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곳을 본다. 어느 하나 눈을 감거나 마주보고 있지 않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각기 다른 모습을 가졌다. 뒷다리가 세 개, 빈약한 녀석, 건장한 녀석, 뛰는 녀석, 앉아 있는 녀석이 있다. 각기 껍데기는 다르다. 그들은 외롭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밖을 쳐다본다. 서로를 보지 않는다. 모든 녀석들이 다른 녀석에게 있을 거라 생각지 않는다. 왜냐하면 포장껍데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는 흰 종이, 누구는 금박지, 누구는 더러운 종이니까, 서로의 공통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누구하나 자신과 같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공통된 무엇을 갈망하며 어딘가를 서로 다른 곳에서 쫓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은 그 무엇인가로부터 점점 멀리, 따로 떼어져 간다. 공통된 것? 그들은 공통된 것을 알려한다. 그들은 모두 공통된 하나를 찾는다. 그들은 서로 각기 다르면서 동일하다. 그들은 그 동일한 것을 느끼나,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모른다. 그저 눈을 뜨고, 포장과 창문(窓)으로만 찾으려고 애쓸 뿐이다. 외롭다……. 눈을 감으면 되는데, 눈을 감으면 되는데 말이다. 귀를 쫑긋 세운 것은 밖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들으려 애쓰는 것이다. 그 무엇은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소리를 낸다. 그것은 오감으로 파악하는 게 아니라, 그저 느낄 뿐이다.
무리가 아니면서 무리이다. 그들은 각기 다르다고 생각하고 서로를 보지 않으므로 무리가 될 수 없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은 동일한 무엇을 갈망하므로 무리이다. 껍데기속의 그 무언가를 그들은 느끼나 항상 잊곤 한다. 봄으로써 알려한다. 그러므로 잊는다. 창을 더 세밀하게 보면 볼수록 다르다. 그들은 귀 옆에 팬을 꽂아놓고 사방에서 팬을 찾으려고 한다. 나도 잘 잊곤 한다. 서로를 느끼려 하지 않고 알려고 한다. 왜 우리는 마주하면 잊는 것일까?
어느 누구하나 같지 않으면서 같다. 너와 나는 다르다. 그러나 다르지 않다. 다를 때는 언제인가? 다르지 않을 때는 언제인가? 다를 때는 힘들지 않았나? 다르지 않을 때, 하나일 때는 기쁘지 않았나? 무리이면서 무리가 아니고, 하나가 아니면서 하나이다. 왜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일까? 무슨 차이가 있기에? 모두 그 이유를 느낀다. 그리고 다시 잊는다.
누구의 생각으로 누구의 말로 생각하는가? 검증된 생각을 원하는가? 내 책에 나의 팬으로 쓰지 않고, KS마크, ISO9001로 인증된 놈으로 쓰면 내 책은 검증되는 것인가? 검증받길 원하는 가? 검증은 누가 할 것인가? 자신 있으면서 자신 없는 세상이다. 모호한 세상이다.
서로를 세밀하게 보면 볼수록, 더 세밀하게 분석 할수록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몰라가는 것이다. 서로 더 가까워지려고 하는 통신기술이 더 발전 할수록,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떨어져 가는 것이다. 이유는 그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욱 더 떨어져가며, 서로를 미워한다.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는 것, 그리고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학문과 예술과 기술의 참된 지향이다. 그것이 없다면,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슬프지 않은가? 비참하지 않은가? 사무치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은가? 이젠, 서로를 느껴야 한다. 우리는 눈을 감아야 한다.
ps- 어쩌면, 느끼지 않고 사는게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쓰면서 괴로왔다. 벗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