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힙합은 죽었다’는 나스(Nas)의 결의에 찬 선언은 예상대로 많은 논란을 야기하며 요즈음 힙합 씬의 화제 중심에 선 모습이다. 뮤지션과 리스너, 비평가 가릴 것 없이 모두의 입에서 갖가지 말들이 춤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볼 때, 이 느닷없는 사망 선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빼놓고 본 작을 온전히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엄중한 책임은 자매상품 ‘Is Hip Hop Really Dead?' 칼럼에 맡기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 논쟁의 중심부에 돋보기를 지나치게 들이대는 일은 삼가도록 하자.
나스는 앨범의 1/3을 기꺼이 ‘힙합의 죽음’에 할애한다. 그는 힙합이 여전히 살아있다 믿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질타하더니(“Money Over Bullshit”), 이윽고 힙합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자신이 과거의 전통을 계승해 나가겠다고 다짐한다(“Carry on Tradition”). 그리고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옛 영광의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보며 그들에게 그리움의 손길을 뻗치는 한편(“Where Are They Now”), 그들이 떠나버린 지금 이 시점의 힙합은 죽었다고 단언한다(“Hiphop Is Dead”). 그렇다면 대체 누가 힙합을 죽였는가?(“Who Killed It?”) 답변 대신 나스는 우리에게 나지막이 속삭인다. ‘그녀(힙합)가 말했어. 우리가 그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다시 부활해 돌아오겠다고 말야.’
앨범의 다양한 수록곡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다. 과거에 대한 회상 혹은 번민(“Not Going Back”, “Hold Down The Block”), 과거의 인물들을 통한 삶의 반추(“Blunt Ashes”), 어두운 터널을 지나 비로소 내민 화해와 용서의 손길(“Let There Be Light”), 잊을 수 없는 것들에 얽힌 벅찬 추억(“Can't Forget About You”) 등 나스는 지나간 것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또한 그가 말하는 ‘힙합의 죽음’ 역시 그의 기준에서 바라본 찬란했던 과거의 반대 개념으로 해석이 가능하므로, 이 역시 앨범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듯 진지하고 사색적인 나스의 면모는 기존의 지지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매력으로 다가간다.
음악 역시 비교적 만족스럽다. 다만 흡족함 가운데 무언가 조금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사실 이러한 ‘석연치 않음’은 바닥을 치고 다시 일어서기 시작한 [Stillmatic] 이후로 발표된 앨범들에서 그동안 일관적으로 느껴졌던 무엇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수준급의 완성도이긴 하나, 나스의 실력과 명성에 비하면 still 배고픔이 느껴지는 것이다. 또한 엘이에스(L.E.S)와 윌아이엠(Will.I.Am), 카니에웨스트(Kanye West)가 저마다 이름값을 해준 반면, 스캇스토치(Scott Storch)는 자신의 ‘수많은 범작 나눠주기 운동본부’에 결국 나스마저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말았으며, 닥터드레(Dr.Dre)의 비트는 스눕(Snoop) 앨범을 통해 부활의 조짐을 보여준 그것들(“Imagine” 등)에 비하면 감흥이 부족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데프잼(Def Jam)을 등에 업고도 스타 프로듀서 일색의 식상한 ‘백화점식 구성’에서 본 작이 어느 정도 비켜서 있다는 점이다.
앨범 발매 후 나스는 XXL을 위시한 여러 매체를 통해 ‘힙합은 이미 죽었다. 엿이나 먹어라. 우린 그냥 돈이나 긁어모으면 된다’고 냉소를 퍼붓고 있지만, 사실 그의 진짜 속내는 앨범의 마지막 트랙(“Hope”)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뜨겁게 가슴을 지피는 그 진심(‘Hiphop will never die. I pray hiphiop stays')에서 우리는 힙합을 향한 나스의 절박한 애증을 읽는다. 글쎄, 힙합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니, 나는 이 문제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뭐 굳이 선택을 하자면 나스의 의견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스와 같이 힙합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힙합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고로, [Hiphop Is Dead]는 역설적으로 힙합이 아직 생생히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하고도 명백한 증거다.
Track List
1. Money Over Bullsh*t
2. You Can't Kill Me
3. Carry On Tradition
4. Where Are They Now
5. Hip Hop Is Dead ft.Will.i.am,
6. Who Killed It?
7. Black Republican ft.Jay-z
8. Not Going Back
9. Still Dreaming ft.Kanye West
10. Hold Down The Block
11. Blunt Ashes
12. Let There Be Light
13. Play On Playa ft.Snoop Dogg
14. Can't Forget About You
15. Hustlers ft. The Game & Marsha Ambrosius
16. Hope
Is Hip Hop Really Dead?
노예의 핏줄(blood of slave)을 타고났지만 왕의 가슴(heart of king)을 지닌 나스(Nas)가 자신의 새 앨범 [Hiphop is Dead]에서 ‘힙합은 죽었다’고 선언해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심지어 나스는 이번 일로 인해 까마득한 후배인 영지지(Young Jeezy)에게 그야말로 그 모욕감에 GG(good game, my nigga)를 칠만한 말까지 들었다(나스는 거리 출신이 아니다. 나스가 총을 쏘기라도 해봤냐?.......나스가 힙합이 죽었다고 한다면 나는 힙합이 살아있다고 하겠다. 문제가 있으면 내 앞에 와서 얘기해보시지! - 리드머 뉴스 참조). 뿐만 아니라 다른 더리사우쓰 뮤지션들도 나스에게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하니, 이거 뭔가 사태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나스의 말대로 정말 힙합이 죽은 거라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리스너인 우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잘했다고 칭찬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행여 진짜 죽은 게 맞다면 이거 어서 빨리 드래곤볼이라도 모아와야지 않겠는가(.......).
나스는 어찌하여 ‘힙합은 죽었다’고 단언하는가
나 나스야. 일단 미국 문화가 전반적으로 죽어가고 있고 힙합 역시 마찬가지야. 나는 미국인인 게 자랑스럽지만 지금의 미국 문화는 점점 시시해져가고 있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우리의 문화는 지금 같은 것만을 토해내고 있고, 그것은 전혀 즐거운 일이 아니야. 나는 어릴 때부터 이걸 쭉 지켜봐왔지. 원래 힙합은 매우 흥미 있는 것이었어. 그런데 지금의 힙합은 더 이상 게토의 전유물이 아니야. 이제는 힙합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 물론 그것은 우리가 바라던 거였지만, 문제는 힙합이 우스꽝스러워졌다는 거야. 나는 여전히 힙합을 사랑하지만 현재의 힙합은 오직 돈을 위해 존재하지. 누구도 아티스트로서의 존중심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아. 모두가 돈을 좇을 뿐이야. 그러니까 엿이나 먹어. 힙합은 죽었어. 그 시체를 땅에다 묻어버리고 돈이나 벌자구.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기도 해. Let's get our paper. Fuck Hiphop.
- 개인적으로 Source보다 더 즐겨 보는 XXL(‘07 1/2월호) 중 발췌
즉 나스는 힙합이 상업 논리에 지배받고 있기에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하고 있다. 마케팅을 위해 억지 디스를 벌이며 커리어를 확장해 나가고, 세일즈를 위해 인기 프로듀서들의 곡을 너나할 것 없이 앞 다투어 받은 결과 모두의 앨범이 똑같아진 지금의 힙합에 그는 충격적인 사망 진단을 내린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 힙합 씬에서 아티스트쉽은 사라졌으며, 남아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돈의 뒷전에서 서성일 뿐이다.
그렇다 하여도, 그런 이유들로 ‘힙합은 죽었다’고 쉽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인가
어떠한 문화든 씬이 확장되어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본의 논리가 개입되기 마련이다. 힙합 역시 몸집을 불리면서 자본과 결합하였고, 그 결과 빠른 속도로 미국 음악씬의 주도권을 움켜쥘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의 힙합 씬, 그 자화상은 어떠한가. 오히려 자본의 논리에 음악이 함몰되는 주객전도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음악이 쏟아져 나오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들을 음악이 없다고 울상이다. 저마다 엇비슷한 음악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음악들이 우리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사 감동을 주더라도 그것은 대부분 오래가지 못하는 휘발성에 그친다. 나스는 바로 이러한 현실에 진저리가 났던 것 같다. 그래서 ‘힙합은 죽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 취지에 절실히 공감한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나스의 확신에 찬 태도에 일말의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같은데, 그런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힙합은 죽었다’는 말을 ‘의도적 역설’이자 ‘상징적 제스처’로 알아서 여과해 듣는 일종의 융통성이다. 적어도 지금의 힙합이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생각해보자. 나스가 XXL과의 인터뷰에서 ‘형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힙합이 완전히 죽은 건 아닌데 말야, 분명히 잘못된 것도 있고 뭐 아무튼 아 몰라 여러 가지로 이상해졌어, 그러니까.......(생략)’ 이렇게 얘기하거나 혹은 앨범 타이틀을 [Umm...I Think Hiphop is Dead. But Please Don't Get Me Wrong.......(생략)] 이런 식으로 짓는다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물론 조금 극단적인 예시이긴 했지만.
아무튼 음악이 더는 주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힙합은 분명히 죽었다.
그렇다면, 과연 나스에게는 ‘힙합은 죽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나스의 발언에 적극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완고한 태도에 왠지 모를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던 것도 같다. 물론 당연히 그의 과거 행적들이 떠올라서다. 간단하게 몇 가지만 열거해보자.
“Nastradamus”, “Oochie Wally Remix”, Jay-Z와의 Diss War(이슈를 만들기 위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냐는 의심이 많았다), 그리고 과거로 갈 것도 없이 이번 신보 자체가 이미 나스에게 자격론을 들이댈 구실을 부분적으로나마 안고 있다. (앨범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별다른 특징도 없는 곡들을 다른 랩퍼들과 사이좋게 나눠가진 것으로 보이는 Scott Storch, Kanye, Dre의 비트들은 결과적으로 나스 본인이 비판하는 ‘상업적 포석’과 다를 게 무엇이며, 또한 이것 역시 크게 보아 ‘백화점식 앨범 구성’에 해당되지 않던가.
그러나 나는 여기서 자격론의 이러한 ‘섣부른 당당함’을 경계하고 싶다. 어떠한 가치판단의 과정에 있어 ‘자격의 유무’를 따지거나 ‘도덕적 정당성’을 재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나, 그것을 내세워 해당자의 ‘진정성’까지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물론 ‘의심’이 갈 것이다. ‘모순’이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성을 ‘완전부정’하는 수준으로까지 이르러서는 안 된다. 비판적으로 임하되 귀는 기울여야 한다. 귀를 아예 틀어막거나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편견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나스의 진정성에 대하여
개인적으로는 나스의 진정성을 믿는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그의 몇몇 과거 행적을 ‘잠깐의 방황’ 혹은 ‘시행착오’ 정도로 해석한다면 너무 관대한 걸까. 지난 몇몇 글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나는 현재 힙합의 모양새가 ‘단순한 흐름’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흐름’에 가깝다고 보는 입장이기에 나스를 지지하며, 또한 데뷔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가 보여준 행보를 거시적으로 바라본 결과 나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요즈음 그가 매체를 통해 취하는 태도에는 조금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도 본다. ‘힙합은 이미 죽었으니까 나는 돈이나 벌겠다’, ‘사실 앨범 타이틀을 이렇게 정한 것도 이슈화시키고 돈을 벌기 위해서다’ 같은 그의 발언은 일면 힙합을 향한 그의 애정과 사랑을 다소 냉소적이고도 역설적으로 표출하는 효과를 가져와 ‘쿨하다’, ‘멋지다’ 같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반면에, 한편으로는 ‘패배주의’와 ‘자기합리화’로 비쳐져 자칫 그의 진정성 자체를 결정적으로 훼손시킬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스의 선언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올바른 자세
‘힙합은 죽었다’는 나스의 말은 완전한 정답도, 완전한 오답도 아니다. 굳이 정의하자면, ‘힙합에 오랫동안 애정을 품고 랩을 하며 살아온 한 뛰어난 엠씨의 일리 있는 견해’ 쯤으로 해두는 게 적당하겠다. 나스 스스로도 ‘이것은 나와 힙합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나온 말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 저마다 다른 관계를 힙합과 맺고 있다. 누구든지 나처럼 말할 수 있다. 힙합이 살아있다고 느끼면 ‘Hiphop is Alive’라고 하면 되고, 힙합이 자멸하고 있다고 느끼면 ‘Hiphop is Committing Suicide’라고 하면 된다.’고 밝혔듯이 말이다.
힙합의 생사 여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스의 이 같은 발언을 한 개인의 진정성이 담긴 의견으로 인정하고서 그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자세다. 물론 개개인의 가치관, 나이, 힙합을 듣기 시작한 시점 등 여러 변수에 따라 판단은 다양하게 엇갈리겠지만, 나스로부터 시작된 저마다의 생각과 고민은 결과적으로 힙합을 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나스의 ‘Hiphop is Dead' 선언이 비록 신선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논쟁거리를 우리 모두에게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일정한 ‘환기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이것만으로도 나스는 그의 책임을 어느 정도는 완수한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여담이지만, 애증 섞인 단호함이 서려 있는 나스의 선언보다는 더게임(The Game)의 다음 가사 구절이 지금으로선 더 현실적이고 정확할 듯싶다.
Hip-Hop ain't dead, it just took a couple shots. (“One Blood Remix”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