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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김언수

서일권 |2007.02.12 21:52
조회 27 |추천 2


 

나무를 통째로 씹어먹는 코끼리의 힘과

꼬랑지를 계속 물어 코뿔소를 쓰러뜨리는

하이에나의 집요함과

늪속에서 육 개월 굶주리는 악어의 기다림과

천 마리 암컷들을 거느린 물개의 정력이

세계의 어둠을 밝히려는 그대의 열정과 함께하기를!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시절은 없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다면 나느 지금 살아 있지도 않을 거예요.

우리는 행복한 기억으로 살죠.

하지만 우리는 불행한 기억으로도 살아요.

 

 

어쩌면 이 도시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정말 통조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돈과 깡통따개와 유통기한을 확인할 작은 관심만 있으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비슷비슷하며,

또 안전하고 맛있는 사랑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인간은 세상의 거울이라고 배웠다.

 

 

불행은 결코 할부로 오지 않아.

불행은 반드시 일시불로 오지.

그래서 항상 처리하기가 곤란한 거야.

 

규칙상 식물원에는 식물들만 동물원에는 동물들만 입장하게 되어 있답니다. 얼마 전에는 나무늘보가 자신이 나무인 줄

알고 식물원에 입장했다가 쫓겨나기도 했죠.

경비가 이렇게 호통을 쳤죠.

이 멍청아. 정신을 차려. 너는 '나무'가 아니라 '늘보'란 말이야. 하고요.

 

 

"외롭다고 느끼는 편이예요"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시고요?"

 

"아뇨, 저는 사실 그 반대 입장입니다."

 

"반대 입장이라뇨?"

 

"우리는 사실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별 도리가 없는 겁니다. 그건 이런 말이죠.

 당신 외로운 것 알아. 당신도 나만큼 외롭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래서 우리는 외로워지는 거죠. 결국 같은 말이지만."

 

 

아빠는 날마다 거대한 불행을 제작하지.

하지만 아빠가 지구 반대편에서 터질 불행을

제작하지 않는다면 그 불행은 우리집 응접실이나

너의 예금통장 같은 데서 터지겠지.

 

형식의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었던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곰탕 뚝배기에 냉면을 담아오면 그것은 냉면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 만들어진 곰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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