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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목소리 (2007)

박대용 |2007.02.02 23:17
조회 92 |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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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목소리 (2007)

 

한국  |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  122 분  |  개봉 2007.02.01

감독 : 박진표

주연 : 설경구(앵커 한경배), 김남주(오지선)

국내등급 : 12세 관람가

 

현상 수배극
1991년 이형호군 유괴사건 실화
내 아이를 빼앗아간 유괴범의 44일간의 피말리는 협박 전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놈을 잡기 전에는...
우리 아이는 겨우 아홉살이었습니다

 

 

  현상수배극 가 공개된 뒤 이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에 관해 상당한 찬반이 있다. 이것은 박진표의 새로운 도약인가, 그저 단순한 감정의 과잉인가. 평론가 이상용이 영화의 접근방식을 통해 박진표의 도전을 해부한다.(그리고, 당연히 이 글은 스포일러가 많다.)

  박진표 감독의 신작 는 이형호 유괴살해사건을 충실히 담고 있다. 이 방식은 세대마다 다른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1991년 당시 공중파 보도를 통해 이형호 유괴살해사건을 경험한 관객들은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의 방식에 처음부터 몰입할 여지가 크다. 상대적으로 젊은 관객들은 할리우드의 유괴영화나 봉준호 감독의 을 볼 때와 유사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동감을 느끼기 쉬운 전자의 관객을 제쳐두고, 후자의 관점으로 먼저 보자면 는 멜 깁슨이 주연한 과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유괴영화의 틀을 따른다. 자식을 잃은 부모와 무지한 경찰들 그리고 영리한 악당과의 대결구도는 을 끌고 나가는 삼박자다. 에서도 삼박자의 조화는 동일하다. 아이를 근심하는 부모의 절박한 심정을 중심에 놓고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그러나 는 영화가 아니라 역사적 현실에 따라 결말이 이미 예정돼 있다.

  대다수의 할리우드영화에서 범인은 처벌받고, 아이는 구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는 는 미해결된 ‘상처’를 거명할 수밖에 없다. 이점을 어떻게 던져 놓을 것인가. 박진표 감독의 신작이 던지는 충격은 이러한 영화의 형식적인 고민과 맞물려 있다. 이 영화는 결말이 미리 예정돼 있는, 폭발력이 작을 수밖에 없는 영화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뒤섞임

  박진표 감독의 대다수 영화들처럼 는 공간이나 배경에 사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여러 기사들을 통해 이미 소개가 됐듯이 실제 사건이 일어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촬영을 시도하려다 난항을 겪어야만 했고, 1991년도의 시대적인 배경을 만들어내기 위해 15년을 뒤로 물러나 현재의 도심을 바라봐야 했다. 물론, 모든 것이 실화에 충실한 것은 아니다. 유괴를 당한 가족의 실명과 캐릭터의 설정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각색됐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상우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한경배다. 설경구가 열연하는 한경배는 9시 뉴스의 스타 앵커로 등장한다. 그는 아들 상우의 유괴 덕분에 방송 출연도 고사한 채 전화기를 붙들고 혈투를 벌인다. 하지만 노력의 대가는 변사체로 발견된 아들의 시체를 뒤로 한 채 오열하는 것이다. 는 이 대목부터 서서히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1991년 8월 1일’이라는 글자와 유괴된 지 44일째라는 자막이 등장하기까지 전형적인 유괴영화의 흐름을 따랐던 는 시체가 발견된 이후 새로운 차원의 형식을 던지며 한경배 아나운서는 9시 뉴스의 진행자로 복귀한다. 그리고 그는 뉴스를 진행해야하는 공적인 아나운서의 자리를 대신하여, 아버지라는 개인의 얼굴을 어떤 식으로든 드러내게 된다.

  이 문제의 장면은 기본적으로 과잉돼 있다. 제 아무리 허구의 드라마라 할지라도 현실에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상황 설정으로 맺음 된다. 아마 이 영화가 여기에서 그쳤다면 감상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작 이 영화가 놀라운 것은 극단적인 허구 뒤에 이어지는 연출이다.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하는 한경배 아나운서가 뉴스를 통해 또 다른 충격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객은 처음으로 1991년 당시 수사현장에서 기록된 어떤 소리를 듣게 된다. 실화에 근거한 허구를 현실로 돌려놓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여러 차원에서 충격을 안겨준다. 도움을 청하는 영화 속 아버지의 목소리는 현실의 관객들에게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을 환기하도록 만들고, 유괴라는 행위를 스릴러의 공식 위에 안전하게 즐기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실을 위협하고 있는 극단적인 상황임을 깨닫도록 환기시킨다. 세상에 완전 범죄는 없고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고 꼭 잡을 거라는 태도를 드러내는 대사는 감독의 강한 자아의식을 발동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을 만든 박진표 감독의 행보를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방식이다. 그의 영화는 세상의 관습을 넘어서는 지점들을 건드리면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전 작품들은 노인들의 성생활을 과감하게 보여줌으로써, 에이즈에 걸린 연인의 로맨스를 제시함으로써 현실의 편견을 달리 보기를 호소한다. 박진표 감독의 영화는 현실의 장막이 짙게 드리워질수록, 훨씬 더 강력한 로맨스를 내놓으면서 관객들의 동감을 끌어냈다. 그것은 개인들의 로맨스가 자유롭게 선택될 수 있다는 정당성 위에 펼쳐진 현실참여적인 목소리이며, 구태의연함을 넘어서게 하는 원동력이 돼준다.

 

허구와 현실의 뒤섞임

  문제는 의 경우 전작들의 주인공들과 달리 처음부터 부모의 절박한 심정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항의 요소는 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과학수사를 외치면서도 무기력한 피로를 드러내는 경찰들의 행보는 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이 무지했던 시대상에서 기인한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경찰들 역시 동일한 아버지라는 것을 감추지는 않는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잠복근무를 하는 김욱중(김영철) 형사는 카폰으로 아들과 통화하거나 지하주차장에서 몰래 만난다. 상우의 아버지 한경배는 용의자들과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오만했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고발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친구를 다뤘던 한경배의 정당성은 유괴라는 사건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친구 앞에 무릎을 꿇고 아들을 찾아달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가 전작들에서 두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있다면, 그 누구도 정당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설경구가 열연하는 한경배의 눈물 어린 분노와 호소는 부모의 눈물을 더욱 강렬하게 자극함으로써 오히려 과도한 감정을 유발한다. 역사적 사실을 자막으로 내보내고, 허구를 실제 현실로 불러오는 마지막 장면의 효과는 미묘하다.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을 대중들에게 환기시킴으로써 한 편의 상업 영화가 과연 사법제도의 기능을 대리할 수 있는가 하는 차원의 문제에서부터, 감정에 호소하는 이 영화의 역사화 과정은 대중의 집단무의식을 자극함으로써 노태우 정권으로 대변되는 시대상의 본질을 오히려 흐리고 있다는 비판을 가능케 한다. 이 영화의 홍보문구가 “국민의 공소시효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것을 감안하자면 영화를 통한 대중정서의 자극이라는 가장 미묘한 역사적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이 점에 대해서는 더 긴 논의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번 영화에서 박진표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과감한 감정의 호소와 눈물보다는 훨씬 더 냉정한 ‘이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가 냉정해질수록 흥행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겠지만 명성에 눈 먼 상우 아버지의 미묘한 이중성이나 상우의 체중을 줄이기 위해 잔혹하게 굴었던 강남 어머니의 태도가 훨씬 더 풍자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성을 잃은 어머니가 겨울옷을 입고 택시를 타는 장면은 도시인들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었던 그로테스크함이다. 이러한 결말의 과잉에도 불구하고, 박진표의 영화는 여전히 개인과 세상 사이의 충돌과 갈등을 다채롭게 다뤄낸다. 그것은 범죄의 현장에서도 펼쳐지는 현실의 이면들이다. 굵직한 에피소드 이외에도 중국집 화교 청년이 유괴 용의자로 주목받는 대목은 박진표 감독의 눈이 얼마나 넓게 살피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청년은 중국말로 경찰에게 말을 한다. 그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미묘한 뉘앙스만으로도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장면들은 더욱 과감해지고, 더 많은 것을 의식한 박진표 감독의 영화에 숨어 있는 매력들이다.


 

 

[ K I E S B E S 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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