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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가족사랑에 관한 수필입니다.^^

이효완 |2007.02.11 19:55
조회 443 |추천 0
 

영원(암흑에서 빛까지)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시면서 노래를 부르신다. 아버지께서는 식탁을 정리하시며 어머니 곁에서 부지런히 돕고 계시다. 우리 가족은 식사시간이 되면 형과 나까지 부지런히 움직인다.

 어려움 속에서의 기적은 마치 암흑에서 빛을 찾아내는 것처럼, 더욱 더 환해져 우리들 마음속에 평화와 희망을 되찾아 준다. 우리 가정은 2006년 초가을 무렵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형은 어릴 때부터(아마도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일 것이다) 매일 어머니께서 주무실 무렵이면 안마하는 것이 일과였다. 어머니께서는 형의 안마로 비로소 잠을 드시곤 하셨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내가 어머니께 안마를 해 드리고 싶었다. 내가 비록 베테랑인 형처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피곤함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어디부터 어떻게 해 드려야 할지 좀 막막하긴 했지만, 어머니를 향한 나의 마음을 담아 곳곳마다 정성껏 눌렀다. 침묵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안마를 한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어머니께서 갑자기 입을 여셨다.

"밤이 무섭다. 나의 이 고통은 언제나 끝마쳐질까?"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난 그 순간 뭐라고 말씀 드려야 할지 몰랐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말을 잃었다.

무려 십 수 년간 괴롭혀온 병으로 어머니께서도 이젠 고통의 한계에 다다르셨나 보다. 연일 고열로 밤을 지새우시는 나의 어머니...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는 병원, 한약방을 전전하셨지만 그 때마다 일시적인 처치였을 뿐, 여전히 고열로 고생해 오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필름처럼 스쳐가 난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려는 눈물을 꾹꾹 참았다. 차마 어머니께 나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아파 드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어머니께서 왜 이렇게 오랫동안 편찮으셔야만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침에 어머니께서 잠을 깨우시는 소리에도 이불에서 쉽게 나오질 못했다. 밀려오는 잠에서 겨우 벗어나 학교로 향했다. 하루 내내 기분이 울적하였다. 파란 하늘이 시커먼 구름으로 가득 차고, 비가 내려 습기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하였다. 왠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 같고, 집에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는 건 아닌지 좀 두려움이 일기도 하였다.

오늘따라 학교 가는 발걸음마저도 천근만근이었다. 난 최대한 편안하게 마음먹으려고 노력했다.

그 날 방과 후 집에 돌아와, 공부하고 있는 형의 방으로 들어갔다. 형이랑 이야기 하는 도중, 어머니의 병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가족원 중에 누구라도 한 명의 존재가 없어진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야. 이제 더 이상 그 존재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어” 난 형의 의미심장한 말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저녁이 되었지만, 오늘따라 아버지께서는 중요한 회의로 인해 저녁식사를 같이 못한다고 하셨다. 결국 우리 셋이서 침묵의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의 식사만큼 조용한 날은 없었던 것 같다.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후, 항상 해왔던 대로 우리는 가정예배를 드리기 위해 거실에 모였다. 나는 평소대로 한 곡을 기타 줄을 뜯어가며 연주와 함께 찬양을 불렀다. 난 그 노래에 흠뻑 빠져있었고,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더 전율을 느끼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타를 쳤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그때였다. 어머니께서는 첫 구절에서 더 이상 노래를 하지 못하시고 급기야는 흐느껴 우시기까지 하셨다. 형은 어머니를 안타까이 바라보면서, "어머니, 병원에서 어떻게 결과가 나왔기에 말씀을 못하세요?" 나는 곧 우리 가족에게 닥쳐올 위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 일지에 대해서 상상은 잘 가지 않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와서 그 노래를 더욱 크게 불렀다. 어머니는 그러는 나 때문에 더 슬프게 우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형은 오랜 기간의 병이셨기에 오늘도 여느 때처럼 눈물을 흘리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곡을 마무리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

-'내 이름 아시죠.' 노래의 가사

예배를 마치고 형과 나는 각자 방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는데, 퇴근하신 아버지께서 돌아오셨다. 난 잠시 공부를 뒤로 한 채 개켜놓은 이불 위에서 눈을 붙였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아버지께서 우리 형제를 조용히 부르셨다. 아버지는 심란한 마음을 한 숨으로 내 보내시고 우리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얘들아, 이제 너희들도 엄마의 병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불렀다." 나는 마음이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랬다. 예민하셨던 어머니는 막내로 태어났지만 결혼해 장남며느리로써 주위로부터 오는 압박에 신혼 초부터 많이 힘들어 하셨고, 형과 나를 키우시면서 스트레스의 누적으로 인하여 결국 일종의‘화병’이라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리신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고열로 너무나 추워 무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탕 속에 들어가 계셔야 견뎌낼 수 있을 만큼 힘이 드셨단다.

열이 더 기승을 부리는 밤은 어머니께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고, 혼자 그 고통을 견뎌야 하는 밤에 온갖 고독과 공포를 다 겪으셨단다. 그래도 매일 가족들을 위해 아침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준비하셨고, 우리들의 필요에 부응하시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셨다.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은 어머니의 병이 심각해지셨을 때부터였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형제가 자기들의 삶에 대해 잘 깨닫지 못하는 것에 대해 크게 걱정하셨다. 아버지의 심각한 말씀을 듣고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해 보였다. 나는 어머니께 해 드린 것도 없이 이렇게 어머니를 잃게 될는지 막막한 두려움만 가득했다. 그 날 밤 어머니의 심각한 상태(검사결과에 의하면 계속된 고열로 간이 극도로 나빠졌고, 혈소판, 적혈구 수치도 최하로 떨어진 상태에다 빈혈도 무척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담당의사께서 더욱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모두가 짧은 시간 안에 급속히 나빠진 결과라는 것이었다.)에 대해 들으시고 급히 달려오신 친할머니께서는 다음 날부터 특별새벽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셨다. 이때부터 우리 가정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나는 피곤함을 뒤로 한 채, 일어나 무조건 기타를 들고는 CCM 1곡을 골랐다. 이른 아침이었기에 기타 줄을 튕기며, 나의 모든 감정을 이 곡 에 담아 감미롭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내가 부르고자 한 곡은 평소에는 부르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날따라 그 곡을 부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난 첫 구절에서부터 눈시울이 붉어졌다.

Great is the Lord and most worthy of praise,

The city of our God, the holy place,

The joy of the whole earth.

And Lord we want to lift Your Name on high,

And Lord we want to thank you for the works you've done in our lives.

And Lord we trust in your unfailing love;

For You alone are God eternal, Throughout earth and heaven above.

-Great Is The Lord

<제목만 해석해 보면 '주 여호와는 광대 하시도다.' 라는 노래로서,

하나님을 드높이는 찬양이다.>

난 찬양을 부르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노래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난 너무 마음이 아파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왜요! 하나님, 도대체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요? 주님, 주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이겨낼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다시 입을 열었다. "주님, 겸손히 주님 발아래 무릎을 꿇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기에 오늘 하루가 많이 힘들지라도, 그 속에서 빛을 볼 수 있게 도와주세요." 마음 깊은 곳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난 흐르다 만 눈물을 닦고 소파에 앉아계신 어머니를 뵙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힘들게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어머니께 오늘 아침 금식을 한다고 선언했다. 어머니께서는 하지 말라고, 학교에서 힘들 거라고 하셨지만, 어머니는 나의 고집을 꺾지 못하셨다. 나는 금식이 많이 힘들 거라는 것은 알지만, 우리 마음의 지주이신 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신다는 상황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기에, 배고픔이 오히려 견디기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함께 책가방을 메고 집 밖으로 나왔다. 나는 아버지께 차마 눈물을 보이기가 싫어 꾹꾹 참아냈다. 갑자기 아버지가 불쌍해 보였다. 아버지의 어깨가 오늘은 한 층 더 무거워 보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파트 밖으로 나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난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아침 학교 가는 길에서 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굳게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예상했던 대로 힘들었다.

 배가 고팠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야만 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어머니의 병이 치유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다 잘 해결될 것만 같았다. 난 배고픔을 느낄 때마다 간절히 기도했다.

모든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아직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약간의 희망은 가져도 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신 뒤로 우리가족은 점점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 갔다. 매일 저녁 식사 후 어머니를 위해 한 명씩 돌아가며 기도를 했다.

전날 밤 일찍 잠이 들었던 어느 날, 새벽 4시경, 나는 통곡소리를 들었다. 이 새벽에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소리를 꽥꽥 지르나 하고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그럴수록 더 크게 들렸다. 정신을 가다듬고 그 통곡의 주체가 누구인지 하고 다시 들어보니, 그것은 할머니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어머니께 기적을 보여주시라고 기도하고 계신 것이었다.

 나는 순간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소원했던 기적이 내 사랑하는 어머니께 일어났던 것이었다. 이게 무려 몇 년 만인가? 드디어 치료되었다는 사실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나는 피로한 몸을 위해 좀 더 눈을 붙였다. 아침 식사시간이 될 무렵 이불 밖으로 기분 좋게 빠져 나왔다. 어머니를 뵈니, 어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번져 보였다.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런데 좀 실감이 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편찮으셨던 병이었기에 1주일이라는 단 기간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 잘 믿기지가 않았지만, 나는 사실 그 자체를 믿으려고 노력했다.

다음날 다시 대전으로 돌아가셔야 했던 친할머니를 위해 토요일 저녁, 우리는 작은 송별예배를 마련했다. 나는 기쁨에 넘쳐 기타반주를 했다. 생일축하노래를 송별 분위기에 맞춰 改詞하여 할머니께 불러드렸다. 할머니께서는 무척 기뻐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께서는 그 날 이후로, 늘 감사와 찬양이 가득 찬 삶을 살아가고 계신다. 무엇보다 우리 가정의 행복은 온 가족의 하나 된 사랑으로 빚어진 것이라 생각하니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다. 마치 매미의 애벌레가 땅 속에서 17년 동안 암흑의 고통 속에 있다가 세상에 나오면서 시원하게 울어 재치는 기쁨을 온 누리 사람들과 누리듯 어머니의 고통 후의 기쁨은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과 평안을 주었다.

현재 어머니께서는 서울시 교육청에서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발탁된 청소년 상담사교육을 받고 계신다. 청소년 상담 자원봉사를 하시기 위해서이다. 아침 일찍이 나가시어 오후까지 계속되는 교육을 기쁨으로 받고 계심은 연세가 더 드시기 전에 내 또래나 어린 학생들에게 자존심을 심어주고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우시기 위해 감내하시는 것 같다.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크게 깨달은 요즘 우리 가족의 풍경은 가족 간의 대화가 더욱 많아졌고, 공부에 치중하기보다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도 더욱 커져가며, 가정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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