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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청소년 문화와 문화지원

강영희 |2007.01.31 14:05
조회 44 |추천 1
청소년 문화와 문화지원

내게는 다행이도 아버지가 충동구매로 사두신 작은 비디오카메라가 있었다. 당시는 비디오카메라를 집에서 하나씩 사들이기 시작하던 때였으므로 아버지는 별다른 목적없이 비디오카메라를 사두신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비디오카메라로 가족들을 찍었다. 그리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찍었고 설날에는 시골에 내려가 제사장면을 찍었다. 나는 학창시절에 별로 말을 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비디오카메라를 통해서는 많은 말걸기를 시도했었다. 그러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입시에 대한 중압감과 알 수 없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가방에 몰래 카메라를 넣고다니며 내가 다니는 학교와 교실, 길 등을 찍었고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찍었었다. 별다른 목적은 없었고 ‘단지’ 그 때는 내게 카메라가 있었다.
찍다보니 이야기가 생겨나고 그 이야기들을 선물로 주기도 하고 카메라로 앙케이트같은 것을 하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질문은 열가지였는데 자신이 주로 꾸는 꿈에서부터 앞으로 하고싶은 것, 혹은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까지 주로 자기 자신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개인이 겪는 청소년기의 불안정함과 모순의 극대화는 무엇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며 무엇이 원인이고 출발점인지 자신의 주변과 현재를 볼 수 없게 만든다. 입시라는 하나의 출구 외의 다른 모든 출구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철처하게 차단된다. 그나마 요즘 일부 학교에서 사회시간에 미군장갑차 사건에 관련한 수업을 진행한다는 뉴스는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대대적이고 청소년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학교 교육에서나 일상속에서 한가지만으로 강요되는 길을 벗어나는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상황인 듯하다. 지식위주의 교육체계에서는 교육의 지향점이 한 인간이 가지는 가치관과 살아가는 철학이 아닌 개인의 입신양명과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을 위한 방향으로 설정되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앎’은 사회적인 거대한 사안 대한 ‘앎’ 이전의, 자신의 주변에서부터 자신과의 관계와, 자신의 현재,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인식과 바라봄이며, 개인이 자신의 사고에 의해 스스로 결정하며 자신의 가치관과 주관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행하는 개인의 주체적인 방향성의 기본 토대가 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이같은 ‘앎’은 성인이 되기까지 단지 ‘미성년’이라는 이유 하나로 ‘쓸떼없는 것’으로 치부되어버리기 일쑤이다. 지식위주의 교육과 이것을 성취하는 것은 인간의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하나의 일괄된 방향과 목표를 향해 몰아간다. 그리고 이속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혼란함과 불안정을 제도내의 피상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든다. 이같은 방식은 개인이 처한 개별적인 상황과 그 상황주변의 사회적인 부분, 원인과 결과에 대한 고민없이 모든 문제들을 파편화시키고 ‘개인의 자발성’과 ‘사고의 존엄성’은 철저히 무시된채  진행되므로 그 상황의 중심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혹자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개성을 발휘하는 수많은 청소년행사들과 활동들이 있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리고 실지로 많은 활동들과 시스템과 행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소위 ‘청소년문화’를 자칭하며 존재하는 수많은 경연대회 및 공모전, 축제를 비롯하여 청소년시설인 청소년수련관 및 청소년문화의 집, YMCA, YWCA, 청소년회관, 청소년쉼터 등에서 주최하는 행사들은 대부분이 청소년에 의하여 생성되지 않고 청소년문화를 선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기획되고 진행되는데, 이에는 공통적인 두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현존하는 불만들을 규제 혹은 금기의 성격을 띈 내부적 목적으로 대체시킨다는 점이며, 두번째는 대학입시와 동일한 ‘서열’체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실제 관에서 행해지는 많은 청소년행사에는 ‘청소년흡연예방’, ‘청소년범죄예방’, ‘청소년순결운동’ 등등의 목적이 있다.
실제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활동들에는 이같은 키치프레이즈가 붙지 않는데 왜 유독 커다란 청소년행사들에는 항시 청소년들을 걱정하는 시각들이 넘쳐나는 것일까.
그리고 이같은 걱정의 시선과 동행하는 ‘지도’와 ‘수련’, ‘선도’를 위한 수십개의 청소년단체들과 시설들은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토론하고 문제를 제기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청소년시기가 가치관이 미성숙된 시기라 치더라도, 논의자체를 배재한 채 ‘금기’의 형태로 주입하는 것은 자발적인 가치관 형성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청소년기에 그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는 적당할지 모르나, 현재의 시대적 상황속에서 단순 통제만으로는 그 타당성이 다수에게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금기 자체에 대한 더 많은 의문의 여지들만을 생성할 뿐이다.
실예로 인천지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이벤트업체 ‘즐거운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푸른쉼터’의 기본목적은 ‘청소년 범죄예방’이다. 이 단체의 활동은 ‘청소년기자단’의 운영과 공연중심의 경연대회와 인천지역의 청소년단체들을 산하로 조직하는 활동의 세가지 줄기로 보이는데, 실제 그 활동의 영역이 인천지역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 학교 동아리 중에서 푸른쉼터가 운영하는 경연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단체는 거의 없다. 상금과 시상체계, 방송계로 진출할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다는 스타시스템이 결합되어 있어 공연을 하고자 하는 청소년단체들은 한번 이상씩은 이 경연대회에 참가하지만, 원체 목적이 청소년의 문화가 아니므로 공연은 심사위원과 진행자에 의해 중도에 하차해야 하거나 중단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한다. 이 ‘즐거운 사람들’에서 명시되어 있는 사업의 방향에서 청소년문화의 목적은 ‘인천지역의 청소년 문화’의 구심점을 형성함으로써 주식을 극대화하고 그 주식을 주주들이 배분한다‘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같이 이벤트 벤처기업이 청소년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경우는 인천지역의 특별한 경우라 치더라도, 계속적으로 세워지고 있는 ‘청소년수련관’의 기본 목적은 시설물의 이름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청소년수련’과 ‘청소년 문화활동’을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같은 시설에 주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지도사’들의 정체성 또한 청소년들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 및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겠지만, 청소년지도사들을 배출하는 국가고시에는 청소년들 주변부에 있는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측정하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인 중에서 ‘지도 혹은 수련, 선도’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이미 범죄를 일으킨 범죄자들 밖에는 없는데 청소년들에게는 이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붙어다닌다.

그리고 또하나의 측면은 위에서도 예를 들었듯이 현재 인천지역의 청소년행사는 적당한 포상과 입시에 프러스요인이 되는 시장상, 부시장상과 같은 시상체계로 얼룩져 있다는 점이다. 물론 청소년 뿐아니라 어느 분야, 어느 세대나 다 일종의 보상체계 성격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전국노래자랑이 그러하고, 부산국제영화제가 그러하며, 모든 스포츠가 그렇다. 시상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시상은 필시 따라다니지만 청소년문화에 있어서의 시상은 좀더 성격이 복잡하다.
일단 청소년들은 아직 성인이 아니므로 자본을 비롯한 제도적 시스템의 운용자의 위치에서는 소외되어있다. 이는 청소년관련한 행사들에는 청소년들이 ‘대상’으로만 참여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므로 이같은 행사가 10개라 할 경우 정말 어렵게 자본이 없이 청소년들에 의해서 행사가 만들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10개의 행사는 청소년행사의 전부를 차지할 것이다. 이 10개의 행사의 성격은 관이나 자본을 가지고 있는 관련단체들에서 만들어지는데, 첫 번째의 성격에서처럼 청소년들을 선도하기 위한 어떠한 ‘목적’을 갖거나 두 번째의 성격에서처럼 ‘시상체계’를 갖게 되는데 문제는 이 둘을 제외하고는 다른 측면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청소년들의 참여를 위하여 시상체계가 없이는 청소년행사를 엄두도 못내게 된 현실이 존재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행사들이 시상체계를 가지게 됨으로써 정작 청소년문화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행사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비청소년들이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시상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서열화’가 필요하고, 이 ‘서열화’의 기준이 주최의 성격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점과 이같은 시상이 이 행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대학입시에 크게 작용한다는 점, 실제 자본으로부터 상당수 자립되어 있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시상금’은 행사의 본 의미보다는 그 보상의 정도에 주목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자신들의 문화를 즐기기 이전에, 이미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사고방식을 익숙하게 한다. 실예로 ‘금액’에 따라 행사의 참여를 결정하기도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농담처럼 ‘상금 프로젝트’라는 말들이 돌아다니거나 대학에 들어가려면 이같은 시상행사들을 다니며 목적을 이루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나도는 것을 직접 들었는데, 이같은 현상은 전적으로 시상행사를 남발하는 성인들의 책임이며, 시상의 의미나 명확한 기준에 대한 별다른 고민없이 시상을 주는 문화를 남발함으로써 시상 이전에 존재하는 청소년문화의 순수성을 더럽히고 있다. 또는 시상체계속에 사고를 주입시키는 방식을 통하여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사고를 저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막상 청소년들은 어떠한가? 위의 두가지 특징을 가진 현재의 문화속에서 인천지역의 청소년들은 그같은 현상들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을뿐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는다. 청소년들끼리의 자유로운 공연 및 활동을 실제 하고 있는 단체들도 있으나 그같은 단체들의 행사는 잘 보이지 않고 거대한 행사들속에서 이미 점수로 매겨지는데에 익숙한 청소년들의 문화가 주로 드러나곤 한다. 이는 실제 자신의 자발적인 행동이 혹은 의견이 묵살되거나 거세되는 경험에 익숙해져있는 것도 저항을 할수 없게 하는 하나의 원인일는지 모른다.
얼마전인가 인천의 한 여고에 다니는 학생으로부터 자신의 학교사이트가 아이들의 불만들이 올라와 폐쇄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학교의 홈페이지의 구조나 의견의 반영의 정도 등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같은 ‘자신의 의견’을 제출한 청소년들의 의견이 묵살되고, 그같은 의견을 소통하고 논의해야 할 장이 될 수도 있었던 하나의 공간이 폐쇄되었을 때 이같은 경험을 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어떠한 기억과 어떠한 삶의 경험을 가지고 다음의 시간을 받아들이게 될까. 실제로 모두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같은 경험을 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그들간의 의견이 교류되고 소통되는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묵살되고 검열될 수 있다는 불신을 가지게될 것이다. 이속에서 무슨 ‘자발성’을 기대하며 이같은 환경속에서의 ‘건전한 시민의 육성’은 무슨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몹시 의심스럽다.  
또한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형성하는 동아리의 활동은 어떠한가. 영상분야, 공연분야, 전시분야 어느 하나도 시상체계에서 자유로이 활동하는 단체는 없다.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청소년들이 자신의 학교에서 벌이는 축제이다. 학교 축제는 학교간의 교류 및 개개인들의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서로 보고 소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나마 이같은 축제마저도 몇 개의 학교에서는 교내 축제로 국한되거나 교장의 취향에 따라 축소 폐지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물론 ‘입시’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적 표현이란, 자신을 정리해내고 정화시키는 힘이자 자신의 주변과 구성요소들에 대한 시간과 공간성, 사건, 역사 모두를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았건 한 개인의 사적표현이 드러나게 되었을 경우 그것이 더 이상 그만의 것으로 남아있지 않다.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고와 경험은 동시대적이며 그 시간과 공간을 반영하고 재해석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그저 말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문화는 시작되지만, 이렇게 자연스러워야 할 문화적 표현이 우리에게는 제도교육속에서 철저히 거세되는 경험을 통하여 말한마디하기 힘든 환경속에 있다. 청소년들 또한 그들의 제한된 환경과 통제된 사고속에서 자신의 사고와 환경을 드러내는 표현을 하기란 쉽지 않다. 창작이 가능한 교육 및 제반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실제 자신의 사고와 표현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허무주의가 팽배해있거나, 모방 및 대체창작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거나, 아예 자신의 표현을 드러내는 것을 몇 년후로 미루어버린다.
실제 대부분의 학교에 동아리들이 형성되어 있고, 나름의 축제가 있겠지만, ‘청소년’이라는 하나의 지나치는 세대속에서 이같은 동아리들의 활동은 자신의 학업과 앞으로의 계획과 연관되었다기 보다는 한때의 경험이나 추억같은 것으로 치부되어진다. 혹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각종 대회에서 입상하여 대학입시에 유리하게 작용되어 자신이 하는 활동을 지속시켜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경우에도 자신의 생각하나를 ‘표현’하고 ‘소통’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기에 그같은 소통을 추구하는 단 한명이 있었다 하더라도 고3이 되면 자연스럽게 흐름이 끊기고 소통은 끊기게 된다. 현재 청소년동아리들의 활동이 뭔가 ‘할려고 하면’ 한해 두해가 가고 알아서 정리하는 시스템으로 정착된 것 역시 청소년들의 진지한 고민과 노력들을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는 주된 요소가 된다.

그럼 이제 할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질문을 던져본다.
앞에서의 흐름대로라면,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표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이는 예전의 방식대로 ‘공간’과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만든다는 편리한 결론이어서는 안되고, 현재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사고와 생각을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아주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어야 한다.
첫째로는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교육이 자신의 주변과 자신의 상황, 자신을 정리해내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되, 어떠한 사고방식을 ‘주입’시키려는 기존의 금기와 통제의 사고체계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의 주입이 아닌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정리하고 결론을 정리해내는 힘을 문화적 표현의 환경속에서 생성해갔을 때 어떠한 문제가 닥치더라도 자신 스스로 그것을 해결해 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즉, 단순히 ‘표출’하는 문화에서 ‘문화를 생성하는 자발적인 힘’을 기를 수 있는 문화적 교육이 시급하며, 이같은 교육을 통한 청소년들의 문화적 힘은 청소년들의 자생적인 문화의 틀를 생성할 수 있는 기초적 토대가 될 것이다.
실예로 지난 8월 한달간 진행되었던 동구청소년수련관에서의 ‘나=i 프로젝트’에서 문화기획프로젝트(‘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인천청소년문화기획단-우리’가 생겨났다. 각자의 생각과 사고를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과정속에서 ‘인천청소년독립예술제-고속도로휴게소’를 구성하고, 인천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동네를 촬영하는 프로젝트였던 사진프로젝트(우리동네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로 연극을 구성하는 이야기프로젝트(내가 바라는 나)를 비롯하여 참가신청을 했던 단체 및 개인들이 자신의 표현의 공간과 시간을 스스로 결정하고 진행하는 과정을 통해 짜여진 시간과 평가받는 자리가 아닌 함께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되었다. 아직도 이같은 방식이 낯설은 측면이 있어 다른 행사에서 이루어지는 ‘요구-수용’의 수동적 자세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 측면이 몇몇의 공연자 및 전시자들에게서 비춰지긴 했으나, 자신의 삶과 자신의 이야기를 2시간가량의 영화제로 구성하여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려 했던 인천고 백용흠 군의 행사나 인천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힙합단체들이 공동으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의 힙합행사를 기획하여 진행하였던 ‘what's up'(청소년독립예술제의 각각의 타이틀역시 참가자들의 논의속에서 결정되었다)행사는 청소년들의 자생적인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멋진 풍경이었다. 

두 번째는 청소년문제에 대해서 ‘금기’와 ‘주입’의 태도가 아닌 총체적 이해와 다양한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청소년문제는 지역에 따라 양상이 틀리고, 각각의 개인이 겪는 문제역시 지역적 특성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청소년문제’를 하나의 규정된 틀로 바라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들어 인천지역에서 청소년들의 가출문제는 청소년이 처한 가정적 문제와 그같은 가정적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 및 주변적 환경, 그리고 청소년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다른 변인들이 존재하고 그 변인들의 역할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와 모두 관련이 되어있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또다시 이유없는 금지를 주입할 사안이 아닌 지역복지의 문제, 학교교육의 적합성의 여부, 근린시설의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구성요소들에 대한 통합적인 해결책이 아니고서는 도리어 악영향만 끼칠 것이다.
그동안 이같은 ‘금지’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존재해 온 청소년문화속의 다양한 캐치프레이즈와 시상체계들은 그 자본과 노력을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은 금기를 위해 투여할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총체적 접근과 이해, 본질적 해결의 다양한 방식의 개발에 투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천지역은 각 구마다 다른 특성을 보이는데, 각 구의 청소년 단체 및 수련관들은 대체로 이에 걸맞는 프로그램과 대상에 따른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실제 인문계보다 실업계가 많은 지역이 있을 것이고, 문화시설이 밀집된 지역이 있을 것이고, 상공업이 발달한 지역이 있을 것이다. 또한 아파트로 재개발된 지역과 인천의 옛모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지역의 경제적 차이 및 정서적 차이, 가정적 환경 등 다양한 측면들이 다를 것이다. 이같은 환경 속에서 청소년 주변의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이같은 사건을 해결할 만한 환경이 되지 못할 때 탈선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같은 탈선에 대해서 해결책은 탈선의 원인에 따른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천편일률적인 ‘되돌림’ 뿐이다.
실제로 많은 탈선문제 및 청소년들의 방황에 관련하여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독립한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주변을 책임지고 그것에 대한 해결점을 스스로 찾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문제들은 대부분 주변적 환경에서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음에서 발생하는데, 청소년이 판단력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속에서도 그 상황을 지켜갈만한 사회적 조건이 받쳐주지 못하거나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예를들어, 집안환경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가 없어 가출을 결심한 청소년이 있다고 할때, 이 청소년은 자신의 독립된 환경을 지켜가기 위하여 자신의 생계를 꾸려야 하고, 직업을 구해야 하는데 실제 청소년들을 평등하게 고용하는 고용제도가 없으며, 청소년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의 미비로 인해 현실적 어려움에 닥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주관을 통한 선택이 아닌 선택의 여지가 없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하나의 예일 뿐이지만, 이같은 경우에 있어서 실제 지역과 분리되거나, 사회적 상황과 분리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청소년의 탈선문제를 청소년만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상황을 갇혀진 상황속에서 보는 것이 아닌, 주변적 상황과 사회적 상황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때, 한 개인은 그 상황속에서 궁지에 몰린 쥐가 되는 꼴이 아닌, 자신의 상황을 해결해가야 할 종합적인 사고를 통해 행동을 취하게 된다. 이렇게 개인이 자신의 지점들을 찾아가고 판단하며 스스로 해결하여 가는 사고를 기를 수 있는 것은 문화적 표현을 통하여 가능하다.
이를 위하여 실제 지역내에 적합한 대안교육이 필요하다. 금기와 주입이 아닌 청소년들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인식하게 하고 주변의 상황들을 판단하고 습득하여 가게함으로써 실제의 삶의 문제를 공동의 논의와 표현을 통하여 직시할 수 있는 문화와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할 수 있을것이다. 이같은 교육은 지역내에서 청소년들이 사회에서 배제되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드는 것이 아닌, 개인의 문제를 표출하고 소통하며 공유지점을 찾아가고 이것들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방향으로 행해져야 한다. 
현재 공모중인 ‘청소년 탈폭력 영화제’도 이의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실제 폭력의 대상으로써, 그리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주체로써 청소년들의 주변에 있는 다양한 폭력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는 계기를 갖게 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폭력금지’ 혹은 ‘범죄예방’이라는 말을 강압적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힘을 갖게 할 것이다.

세 번째는 위의 두가지 조건에 기초하여 청소들년들간의 독립된 네트워크를 지지하여야 한다. 현재 인천지역 청소년단체들은 같은 장르끼리는 네트워크가 이루지고 있으나, 타장르와의 네트워크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특히 공연장르의 경우에는 각종 행사들에 파편적으로 동원되거나 경쟁하는 체계속에서 공연을 위한 네트워크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흩어져서 청소년단체들이 존재할 때에는 참여의 방식에 있어서 별다른 결정권이 없이 요구하는대로 해야 하지만, 청소년들끼리의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다면 그 속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다양한 활동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구심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자본과 시설을 떠나서 표현하고 소통하고 공유해가는 문화의 기본적인 성격이며 이같은 성격이 없이는 청소년문화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남아있을수 밖에는 없게 된다.
또한 청소년들간의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존지원단체 및 시설의 지원이 필요하다. 실질적으로 함께 활동할 공간을 비롯하여 행사에 필요한 자원 및 시설을 청소년들만의 힘으로 마련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논의의 주체는 청소년으로 하되, 청소년들의 활동을 기성단체의 산하조직으로 재조직화하는 것이 아닌 기성단체 및 시설들이 공동의 지원체계를 가지고 적정한 지원의 방식과 청소년들이 문화적 표현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내용성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할 때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는 대안적인 활동이 생산되고 소통되는 자생적인 체계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청소년 문화지원이란, 어떠한 시각으로 청소년들을 규정하고 그 시각에 맞추어 맘에 안드는 것을 잘라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조건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 속에서 스스로 활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이같은 자생력이 지속되어 갈 수 있는 내용성 있는 참여형 문화프로그램 및 시설 및 자본과 같은 적절한 지원을 대상과 지역, 시대성에 맞추어 계획하여 행하는 것이다.

2002. 12
지경(공존을 위한 공공문화 표현집단 퍼포먼스 반지하) www.vanzih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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