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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

이낙원 |2007.02.03 13:13
조회 138 |추천 2



`요코 이야기` 저자 일문일답

[중앙일보]
Q: 45년 있지도 않은 인민군(48년 창설) 목격, 치명적 역사 오류인데 …
A: 인민군 표현은 별 의미 안 두고 썼다   

 

 

 

 

 

 

 


 
 
 
 
'요코 이야기'의 작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73)가 중앙일보의

질문에 대해 보내온 답변을 싣는다.

답변은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옮겼다.

 

-'요코 이야기'는 소설인가, 수기인가.

"둘 다다. 1976년 20년 만에 오빠 히데오를 만났을 때 나는 오빠가 어떻게 나남(청진시)을 탈출했는지 물었다. 그러나 오빠는 말하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 묻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한국 지도를 펼쳐놓고 그가 지나왔을 길을 상상했다. 오빠는 자신을 도운 한국인 가족에게 '평생의 빚을 졌다'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이들 가족의 위치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오빠 부분만 빼고 모두 사실이라는 것인가.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을 썼다."

-소설 속 몇몇 부분이 결정적 오류란 지적이 있다.

①나남은 대나무가 살 수 없는 곳이다.

②일본 패망 전에 미국이 나남 지역을 폭격한 일이 없다.

③45년 목격했다는 북한 인민군은 48년 창설됐다 등의 반론이다.

"①어머니가 대나무를 그리워하자 아버지가 고향 아오모리에서

노란 대나무를 구해왔다. 10년이 흐르면서 대나무는 숲을 이뤘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나무숲은 아니다. 얇고 길죽한 대나무밭이다.

②미군이 나남 부근을 폭격했다고 쓰지 않았다. '경보 사이렌이 울리자 다들 땅 위로 엎드려! 하고 선생님이 다급하게 외쳤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보았다. 미국 비행기 3대가 우리 머리 위를 줄지어 날아가는 중이었다'라고 썼다. 당시 나진에 살았던 교통부 장관 푸유시바도 'B-29기가 종종 나진 지역을 맴돌았다'고 회고했다(마이니치 신문 2006년 11월 22일). 내가 본 비행기는 B-29기일 수도 있고 소련 비행기일 수도 있다. 나는 비행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선생님이 머리를 숙이라고 다급하게 외치던 순간, 분명히 보았다.

③'인민군(Korean Communist soldiers)'이라는 표현을 나는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사용했다. 내가 말하려 했던 건 역사적 사실보다 내 가족의 생존에 관한 것이었다. 역사에 따르면 인민군은 45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때 마주쳤던 북한 민병대(North Korean Militia)는 누구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인을 가장 자극했던 대목은 한국 남성이 일본 여성을 성폭행하는 부분이다. 아직도 일본 정부는 전쟁위안부 문제를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45년 당시 한국인의 분노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은

식민통치에서 막 벗어났다는 기쁨에 차 있었고, 어떤 식으로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본 그대로를 옮겼다면

독자들은 공포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어린 독자를 위해 최대한

정중하고, 부드럽게 표현했다. 한국 독자를 화나게 한, 내 부족한

필력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사과한다.

김부자씨가 쓴

'전쟁위안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것'

(Want to Know More About Comfort Women)

을 96년 읽고서 전쟁위안부를 처음 알게 됐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일본 정부가 전쟁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모녀의 수난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한국인이 가해자처럼 묘사되고 있다.

"이 책은 10쪽 분량의 편지였다가 한 권짜리 책으로 늘어난 것이다. 역사적 배경에 대해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특히 순수한 사람에게 슬픔을 주는

끔찍한 것'이란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

 

-미국의 한국 동포들이 교재 채택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뉴저지의 한 한국인 학생은 학교 수업을 거부하기도 했다.

"매우 유감이다. 미국 교육부는 최상의 교육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98년 교사가이드(the Teacher's Guide)가 발간됐을 때

정말 기뻤다. 가이드엔 책 두 권이 포함됐다. 최숙렬씨의 '떠나보낼 수 없는 세월'(Year of Impossible Goodbyes)과 '요코 이야기'다. 그때 '나와 최 작가의 책이 하나로구나. 미국 아이들은 양쪽 사람들 이야기를 모두 배울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미국 학생들이 한.일 관계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한 번도 없다. 줄곧 회고담에만 집중했다. 열한 살 아이가 돼

열한 살 아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했다.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제 난 어른으로서 학생들에게 일본 정부의

잔혹한 행위를 말한다. 한국.중국.일본의 민간인이 얼마나 심한 고통을 겪었는지, 거리낌없이 얘기한다."

 

-일본인을 피해자로, 한국인을 가해자로 묘사한 극우주의자로

보는 한국인도 있다.

"난 극우파가 아니다.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다. 일본인으로서

이 책을 쓴 게 아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아버지가 731부대의 고위 간부라는 의혹도 있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일한 적이 없다. 지난해 10월까지 731부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다 전쟁기록을 통해 가와시마 소장에 관한 섬뜩한 내용을 접하게 됐다. 두 명의 '가와시마'를 놓고 곤란한 상황에 처한 학교에 내 가족의 호적등본을 보냈다.

가와시마 요시오(川良夫.1897~1968):아버지.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태어나 33년부터 45년까지 남만주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가와시마 기요시(川島淸.1893~1989):731부대 의무소장, 생화학무기 생산부장. 일본 지바현 출생. 이바노보 감옥에서 56년 3월 일본으로 귀환. 두 사람의 이름에서 '시마(, 島)'의 철자를 비교해 보라. 아버지는 '산(山)'과 '새(鳥)'가 합쳐진 를 사용했고, 731부대

소장은 '산(山)'이 빠진 '섬(島)'자를 썼다."

 

-아버지가 만주에서 벌인 일 때문에 가족들이 인민군의 추격을

받는 장면이 소설에 나온다. 아버지가 시베리아에서 6년간 복역했다는 얘기도 있다. 주요 전범일 가능성은 여전하다.

"아니다. 아버지는 51년 가을 일본으로 돌아왔다. 책에는 전쟁이 끝난 지 6년 뒤 아버지가 돌아왔다고 썼다. 기록에 따르면 가와시마 기요시 소장은 56년 3월 귀국했다. 우리가 쫓긴 건 아버지가 만주의 철도회사에 다녔기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인은 모든 일본인에게 분노를 품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은 대개 군복을 입고

총을 든 군인들이었다. 시베리아 수용소에 있었다고 해서 모두가

전범은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뒤 모든 일본군과 민간인, 심지어 그들 가족도 러시아 곳곳의 수용소로 끌려갔다."
 

 

한국독자에게

 

요코이야기로 여러분모두가 느꼈을 비통함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인이 일본 군부억압 통치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를 향한 내 책을 향한 한국인의 분노를 비난하지

않는다. 원래 이책은 15세 미국인 소녀에게 보낸 10장짜리

편지에서 시작됐다.

모든걸 같췄으면서도 늘 투정이나 부리는 소녀를 보면서

나는 슬펐다. 그래서 엄마,언니와 함게 나남을 떠나 서울,부산을

거커쳐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 내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한국 역사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간 나는 평화를 주제로 한 강의에서 일본 군부의 잔혹성을

빠짐없이 고발했다. 일본 군구는 우리 모드를 쓰레기 취급했다.
내가 일본군구를 대신해 한국,중국, 필리핀 학생에게 머리 숙여

사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목적은 다르겠지만 이책은 일본에서도 출판이 금지된 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출판사(문학동네)는 책뒷면에 전미 베스트니 어쩌면서 허위광고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 물론 소설로서의 가치는 나름있다고 판단되나 이건 아니라 본다 

 

요코이야기의 영향력

성기완(경희대학교 영미어학부 교수)

 

국내에서 일단 판매 중지됐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청소년용

교재로 쓰이고 있으며 이에 대해 재미 동포들이 반대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1996년 미국 유학 당시 이 문제에 관한 논문을 현지 학술지에

발표한 바 있는 성기완 교수의 기고문을 싣는다.

 

 


1996년 미국의 예비교사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로 알려진 웟킨스의 와 최숙렬의

(원제는 ‘불가능한 이별의 해’)이란

작품을 읽었다.

그런데 이들이 어린 요코와 그 가족에 관한 이 사실적 허구에

매우 감동하고 심지어 아동문학 전문지는

이 작품이 박해받는 유대인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평을 실었다.

 


이런 반응에 당혹스럽던 나는 독일 소녀가 유대인에게

박해받고 유대인들이 가해자로 그려진다면 그들이 어떤 기분일지 반문을 했다. 이런 나의 의견이 신선했던지 담당교수의 권유로

한 동료와 함께 ‘아동문학에서 긍정적 이미지와 흥미로운 인물의 역할’이란 제목의 논문을 에 발표하게 되었다.

 

이제 10년 후에 웟킨스의 작품을 둘러싸고 새삼 논란이 이는 것을 보면서 어린이문학의 정치적 순수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위의 두 책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 여자아이가 전쟁 통에 온갖 곤욕을 겪고 가족과 재회하는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식민시대의 혹독함과 신식민주의의 그늘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본 경험이 없는 서구인들에게

웟킨스의 책은 매우 이국적이며 극적이다.


 

일제시대 수많은 우리 선조의 희생과 고통,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공산주의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 전쟁과 가난으로 이어지는

해방 전후의 혼란은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없다.

작가는 어린 여자아이를 주인공 삼아 잔혹하고 극적인 사건을 나열하면서 거시적 역사를 생략하거나 왜곡하고 독자를 감동시킬 만한 미시적 사실을 일정한 방식으로 전개하면서 전쟁과 평화 또는 인본주의라는 주제로 단세포적 표현의 정치학을 행한 것이다.


 

이 책이 미국에서 교과서로 채택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최숙렬이나 고려 도공의 이야기를 써 아동문학의 최고 권위인 뉴베리 상을 받은 린다 수 박 등 한국계 작가들의 책은 아주 소수만이 채택되고 있다.


다문화교육이란 흐름 속에서 원자폭탄의 피해로 고생하는 일본 사람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에 의해 수용소로 보내졌던 재미 일본인 등에 대한 책들 속에서는 일본인이 수많은 아시아 민족들에게 고통을 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둔갑한다. 서구적 지식과 경험의 패러다임은 여전히 역사적으로 가해자였던 일본을 통해 아시아를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식민 제국주의의 유령은 너무나 먼 대나무 숲에 대한 가상적 욕망의 세계로 변형되어 아직도 우리의 인식과 삶 위에 맴돌면서 자유와 평화, 권리와 책임이 있는 세계로의 도약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각국의 동포 작가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 현지 학술단체의 구성,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우리 역사 바로잡고 알리기 등의

공동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이란 이름으로 문학을 통해 정서를 개발하고 감동할 줄 아는 것도 좋지만, 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정체성이 가해자에 의해 왜곡되는 것도 모르는 채 우리 자신조차도 이런 역설적인 삶의 모순에 얼마나 동조하고 참여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누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가에 대한 다양하고 비판적 접근이 교육에서나 세상 살이에서나 두루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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