.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

이 범인은 스키를 타다가 조난 당한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스키웨어를 입히고 스키화까지 신겨서 여기 방치해둔 거에요.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어젯밤

이 산장엔 맨처음으로 만다 씨가 왔고, 그 후로 곧장 히구치 씨가 왔어요.

그리고 나랑 미유끼,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오토리 씨가 나타났죠?

그럼 그 스키웨어를 입은 사체는 대체 누구고 언제 여기로 찾아왔을지?"

전일은 추리를 전개하며 천천해 무대를 현관에서홀로 이동해갔다.

다른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끌려가듯 뒤를 따라 홀로 모여든다.

전일은 단 한사람, 물웅덩이라도 있는 것처럼 홀에 발을 들여놓기를 주저하고 있는 인물을 지켜보며 말했다.

"제일 자연스럽게 착지할 수 있는 정답은 이런 게 아닐까요. 즉,

저 시체의 인물은 지금 여기 누구보다 먼저 이 산장에 와 있었던

산장 주인이었다는 거죠. 안 그렇습니까, 온다 씨."

온다는 순간 증오도 흥분도 아닌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그 핏대 선 안구는 전일을 노려보며 움직이질 않는다.

그러나 전일은 겁먹지 않고 계속했다.

"당신은 산장 주인이 아냐.

우리보다 조금 먼저 산장에 숨어들어 따스하게 맞아준 산장주인,

진짜 온다 씨를 목졸라 죽이고 여기서 지내려고 했어.

하지만 조금 후 만다 씨가 찾아왔고 그를 죽일 틈도 없이

히구치 씨와 우리, 오오토리 씨까지 찾아왔지.

난처해진 당신은 일단 어딘가에

대충 감쳐둔 진짜 온다 씨의 사체를 '처리'해야만 했어.

사체는 원래 같으면 좀더 멀리 버리고 왔을 테지만,

이런 심한 폭설 속에서 사체를 짊어지고 가려면 장난 아니게 고생스럽겠지. 그래서 당신은 만에 하나 발견이 되어도 신원을 알 수 없도록 스키어의 차림새를 해서 조난자로 가장하기로 한 거야.

안 그런가, 온다 씨, 아니... 살인마 데몬!"

'온다'는 뭔가를 결의한 듯 가볍게 기침을 하고는

홀로 세차게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아이구, 이거 미치겠군.

조난 당할 뻔한 사람을 도와주고 살인마 취급을 받다니.

맞아, 자네가 한 말은 일단 이치에 맞아. 이야깃거리로선 재미있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전부 추측에 지나지 않아.

내가 이 산장 주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나?

나 참, 그렇게 실례되는 소릴 하다가 쫓겨나는 수가 있어.

눈보라가 치거나 말거나..."

"증거라면 얼마든지."

전일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당신이 아침에 보였던 기묘한 행동이

당신이 이 산장의 주인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으니까."

"기묘한 행동?"

"그래요. 당신이 오늘 아침 내가 일어났을 때,

거기 관엽식물에 물을 주고 있었지?"

전일은 턱으로 홀의 구석과 창가에 장식해놓은 관엽식물을 가리키며,

"그건 나만 본 게 아니라 히구치 씨도 봤어. 맞죠, 히구치 씨."

"으, 으응. 분명 그랬어."

"아이구, 무슨 소린가 했더니...

산장의 주인인 내가 화초에 물을 주는 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일 텐데."

"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죠. 그게 진짜 식물이라면."

"뭐?"

'온다'의 안색이 바뀌었다.

전일은 다그치듯,

"그래요. 그건 관엽식물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조화라구.

레스토랑 같은 데 흔히 있는. 요샌 조화도 잘 만들어지기 때문에 손으로 잎사귀 한 장을 쥐어보지 않는 한 진짜와 구별할 수가 없어.

나도 순간 진짜인 줄 알고 만져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으니까.

당신은 산장 주인을 연기하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진짜 주인이라면 절대 할 리가 없는 짓까지 하고 만 거야.

그래, 비닐 같은 걸로 만들어진 가짜 식물에 열심히 물을 주는

그런 얼빵한 코미디 같은 행동을 말야!"

'온다'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천장에서 쇠사슬로

매달려 있는 화분으로 손을 뻗었다.

"우오오오!"

절규를 하며 그 화분을 끌어당겨 전일을 향해 내던졌다.

화분은 전일의 바로 옆에서 깨지고 하얀 조약돌과 함께

화초의 포기가 산발했다. 뿌리 대신 금속 토대 같은 것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굴렀다.

"모두 꼼짝 마."

굵은 목소리가 홀에 울려퍼졌다.

그건 이미 사람 좋은 산장주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흉폭한 짐승의 포효 그 자체였다.

짐승은 그 굵고 거친 손가락을 히구치 유키코의 목에 가져가,

거품을 물며 독을 내뿜었다.

"움직이면 이 여잘 죽여버리겠어. 잘 들어, 나의 이 손가락은 흉기라구. 여자의 가느다란 모가지를 으깨버리는 것쯤 식은 죽 먹기... 어?"

그렇게 말하며 짐승의 몸은 저 높이 공중으로 붕 떴다.

"이야압!"

동시에 날카로운 기합소리가 홀에 울려퍼진다.

모두들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있는 동안,

짐승은 철제로 된 딱딱한 장작 스토브에 내동댕이쳐졌고

입에선 거품을 내품었다.

히구치 유키코의 너무나 훌륭한 엎어치기 한 판이었다.

짝, 짝, 짝...

엉겁결에 전일은 박수를 보냈다. 동시에 미유끼도.

나머지 두 사람도 박수를 쳐댔다.

히구치는 약간 쑥스러운 듯 홍조 띈 뺨에 손을 가져가 보인다.

그런 중에 박수소리에 섞여, 만다가,

"다행이다. 사귀자고 안 하길 잘했어."

하고 중얼거리는 걸 전일은 놓치지 않았다.

 

실신해 있는 동안 살인마는 현관 앞의 튼튼한 기둥에 묶였다.

홀만큼 따뜻하진 않지만 영하의 바깥 날씨보단 훨씬 견디기가 수월할 것이다.

그의 방에 숨겨놓은 그의 옷에서 면허증이 든 지갑을 찾았다.

본명은 데몬 쇼이치.

역시 뉴스에서 말한 도주중인 살인마가 틀림없는 것 같았다.

김전일 일행은 악마에게 결정타를 날려준 장작 스토프 앞에서

히구치 유키코와 미유끼가 끓여준 커피를 홀짝이며,

눈앞에 펼쳐졌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질리지도 않게 계속해서 나눴다.

그 동안 혼자서 냉장고에서 멋대로 꺼낸 맥주를 홀짝이던 만다가

전일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탐정 양반. 어떻게 저 환엽식물이 가짜라는 걸 알았지?"

"맞아맞아. 나도 궁금했었어."

하는 오오토리.

"-내 기억으론 자넨 그 관엽식물을 한 번도 안 만져 봤을 텐데.

그런데 어떻게..."

"역시 궁금하세요?"

전일은 잘난 채 거드름을 피운다.

"알도 십다마다. 나도 궁금해 미치겠어."

히구치 유키코도 몸을 쭉 내민다.

"그럼 오오토리 씨도 가르쳐주세요."

하는 김전일.

"헤? 뭘?"

"오토리씨 씨의 본명이요. 사정이 있어서 안 가르쳐준다고 했잖아요. 이니셜이 'S.D'란 건 알지만 그런 건 난 궁금해서 못 견디는 성질이걸라요."

오오토리는 난처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쳇, 할 수 없군. 그럼 가르쳐주긴 하겠는데 절대 웃지마."

"네에, 물론이죠. ...그럼?"

"자네가 먼저 해."

"예에. 그건 간단해요. 이런 깊은 산 속의 산장이잖아요.?

눈 내리는 계절엔 생각만큼 자주 오진 못할 테고.

애초에 그 가짜 주인이 처음 만났을 때 내게 말했다구요.

'겨울에 많아봐야 두, 세번밖에 안 온다'고.

그런 별장에 진짜 관엽식물 따위를 키운다면

일단 백발백중 말라죽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저 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여기저기 장식해 좋은 관엽식물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거죠."

"역시, 그거 말되는 군."

하는 오오토리. 잠시 행각한 후.

"그치만 이 정도의 별장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무슨 특수한 화분 같은 걸로 한 달이나 두 달씩 주지 않아도 식물이 마르지 않는 장치라든지...

하하하. 내가 말해놓고도 내가 웃기네. 그런 건 없겠지."

"아뇨. 실은 나도 순간적으로 똑같은 생각을 했어요.

실은, 미유끼의 말에 곧 '아주 잘 만들어진 조화구나'하고 결론을 내렸죠."

"어? 내가 뭐라고 했는데?"

"왜 저기 저 그림 말야."

전일은 홀의 입구 근처에 걸린 유트리로의 복제된 그림을 가리쳤다.

"저게 복제품이라고 네가 가르쳐줬잖아. 그래서 생각했어.

이 집 주인은 돈은 아주 많지만 만사 제쳐놓고 진짜만 찾는 타입은

아니구나 하고. 약간만 아는 사람이 봐도 한눈에 모조품이란 걸

알 만한 그림을 아무렇지 않게 걸어놓는 사람이라면 전혀 개의치 않고 잘 만들어진 모조품 관엽식물을 관리가 편하다는 이유로 장식하지 않겠어?"

"역시, 전일이야! 그렇죠, 여러분. 명탐정의 손자가 거짓말이 아니죠?"

"와아, 정말 그래. 대단해."

하고 오오토리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고 전일은,

"자, 그럼 이번엔 오오토리 씨의 차례에요. 가르쳐 주시겠어요?

그리고 왜 말하고 싶지 않았는지 그 이유도."

"할 수 없군. 그럼 말하겠는데 웃으면 안 돼, 절대로."

"안 웃는다니까요."

"아니, 실은 말이지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아버지가 스무살밖에 안 됐거든. 그런데 어렸을 때 울트라맨을 무지하게 좋아했다나."

"그래서 그게 뭐가요."

"아니, 그래서 말이지. 내 성씨가 좀 특이한데, 그게 또 울트라맨에 과학수사대의 대원역으로 출연했던 배우의 예명하고 같은 성씨라..."

"그-러-니-까 뭐냐구요. 오오토리 씨의 본명이요."

"아니, 거기다 우리 아버지가 그 대원이 썼던

특이한 광선총을 너무도 좋아했대. 아니 동경했다네."

"그래서요?"

"뭐, 그런 이유로 말하자면 난 내 이름에 약간의 콤플렉스가 있다 이거지. 자, 이제 됐지."

"되긴 뭐가 되요."

"안 웃을 거야?"

"안 웃을게요."

"그럼 말할게, 내 본명."

"네, 오오토리 씨의 본명은?"

전일은 마이크를 건네는 동작을 해보였다.

오오토리는 숨을 들이쉬고 그리고는 말했다.

"도쿠마무시 산다유."

(역주 : '다쿠마무시'는 독살무사, '산다유'는 집사라는 뜻의 일본어)

전원 마시던 음료수를 일제히 뿜어냈다.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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