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째, 설렌다. 기다려진다.
첫눈과 첫사랑! ‘처음’이라는 설레임. 해마다 첫눈을 기다리듯이 일생에 한번 있을 첫사랑도 기다린다. ‘첫눈이 내리는 날…’, ‘첫사랑을 만나게 되면…’ 그 순간을 상상하면서 하고 싶은 일, 쏟아내고 싶은 말을 미리 준비해 놓기도 한다. 이런 상상을 하며 마음껏 취해 행복에 잠기는 동안, 첫눈과 첫사랑을 고대하는 시간 동안 그려 내는 아름다운 그림들.
둘째, 상상했던 것과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기다리던 첫눈이나 첫사랑을 만나고 나면 어떠했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기다림과 설레임으로 기다리며 꿈꿔왔던 상상 속 모습과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 사이의 갭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생각보다 시시하더라’는 첫눈과 첫사랑에 대한 회고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상상과 일치하는 현실은 거의 없더라.
셋째, 때가 되면 어김없이 온다.
‘올 해는 왜 이렇게 첫눈이 늦어?’, ‘남들 다 하는 첫사랑, 내게는 언제 오려나?’ 이런 생각에 조바심을 내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들에게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은 한결같다. ‘조바심내지 말고 기다려라. 때가 되면 다 된다.’ ‘그 때를 근사하게 보내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면서 잠자코 기다려라.’ 기다리는 자에게는 올 것 같지 않은 막연한 미래지만, 지나온 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진리더라.
넷째, 잘 모르고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
‘첫눈이 왔는지 몰랐네.’ 가끔은 그런 경우도 있다. 눈인지 비인지 애매하게 내려서 그렇기도 하고, 짧은 시간 적은 양의 눈이 내릴 때도 그렇다. 혹은 모두가 잠든 밤 조용히 내린 눈이 아침에는 이미 녹아 버려 아쉬울 때도 있다. 아주 가끔은 혼자 방안에만 틀어 박혀 있다 보니 함박눈이 내리는 걸 모르기도 하고, 또 가끔은 너무 바빠서 눈이 내리는지 어떤지 관심가질 여력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런 때는 첫눈을 인식하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보낸다. 첫사랑도 첫눈처럼 ‘그렇게’ 왔다가 ‘조용히’ 지나쳐 가기도 한다. 그렇지 않던가. 시간이 사람이 사랑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 때 그 느낌…’하며 무릎을 친다. 그래서 두고두고 그 때가 돌아봐지지 않던가.
다섯째, 내가 인식하는 바로 그 때다.
그러니 결국 내가 인식하는 그 때가 바로 첫사랑이고 첫눈인 셈이다. 서울에 사는 나는 강원도에 첫눈이 내렸다는 뉴스에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 눈을 첫눈이라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내가 사는 서울에 첫눈이 내려서 내 눈으로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어야 그 때가 내게는 첫눈인 셈이다. 첫사랑도 그렇다. 내가 그 사람을 ‘첫사랑’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내게 첫사랑은 찾아 온 셈이다.
여섯째, 다음 번에 또 온다.
첫눈이 그치고, 첫사랑이 가고 나면 짧든 길든 아쉬움과 허전함, 후회가 남는다.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눈이,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갖게도 된다. 그러나 해마다 첫눈은 내리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떠나고 난 자리는 다음 사람이 와서 채우게 되어 있다. 그 의미와 깊이가 매번 같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눈도 사랑도 또 온다. 해마다 처음 내리는 눈이 첫눈인 것처럼, 어쩌면 인생에서 내가 사랑한 사람 모두가 첫사랑인지도 모른다.
일곱째, 나이가 들면 무덤덤해진다.
눈이 오면 차가 막히고, 거리가 지저분해지고, 미끄러워 넘어질까 두렵고… 사랑을 하려면 돈도 들고 시간도 뺏기고 내 것을 양보해야 하는 것도 싫고… 그래서 눈도 사랑도 시들하고 귀찮다고 생각된다면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여덟째, 추억이 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워진다.
첫눈도 첫사랑도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된다. 그리워할 시간과 대상이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고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누구나 한번쯤은 눈과 관련한 아름다운 추억을 갖게 되고, 잊지 못할 사랑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