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주제 - 여성, 정신분석, 광고, 자아에 이르기까지- 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멋진 소설. 오랜만에 숨도쉬지않고(!) 읽었다. 세진이는 나와 많이 닮았다 - 그래서 더 몰입할 수 있었는지도.
이 책을 처음 접했던건 나의 대학 첫학기 여성과 문학 수업에서였다. 그런데 맨 마지막 시간에 다루는 바람에(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시간 출석을 안부르겠어요 라고 친절히 공지까지 해주시는 바람에...) 못 읽고 넘어갔던 것이 지금에야 이렇게 펼쳐보게 되었다. 그래도 잊을만하면 어딘가에서 내 눈에 끈질기게 띄여 읽어야지 하고 각성하게 되었던걸 보면 운명같은책일지도??
( 혼자 생각하고 좋아하고있다)
덧붙여 하나만 더 언급하자면, 책의 제목은 프로이트의 논문 중 하나에서 따온 듯 하다(제목을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논문이 마침 소재하고 있는 책에 있어 찾아보았는데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이라는 제목은 찾을 수가 없었다. 네이버에는 분명히 이 책이라고 했는데...여차저차해서 문제의 논문을 발견! 그런데 그 제목은 독어로 < U"ber einen besonderen Typus der Objektwahl beim Manne - Beitra"ge Psychologie des Liebeslebens 1 >. 직역하자면 " 사랑의 심리 중 - 남자의 경우 대상의 특별한 타입에 대하여 " , 본인의 책의 한글 제목은 "남자들의 대상선택 중 특이한 한 유형" 이었다. 생각하건대 이 제목의 예전 번역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이었고 ( 이전 교정쇄에는 이렇게 나와 있는걸로 확인되니까) , 다시말하면 ' 남자의 경우 ' 라는 한정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씁쓸한 일). 즉 작가가 제목을 따온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라는 논문의 내용은 오로지 남성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 면에서 여성의 시각에서 그들의 입장을 묵묵히 펼쳐나가는 이 소설의 제목은 아이러니컬하다. 김형경 작가님은 이걸 알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정말 의미심장한 제목이다.
인혜는 그것이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오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대화가 통하는 여자를 만났으면 한다는 것, 그 소망에는 여성이 대체로 무지하다는 편견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 그럼에도 여성과 진지한 토론을 하거나 논쟁이 붙게 되면, 여자가 귀찮게...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
이마를 탁 친다.
"세상에는 혼자서 하는 일, 둘이서 하는 일, 타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 그런 것들이 다 다릅니다."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 무언가를 부탁하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말을 하려면 벌써부터 혀가 굳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주 친근하고 허물없는 관게라야만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나의 구분에 하나가 더 늘었다. 혼자서 하는 일, 둘이서 하는 일, 그리고 타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 굳이 이것을 목록리스트에 옮겨둔 이유는 작가에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세진만큼 힘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쨌든 나도 마찬가지, 도움을 청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줘요.
"박세진 씨는 어때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쪽이세요, 절을 깨부수는 쪽이세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싫으면서도 그냥저냥 웅크리고 있는 쪽이세요?"
"중이 떠나는 쪽요."
"떠나서 멀리 가요, 그근처에서 서성여요?"
"멀리 가죠. 되도록 멀리."
"그리고 그 절을 잊어버려요, 아니면 가슴속에 원한을 품고 있어요?"
"잊어버리죠. 한두가지, 가슴에 품어놓은 것은 빼고요."
처음엔 내가 절을 부수는 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나 역시 떠나는 쪽일지도.. 맺고 끊음이 존재하기에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서성이지 않는다.품은 것은 恨이 아닌, 얼려서 그냥 그 상태로 보존되는 무언가의 느낌이야.
"혹시,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만 받아들이려는 태도,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의 전모가 총체적인 모습을 먼저 파악하려는 태도도 일종의 방어 의식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렇대.
세진은 그것을 의식의 진공상태라 불렀다. 신호 정지선에 서서 빨간 신호등을 보고 있는 장면과, 사고를 내고 네거리 한가운데 멈춰 선 장면 사이에는 시간과 공간 감각도, 심리적인 인과 관계도, 행동의 연결 동작도 감지할 수 없다고 했다. 있는 것이라곤 의식의 관전한 공백뿐이라고 했다. 서로 관련없는 두 장면을 이어붙인 영화 필름처럼이라고 세진은 말했다.
나 요즘 매우 그렇다! 문자를 확인한 후 답문을 보내야겠다 라고 인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가끔은 한시간까지도 걸린다 (결코 당신들에게 소홀한게 아닙니다 ㅠㅠ) . 며칠 전엔 주차하면서 기어 파킹모드 - 사이드 브레이크 - 시동off 의 단계에서 첫번째 두번째를 생략하고 시동만 껐다가 앞차에 살며시 뽀뽀했다(것도 twice). 이것이 아마 의식의 진공상태인듯. Help me...
내 인간관계라는 것은 상대방이 더 적극적으로 챙기는 관계.
어쩌면 그럴지도.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할수록 내가 그런 것 같아 씁쓸하다. 어렸을 땐 먼저 손을 잘 내밀었던 것 같은데. 진실은 진실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고, 의미보다 형식에 신경쓰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고, 나를 조금조금씩 열어가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필요한 건 동심 그 천진난만함 그리고 믿음.
잊었던 기억을 찾는 것은 정신분석이ㅡ 목적이 아니라 결과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고통을 감당할 힘이 생기면 외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한번도 떠올려본적이 없는, 그리하여 까맣게 잊은 줄 알았던 그 장면들까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가끔 한번도 회상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기억들이 둥실둥실 떠오를 떄가 있다. 그것이 잊었던 기억이라면 나는 거기에 각각 무거운 것을 매달아 놓았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떠오르는 기억들은 내가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나? 짊어지고 살 가치가 있는 것들도 내겐 많은데 계속해서 강해지고 싶진 않은데.
문제는 all or nothing 성향일 수도 있다.
불혹이라니. 결코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더 쉽게 외부의 유혹에 함락당할 수 있는 나약한 시기이기 때문에, 경계하는 의미에서 붙인 명칭임에 틀림없었다. 세상에 누가 결핍과 욕망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영원히.
요즘 나는 그냥 나의 욕망을 인정하고 욕망하며 사는 것이 즐겁다. 생각해보면 욕망하는 것이 무슨 죄란말인가! 난 차라리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겠다. Lead me, a street car named desire.
분노가 표현되어야만 사랑도 표현되는 거야.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도 하지 않아.
양면성양면성양면성. 음 이제 알거 같아요
융은 건강한 사람은 자기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연기하는 것이 곧 자기라고 믿는다고 기술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중년기 무렵에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거짓된 삶을 살았음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한 성격이 목표로 하는 것은 페르소나를 축소시키고 나머지 성격을 개발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 물론 모든 역할이 다 속임수이다.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건강한 사람은 타인을 속이는 데 반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는 점이다.'
나는 훌륭한 연기자이다. 따라서 나는 매우 건강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꼈을 때, 내가 가장 알수 없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자아가 보이지 않으니 세상이 보이지 않았고, 세상이 보이지 않으니 미래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느꼈던 낭떠러지란 바로 자아가 보이지 않는 지점이었다.
나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사실 인생의 의미가 아닌가?-어쨌든 난 신앙이 없으므로 - 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정말 100%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또 바라지도 않지만... 충동적인 내가 좋다), 그 과정이 무수한 선택의 과정이고 드로잉된 자아에 한꺼풀씩 색깔을 입히는 행위일거다.
나는 지금 무지개색 정도는 되어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