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영웅과 한 인간, 그 사이에서....

지유석 |2007.02.19 21:40
조회 28 |추천 0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의 어조는 무척이나 무뚝뚝하다. 이야기를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냉소 가득한 어조로 조롱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답답할 이 만치 덤덤하게 풀어 나간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 속엔 구수하면서도 진한 사람 내음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연민이 서려 있다.

그는 2004년作 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냈으면서도 지난 날 끔찍한 과거로 인해 비틀린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세 친구의 아픔을 들여다본다. 그에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겨준 2005년作 에서는 오로지 '빌어먹을(God Damn) 놈의' 복싱에 모든 삶을 바쳤지만 일순간에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식당 여종업원 메기에게 다가가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위로해 준다.

그는 깊게 패인, 하지만 연민 가득한 눈길을 모두가 전쟁 영웅으로 떠받들었지만 정작 자신들은 영웅 대접 받는 일을 괴로워했던 세 병사들에게로 돌린다. -

, , 등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전작들과는 달리 이 작품 은 상당히 큰 스케일을 자랑한다. 사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스케일이 큰 작품 보다는 작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풀어 나가는데 남다른 소질을 보였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무대는 이오지마 섬에서 미국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 텍사스의 어느 이름 없는 시골마을을 종횡무진 넘나든다. 특히나 美 해병대의 이오지마 상륙작전을 그린 장면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를 방불케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민 어린 시선은 영화 곳곳에 진하게 묻어 있다. AP 통신 소속 종군기자 조 로젠탈이 美 해병대원들이 이오지마의 수라바치산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찍어 본국에 타전한 사진 한 장 - 이 사진 한 장은 미국 여론의 흐름을 뒤바꾸어 놓는다.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전쟁에 지쳐가던 미국인들에게 조 로젠탈의 사진 한 장은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여론의 흐름이 행여 전쟁수행에 불리하게 돌아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미국 정부에게 로젠탈의 사진은 그야말로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이 사진 한 장에 힘입어 미국 정부는 보다 자신 있게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됐고 더욱 중요하게는 미국 국민들에게로부터 전쟁을 수행하는데 소요되는 돈을 손쉽게 거둬들일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다. 영화 속 조 로젠탈은 이렇게 회고한다.

"이제 적절한 사진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도 패배로 이끌 수도 있게 됐다네."

 

Now, the right picture can win or lose a war

美 정부와 군 당국은 사진 속 주인공들의 영웅 만들기에 나선다. 대대적인 전채(戰債) 판매 캠페인을 벌여 날로 불어나고 있는 전비를 긁어모으기 위해서다. 얼떨결에 사진 찍혔다가 일약 영웅 대접을 받게 된 세 병사 존 '닥' 브래들리와 아이라, 그리고 레니 개그넌 - 그들은 미국 정부가 연출한 영웅 드라마의 주연 배우로 선택된다. 내심 영웅 만들기에 불편해했던 그들, 그러나 국가를 위한 일에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들이 전장에서 겪은 경험은 그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레니는 하잘것없는 잔심부름이나 하던 전령이었고 위생병이었던 닥은 무슨 변명을 대서라도 그 참혹한 전장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지만 자신의 도움을 간절히 요구하는 전우들을 차마 내버릴 수 없어 괴로워했었다. 특히나 절친했던 동료 이기의 참혹한 죽음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닥을 괴롭힌다. 인디언인 아이라도 빗발치는 일본군의 총탄을 피해 살기 급급했던 나약한 병사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될수록 지난날의 기억은 더더욱 강해져 이들의 마음을 괴롭힌다.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영웅과는 거리가 먼, 그저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한 세 병사들을 영웅으로 포장해 전채(戰債) 팔기에 급급한 정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 병사들이 하루라도 빨리 지긋지긋한 전쟁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값싼 영웅주의에 편승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아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발길 닿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지만 마음은 여전히 전장인 이오지마와 돌아올 수 없는 전우들과 함께 머무르고 있는 세 병사들의 고뇌, 그리고 순탄치 못했던 전쟁 이후의 삶을 묵묵히 응시한다. 그러면서 보는 이들에게 존, 아이라, 레니 세 병사를 특별한 존재가 아닌 그냥 평범했던 한 사람들로 기억해줄 것을 나지막한, 그러면서도 강한 어조로 호소한다.

영화 초입, 노신사가 된 존 닥 브래들리는 지난날을 이렇게 회고한다.

"사람들은 간단명료한 것들을 좋아하지. 선과 악, 영웅과 악당....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야."

 

We like thing nice and simple, good and evil, heroes and villains.... Most of the time, they are not who we think they are.

그리고 임종이 임박하자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아버지의 지난날을 더듬어가던 아들은 아버지의 인생에 헌사를 바친다.

"이들은 조국을 위해 싸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전우를 위해, 사선에 선 이들을 위해, 자신의 곁에 있는 이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우리가 그들을 진심으로 기리고자 한다면, 아버지가 기억했던 방식대로, 그들이 진정 누구였는지를 기억해야할 것이다."


They may have fought for their country, but they died for their friends, for the man in front, for the man beside them. And if we wish to truly honor these men, we should remember them the way they really were, the way my dad remembered them.

존 닥 브래들리의 아들을 통해 흘러나오는 독백 속엔 영웅이기보다 한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세 병사들을 향한 연민이 고스란히 스며져 있다. 평범한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 -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상처 입은 영혼의 수호성인으로 칭송 받아 마땅한 이유이기도 하다. ♠

뱀발. 사진이 영화에 영감을 불어 넣어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로버트 카파가 타전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을 보며 의 오프닝 신을 구상했으며 올리버 스톤의 은 베트남戰 종군기자 래리 버로우즈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 작품 은 위의 두 작품과는 달리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진 속에 숨겨진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