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어버린 한민족사의 고리, 부여(夫餘)사
이제 구체적인 역사 내용을 논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부여사의 왜곡으로 인해 드라마 의 등장인물간의 인척관계가 대단히 잘못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주몽은 해모수의 아들이 아니다 | 고주몽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인 고진(高辰)의 손자인 불리지(일명 고모수高慕漱)와 유화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유화부인과 해모수가 부부인연을 맺은 것으로 설정하여, 유화부인이 시증조할아버지와 관계를 맺은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 이런 역사왜곡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부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 | 드라마에서는 주몽이 태어난 나라를 부여라고 한다. 우리 민족의 흥망사를 살펴보면, (원시)부여, 대부여,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 서부여, 남부여 등 수많은 부여가 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어 시청자들의 혼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주몽이 태어난 나라는 ‘동부여’이다. 주몽은 ‘북부여’의 건국자인 해모수 단군의 고손자로서 황손(皇孫)이다.(『삼국유사』도 분명히 해모수가 북부여의 건국자임을 밝히고 있다.) 광개토열제의 비문에 ‘황천지자(皇天之子)’라고 했던 것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중국사가들의 역사왜곡과 국내사가들의 중국사 베끼기 | 그런데 왜 우리는 이것을 잘 모르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의 역사가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역사왜곡에 기인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여기서 다 언급하기 힘들지만, 중국은 한(漢) 무제 때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 이후로 동방의 천자국(天子國), 스승의 나라, 조선(朝鮮, 고조선)의 역사를 일부러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다.
조선은 세상에서 아는 것과 달리 하나의 국가로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하나의 주체국 아래 수많은 제후국을 거느리고 있는 일종의 연방체제로 이루어진 대제국이었다. 조선이란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 단지 제후국의 이름만 거론하면 조선은 역사 속에서 오리무중으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후세의 김부식과 같은 우리의 역사가들은 중국인들이 써준 역사를 베끼기에 급급했던 탓에 우리의 역사, (고)조선사는 실체가 없는 신화로만 남게 된 것이다.
(고)조선사를 역사 속에서 지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부여사 또한 지우는 것이었다. 조선의 역사 계승은 해모수가 세운 북부여를 거쳐서 열국시대와 사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가야), 남북국시대(대진국·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에 이르게 되는데, 북부여를 역사 속에서 지우면 뒤에 생겨난 국가들은 (고)조선과 전혀 관계없는 역사의 미아가 될 것이라는 것을 중국인들은 노렸던 것이다.
읽어버린 부여사
그럼 구체적으로 부여의 정체를 풀어보자. 이것이야말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올 동양 한민족사의 실체에 얽힌 중대한 비밀코드를 풀어내는 열쇠이기도 하다.
(고)조선의 역사 | 부여의 원뿌리는 (고)조선(朝鮮)이다. (고)조선은 마흔일곱 분의 단군이 나라를 다스렸다. 또한 나라를 크게 진한(辰韓, 후기엔 진조선) 번한(番韓, 후기엔 번조선) 마한(馬韓, 후기엔 막조선) 셋으로 나눠, 진한은 단군이 직접 통치하고, 번한 마한에는 부단군을 두어 일종의 연방체제로 국가를 운영하였다. 그리고 삼한 안에도 더 작은 제후국들이 존재했다.
대부여의 등장 | 44대 단군은 구물(丘勿)단군이다. 그는 본래 43대 물리단군 때 상장군(上將軍)이었다. 43대 단군 때 사냥꾼의 두목 우화충이 사냥꾼들을 모아 반역을 저질렀다. 그들이 수도를 점령하고 물리단군이 피난 중에 죽자, 이에 맞서 반란자들을 제압한 이가 바로 상장군 구물이었다. 이에 5가(우가 마가 구가 저가 양가; 5인으로 구성된 조정의 주요 대신(大臣)들) 제신들은 그를 44대 단군으로 추대하게 된다.
구물단군은 나라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력을 쇄신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수도를 장당경(藏唐京; 지금의 개원(開原), 단군 44대~47대까지 188년간의 수도)으로 옮기고 국명 또한 ‘대부여(大夫餘)’로 바꾸기에 이른다. (고)조선의 종통은 보전하고 나라 이름을 바꾼 것이다.(‘부여’란 명칭은 초대 단군왕검의 넷째 아들의 이름인데, 초대단군은 아들 부여를 제후국 국왕으로 봉했다. 그 나라의 이름이 ‘부여’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학자들은 이를 ‘원시부여’라 부른다.)
요컨대 (고)조선의 국호가 부여(대부여)로 바뀐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고)조선의 국통은 다름 아닌 부여를 통해 계승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일제식민사학을 답습한 국사교과서에서는 (고)조선과 부여가 어떤 관계이며, 또 부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로 어떻게 국통맥이 이어졌는지를 전혀 알 수 없게 되어있다.
북부여의 등장 | (고)조선 말기인 대부여로 오면서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의 군권이 독립되고, 진조선의 중앙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지방의 군웅들이 할거하며 나라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47대 단군 고열가(高列加)는 50여년에 걸친 치세에도 결국 이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고, 5가 대신들에게 나라를 맡기고 산으로 은거하게 된다.(BCE 238) 이로써 2,096년간의 (고)조선은 막을 내리고, 5가(五加)에 의한 과도기의 공화정이 실시된다.
이 무렵 (고)조선의 종실(宗室) 사람 해모수가 웅심산(熊心山)에서 일어나(BCE 239) 세력을 키우면서 6년간 계속된 공화정을 철폐하고 5가 제신들의 추대로 단군조선의 대통을 이어 다시 ‘북부여(北夫餘)’를 건국하게 된다(BCE 232). 이렇게 대부여의 국통은 북부여로 이어진 것이다.
해모수는 국가 체제를 그대로 보전하고 나라 이름만 북부여라고 한 것이다. 해모수도 ‘단군’으로 호칭했으므로, 해모수 단군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해모수가 ‘북부여’라고 나라이름을 정한 데에는, 북부여가 ‘대부여’ 곧 단군 (고)조선의 정통정신과 법통을 그대로 계승하였다는 역사의식을 나타낸 것이다.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 그러면 북부여의 국통은 어디로 이어졌는가? 고구려로 계승되었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 고구려후(高句麗侯) 고진(高辰)의 3대손이다.
광개토대왕비에서도 “옛날 시조 추모(주몽)왕이 나라를 세웠는데, 왕은 북부여 천제의 아들이다(唯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出自北夫餘天帝之子)” 하여 강한 북부여 계승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단군의 (고)조선-북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한민족사의 국통은 삼신문화가 전수된 정신사적인 정통맥일 뿐만 아니라, 직계조상과 후손으로서 혈통줄을 타고 계승된 것이다.
드라마 에서 보이는 부여는 엄밀히 말해서 동부여이다. 그런데 해부루가 다스렸던 동부여는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듯 중국의 전한(前漢)과 국경을 맞대고있지도 않았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가질 수도 없었다. 동부여는 가섭원 부여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만주 흑룡강성 통하현(通河縣)에 위치하고 있어 북부여에 의해 막혀 한나라와 교류를 할 수 없었다. 드라마가 상정하는 그 자리에는 사실 북부여가 자리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