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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영 |2007.01.25 01:04
조회 14 |추천 0

 

잠깐 선잠이 들었었다. 건넛방에서 엄마의 기척이 들린다. 남편은 잠에 깊이 빠져있었다. 조심히 이불에서 빠져나왔다. 방문을 열자 옆으로 누워 있는 엄마의 등이 보인다. 외소하고 뼈만 남은 등.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엄마는 깨어있었다.

-힘들었지? 좀 돌려줄까?

엄마는 힘들게 고개를 끄떡인다. 엄마의 앙상한 어깨를 잡고 바로 뉘였다. 엄마의 눈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

-좀 더 자. 아직 4시밖에 안됐어.

엄마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옆에 나란히 누웠다. 다시 어둠이 방안을 가득 메운다. 그 속에서 희미한 엄마의 숨소리가 들린다. 가는 숨소리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2년 전 엄마는 중풍으로 쓰려졌다.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기적처럼 다시 깨어났다. 그리고 나를 알아봤다. 나는 날 불효녀로 남겨두고 떠나지 않은 엄마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시골집에 살았다. 몇 번이고 서울로 올라와 함께 살자고 했지만 엄마는 막무가내였다. 무남독녀 외동딸, 넉넉하게 키워주지도 못하고 결혼할 때 살림도 제대로 못해줬는데 사위 볼 면목이 없다고 했다. 그냥 잘 살아 주는 것이 효도랬다. 깨어났을 때 더 이상 엄마는 우리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혼자서는 먹는 것뿐만 아니라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던 남편은 기꺼이 엄마를 집으로 모셨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엄마는 나아지지 않았고 병원에서도 특별한 방책을 찾지 못했다. 맞벌이를 했던 나는 하루 종일 엄마 옆에서 수발을 해야 했다. 몸을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엄마의 고통은 결국 마음병까지 얻게 했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남편의 벌이로는 생계를 꾸려가기 힘들었고, 집 분위기도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들어온 집에서 반갑게 남편을 맞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편은 점점 술이 잦아졌고, 그만큼 다투는 날도 늘어만 갔다.

 

어느 날, 남편이 술이 거하게 취해 들어와 ‘집안 꼴이 이게 뭐냐며’ 소리를 주정을 했다. 남편은 엄마를 요양시설에 보내자고 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우리 사정에 그럴 돈도 없거니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자기 부모 아니라고 처음 엄마 모셔올 때부터 못마땅했던 것 아니냐고 악을 썼다. 사실 그건 남편이 아닌 내 자신에게 하는 소리였다.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너무 힘들었다. 아픈 부모를 직접 수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현실과 생각의 괴리는 너무 컸다. 차라리 자식 없는 노인들은 국가에서 지원이라도 나왔다. 하지만 우리처럼 없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문제가 너무 버겁기만 하다. 술 취한 남편 말대로 효도도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는 사치에 불과한 것일까.

 

엄마가 또 다시 헛기침을 한다. 나는 엄마의 몸을 내 쪽으로 돌렸다. 엄마는 여전히 눈을 뜨고 있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엄마의 미안함이 눈 속에서 주르륵 여윈 얼굴을 타고 흘러 내린다. 엄마의 마른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 또 그런다... 나 괜찮아. 그러니까 엄마, 그냥 계속 이렇게 내 옆에만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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