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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대회를 방불케 하는 일본의 버블경제

변성찬 |2007.01.24 20:27
조회 159 |추천 1

제가 쓴 내용이 아니고 예전의 책의 스크립 내용입니다.

일본의 부동산의 거품시장을 얘기하는 내용입니다.

 

승리의 환희 뒤에는 악마의 미소가 있었다. 암흑의 월요일을 신속하게 마감시킨 국제 정책협조의 승리야말로 일본 경제를 버블로 몰고 간 비극의 서막이었다. 플라자합의로부터 블랙먼데이까지 일본 경제의 버블극에서 서곡이라면 그후는 버블경제의 본막이었다.

 블랙먼데이 이후 일본 은행과 독일의 분데스은행은 시장금리의 인상유도를 포기했다. 암픅의 월요일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 독일의 본격적인 금리인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본의 금융관계자간에는 영구저금리 의 신화가 태어났다. 영구저금리의 신화야말로 일본 경제에 버블을 발생시킨 근본원인이다. "일본이 금리를 인상하면 달러는 붕괴한다.국제협조를 위해 일본의 금리는 반영구적으로 상승해서는 안된다. 때문에 일본의 경기상승도 반영구적으로 계속된다." 시장관계자들 사이에 이러한 신화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1986년 이후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는 세계 최대였다. 누계를 기준으로 대외자산에서 부채를 뺀 대외순자산도 일본이 세계 최대였다. "세계 최대의 채권국인 일본은  과거 영국이나 미국이 전성기에 그러했듯이 저금리가 계속된다. 만일 일본이 금리를 인상하면 일본의 경상주시 흑자나 자산초과액이 해외로 환류되지 않고 달러폭락을 유발함으로써 세계 금융시장에 대혼란을 일으킨다. 때문에 일본은 앞으로 반영구적으로 초저금리상태이어야만 한다." 당시의 초저금리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었다.

  일본에서 주식, 땅, 그림 등의 자산가격이 기초적인 제조건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고공행진한 것은 영구저금리의 신화가 널리 퍼진 1988~89년의 기간이었다. 여기서 버블이 발생한 것이다 버블이란 지가, 주가 등 자산가격이 기초적 제조건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계속 상승하는 현상이다. 버블에 공통된 현상은 주가와 지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투기열풍은 더욱 가역뢰고 가격은 더욱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가격이 오르는 동안에는 예상대로 투기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투기행력에 끼어든다. 그래서 기초적 제조건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치솟는다. 그러다가 가격이 너무 지나치게 올랐다는 것을 사람들이게 자각시키는 불안한 뉴스가 날아오면 사람들이 갑자기 투기대열에서 빠져나와 매각에 나서고 이것이 매도세를 더욱 자극함으로써 가격폭락 ---다시 말해 버블의 파열---이 일어난다.

   버블은 밴드웨건(band wagon)에 비유할 수 있다. 밴드를 태운 웨건이 소란스럽게 연주를 하면서 마을을 지나가면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시끌법썩한지 궁금하여 모여들기 시작한다. 몰려 가는 사람들은 바라본 더욱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있다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여 영문도 모른체 뒤따라가기 때문에 군중들은 더욱 불어난다 이 현상이 바로 밴드웨건 효과다. 케인즈는 일찍이 증권시장의 투기열풍을 가리켜 미인투표에 비유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미인(기초적 제조건)이라고 생각하는 후보에게 표를 찍지 않고 다른 심사위원들이 미인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 후보에게 표를 찍는다. 바로 여기서 밴드웨건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발생한 버블은 무엇인가를 계기로 사람들이 기초적 제조건과 가격이 서로 크게 괴리되어 있다는 불안에 휩쌍이면서 터져버린다. 이것이 버블의 파열이다. 밴드웨건이 아무 목적도 없이 그냥 행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사람들은 곧바로 흩어지는 것과 흡사하다.

  버블 발생에 따른 땅값 상승은 부동산의 담보가치를 높였기 때문에 부동산을 담보로 한 타인자본조달---구체적으로는 은행차입이나 회사채발행----이 크게 늘어났다. 은행측에서는 영구저금리가 계속될 경우 대출경쟁이 치열해질 것을 우려하여 땅이 담보로 제공되면 무조건 대출했다. 주가에서 버블발생은 시가발행 증자. 전환사체와 신주인수권부사채의 발행 등 자기자본조달을 현저히 용이하게 했다. 자금조달 비용은 평균 2.0%라고 하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려갔다 이처럼 주식시장은 본래 성립할 수 없을 만큼 낮은 비용으로 대량의 자금조달을 가틍케 함으로써 버블을 지원했다.

   버블의 부작용으로 일부 은행, 증권회사. 기업은 절도를 저버렸다. 일본의 증권회사들은 영구저금리의 신화를 믿고 그것이 계속된느 한 밴드웨건 효과도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여 고객들에게 무조건 주식매입을 권했다. 증권회사들은 자신이 취급하는 주식형.채권형 투자신탁 등이 높은 수준의 가격변동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는 기본을 망각했다. 높은 위험=높은 이익이라는 증권시장의 철칙을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은행들도 기본을 망각했다 .은행은 고객들에게 원금의 보증, 확정이자의 지급을 약속하여 예금을 끌어들인 다음 운용에 있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리스크를 관리해야만 한다. 자금용도를 충분히 심사하여 대출금리를 지불할 수 있는가, 원금을 상환할 수 있는가를 충분히 심사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자세가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은행에 있어 영구저금리는 역구대출난을 의미했다. 초저금리가 계속된다는 것은 초금융완화가 지속된다는 것이고 예치된 자금을 운용할 적당한 대출선을 찾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매했다 때문에 은행들은 냉정한 신용심사를 접어둔 채 대출선을 찾는 데만 부심했다. 은행들은 토지, 주식, 그림등의 구입자금에 대해서는 거의  반사적으로 대출해줬다. 땅값,주식값, 그림값은 계속 상승할 것이므로 이것을 담보로 잡으면 이자지분이나 원금상환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증권회사와 은행들의 고객은 당연히 기업이다. 버블이 기승을 부리는 동안 사람들은 주가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자기자본조달은 매우 용이했다. 그 자금코스트는 평균2.0%라고 하는 본래는 성립할 숭 없는 수준이었다. 타인자본조달의 자금코스트가 4%대였으므로 상장기업이 자기자본조달에 적극 나선 것은 당연했다. 특히 이때 우량 중소기업의 주식공개가 성행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1988년부터 1989년까지 일본의 버블시대에는 당장의 필요가 없어도 가능한한 거액의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처럼 쉽게 조달한 자금, 특별히 용도가 명확치 않은 자금들은 제테크로 향했다, 버블이 부풀어오르는 가운데 대기업은 자기자본조달에 의해 초저비용으로 자금을 도달한 다음 그 자금을 본업 외의 자산운용으로 돈을 벌려는 재테크에 사용한 것이다.

 재테크의 대부분은 직접 주식투자를 하거나 혹은 신탁은행 증권회사 투자자문회사 등의 금전신탁 등을 이용하여 간접 투자되었다. 기업에 따라서는 부동산 투자에만 전념하여 골프장 등 해외부동산 투기에 열중한 기업들도 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뉴욕의 유명 빌딩이나 헐리웃의 영화사를 매입하여 "일본이 미국의 자존심을 사들이고 있다"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기업 은행 증권회사 모두가 버블에 편승해 있던 1990년 초, 비로소 버블붕괴의 비극적인 결말이 가까와지고 있었다. 1989년 12월 일본 은행은 재할인율을 인상했고 1990년 초 미국의 연방준비은행도 인플레때문에 재할인율을 역으로 인상할지 모른다는 루머가 돌았다. 영구저금리의 신화를 지탱하던 주춧돌의 한쪽이 무너진 것이다. 일본 은행은 1990년3월 실제로 재할인율을 그것도 한번에 1%포인트나 인상했다.

 이때 해외로부터 큰 쇼크가 일본 겡제를 강타했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촉발된 걸프위기가 바로 그것이다.원유나 유류제품의 각격 상승이 일본에 수입인플레를 가져오는 게 아닐까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일본 은행은 인플레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걸프위기가 발발한 직후인 1990년 8월 재할인율을 0.75%포인트 올렸다. 소위 예방적 긴축이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대단히 빨랐다. 9월에는 장기금리가 8%대로 뛰었고 주식각겨은 일경평균주가의 종가로 9월말에서 10월초 사이에 2만엔대로 빠질 듯이 보였다. 1988년 12월 의 절정기에 비해 실로 절반에 가까운 대폭락이었다. 주가의 버블은 이 결정타를 맞고 파열했다. 이때부터 땅값의 버블도 붕괴하기 시작했다. 동경 오사카 등 대도시 땅값이 하락세로 돌아섰고 이듬해 1991년부턴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1991~9@년의 주택지 땅값의 하락폭은 동경권에서 22%,오사카권에서36%,나고야권에서13%였다. 8월부터 시작된 일본 은행의 예방적 긴축으로 일본 경제의 버블은 경정적인 붕괴 과정에 들어썼다.

 오늘날 일본이 겪고 있는 신용불안과 경기침체 그리고 금융기관의 파산은 바로 버블의 파열이 가져온 결과다. 그러면 버블의 발생과 파열은 과연 일본의 경제정책 실패를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쌍둘이저자라는 미국의 경제정첵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고, 국제 정책현조라는 파라독스에 의해 일본의 경제정책상의 자율권이 축소된 가운데 발생한 비극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의 제조업은 미국을 압도했지만 금융에 관한 한 일본은 미국에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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