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살아야,
불쑥불쑥 들이닥치는 생의 불가사의에 대해
의연하게 찡긋 윙크해 줄 수 있을까?
<달콤한 나의 도시> 는 결코 달콤하지 않다.
마치 99% 카카오처럼 <초콜렛>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가지게 되었던 어느 정도의 기대심리가 배반당한다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달콤하지 않다고 해서 재미없다는 단어와 등치시키지 말아주길. 이 소설의 카카오는 시종일관 72%정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철저히 은수의 시점에서 쓰여지긴 했으나 이 소설의 모든 등장인물들 -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 이 가지고 있는 리얼함은 소설 전반에 걸쳐 생생한 활력과 생명력을 끊임없이 불어넣으며 시종일관 빠르고 경쾌하고 신나게 진행된다.
이 소설은 2006년 한국의 서울이라는 도시에 사는 서른 두 살 노처녀 은수가 일곱살 연하인 영화감독 지망생 태오와 건실하고 평범한 중소기업 사장인 영수, 그리고 백수로 빈둥거리며 지내는 동갑내기 유준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벌어지는 헤프닝을 다룬 뻔한 해피엔딩의 헐리우드식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한국사회의 바보스러운 단체 스케줄표로 보았을 때 엄연히 결혼했어야만 하는 30대 초반의 직장여성, 은수가 가지고 있는 결혼낙오자의 공포가 유발시킨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인 연애들에 대한 자조적이고 씁쓰름하지만 달콤하고자 눈물겹게 애쓰는 일기들이다.
객관적이고 가차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30대 여성 오은수는 어떤 모습일까.
가진것 - 입가의 팔자주름, 알량한 통장 잔고, 깔고 앉은 원룸전세금, 반 의절상태인 부모, '한심하게 살기 대회' 대표선수같은 친구들,
사랑에 관한 몇가지 실속없는 추억들.
못가진 것 - 남편, 아이, 직장.
겨우 세가지가 부족할 뿐인데, 왜 이렇게 처참한지 모를 일이었다.
결혼에 목말라있는 은수 -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녀가 결혼에 그토록 안달하는 이유는 바로 그 '객관적이고 가차없는 시선' 에 대한 두려움때문인 것이다.
그녀가 진심으로 원했던 건 사랑 자체에 대한 핑크빛 갈망이나 결혼이라는 어떤 울타리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즉 낙오자의 빨간 도장을 하루라도 빨리 지워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결혼제도라는 것에 대한 회의를 주변 친구, 혹은 가족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너는 결혼해야 해'라는 집단 무의식으로부터 결코 헤어나오지 못한다.
정말 나를 걱정한 거였어요?
걱정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싫었던 게 아니고?
그런 그녀가 태오를 진정으로 사랑했을까? 그녀는 태오와 관계를 맺었기에 사랑하는 것인지, 사랑해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인지, 외로움을 채워주는 만만한 대상으로써 그를 잡고있는 것인지, 사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인식조차 하고 싶어 하지 않은 채 그를 쉽게 놓아버리며 이내 주파수를 다른 목표물로 돌려버린다. '걱정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싫다' 라는 것에 그녀가 부인할 수 없었던 건 그녀 스스로도 그에 대한 감정이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사실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야 하겠지.
삶을 이대로 멈추게 할 용기는 없으므로.
영수에게 청혼을 하고 그것이 실패하자 마티즈를 몰고 촬영장에 태오를 찾아가며, 사표를 낸 후 얼떨결에 오은수편집회사의 대표가 되는 은수. 결말에 다다르면서 벌어지는 이 일련의 사건들 모두 사회의 시선에 저항할 용기없이 꺼져가던 은수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건 우유부단했던 은수가 조그맣게 주먹을 불끈 쥐고 만들어 낸 가상한 행동이라기 보다는, 사실 갈 곳 없이 코너에 몰린 그녀가 내린 최소한의 자기방어적 선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예정대로 영수와 결혼하게 되었다면 과연 그녀는 빨강색 중고 마티즈를 사거나 태오를 찾아갔을까? 약혼자의 생사유무를 확인하러 부산에 가는 KTX 왕복 열차표 9만원조차 계산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속물근성을 가진 그녀가 무엇때문에 자신의 돈으로 아무런 과시도 될 수 없는 중고 마티즈를 살 것인며, 미래의 삶에 '누'가 될지도 모르는 과거의 동거남을 굳이 찾아갈 것인가.
태오를 찾아가는 그녀는, 마티즈때문이 아니라 그를 찾아가는 이유 - 이제 아무도 주위에 없으니까 너라도 보고싶다 - 때문에 초라하다.
사표를 낸 것 또한 그녀의 자발적 의지가 얼마만한 순도로 들어가 있는 것일까? 오타사건으로 인해 감봉처분 받은 후 지각과 무단결근이라는 일련의 사건들이 없었다면 그녀는 결코 회사를 그만둘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더 재밌는 것은 인쇄소의 직원의 인사성 멘트를 즉흥적으로 현실화시킨 그녀의 무책임하지만 밉지않은 엉뚱함이다. 그 엉뚱함의 결과물을 마치 '난 이제 더이상 쳇바퀴를 굴리며 살지 않고 나만의 꿈을 위해 살꺼야! 이게 그 증거야! ' 라고 쿨~한 척 위장하는 것 또한 지극히 그녀답다.
그런 까닭에, 심장을 뛰게 하지는 않지만 도장을 지우기에 충분하다는 이유로 영수에게 청혼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소심한 그녀가 보인 가장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하고 싶다. 비록 너무나 절박한 심정이 준 것이긴 하지만 스스로 만든 명분 - 그 명분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은 차치하고라도 - 을 위해 그녀를 묶고 있었던 어떤 고정관념의 끈 중의 하나를 잘라버린 것은 그녀의 다른 어떠한 행동들보다도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맵고 달콤하고 뜨겁고 말캉한 떡을
묵묵히 씹어 삼키고 있는 나의 심장은
1초에 한번씩 진지하게 뛰고 있다.
이 책이 너무나 좋았던 건 그런 한심한 은수라는 캐릭터가 아니다.
너무나도 매력이 떨어지는 지극히 평범한 그녀지만 그런 은수스러움, 혹은 은수의 모습 일부를 2006년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서글프면서도 통쾌하고 화나면서도 웃으며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은수뿐 아니라 유희, 재인, 태오, 영수, 유준, 은수엄마, 그 모든 캐릭터들이 너무나 리얼하게 우리 현실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의 한심한 모습들이 실은 우리라는 것. 그걸 인정하자고 윙크하듯 따뜻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작가의 솔직함과 유쾌함에 응수의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맞춤식 결혼제도에 대한 헛된 환상, 제도의 틀에 맞춰있지 않은 인간에 대한 냉정한 시선의 부당함, 진심이 담긴 교감에 대한 타는 목마름...
그러한 생각과 가치들에 대해 작가는 결코 '강요'하듯 말하지 않고 각각의 인물들을 통해 부드럽게 속삭인다.
'맵고 달콤하고 뜨겁고 말캉한 떡'과 같은 현실이지만
우리 모두 묵묵히 씹어 삼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비릿한 '서울'의 맛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야하는 것이다.
삶을 이대로 멈추게 할 용기는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