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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청춘을 짓밟은 금호아시아나

김현우 |2007.02.23 12:00
조회 242 |추천 0

이것은 제 동생이야깁니다.

작년에 금호타이어에 입사한 제 동생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퇴사조치 되었습니다. 동생이 하늘나라로 간 바로 그날...

거의 매일 야근을 하며 주5일제는 처음 입사한 그 주 단 한번지켜졌고 월말엔 항상 밤샘을 하며 몸바쳐 금호타이어에 일했지요.

동생이 하늘나라로 간 그때도 새로 지역장이 부임하면서 20일동안 18일은 야근을 하고 이틀 달아서 밤샘을 하며 설 선물을 배달하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사망하였습니다.

저희는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났으리라 추측하지만 잠들어 있는 동생은 말이 없습니다

빈소로 찾아온 금호에서는 슬퍼하고 있는 유가족에게 동생이 졸음운전으로 과실이나서 사망했으니 산재는 될지안될지 모르겠다는 말도안되는 소리를 하며 장례비용을 위로금으로 주겠다고하더군요

처음엔 무슨소린지 이해조차 되지않았습니다

버스타고 가던 학생이 죽어도 2억이 배상된다던데 아름다운 기업 금호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3일동안 끊임없이 저희를 괴롭히며 자동차 보험에서 지급되는 3천만원까지 합하여1억이 안되는 돈을 위로금으로 주겠다더군요

자동차보험은 동생이 직접 넣은 돈인데....

게다가 퇴근하고 집에가다가 사고가 나도 산재처리가 된다는데 동생은 일하다고 오후 2시경에 사고가 났었거든요

지금 저희는 회사에서 협상을 해주지않아 장례도 치르지 못한채 차디찬 곳에 동생은 홀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쓰러지셨고 아버지는 백방으로 뛰어다니시고 있습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아름다운 기업 금호 아시아나광고가 나올때마다 서울본사로 올라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힘없는 저를 만나 주지도 않을 것이고 게다가 몸져 누우신 엄마때문에...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희에게 힘을 주세요 

 

아래의 진정서는 대통령께 보내는 우리 아버지의 피맺힌 호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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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서

                애비의 한 서린 호소문                            

   저는 경남 김해시 지내동에 거주하는 엄영규 목사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가정의 대를 이을 자식이요, 저희 부부의 유일한 희망인 아들을 잃음에 대한 피맺힌 한을 어찌할 줄을 몰라 피눈물 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의 나이는 올해 만 58세(1948년 5월29일생)입니다.

  저희 가정은 저의 조부이신 고 엄주신 장로(교회의 직분)가 1919년 3월 1일 3 ? 1절에 경남 함안군 칠원면 만세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 감옥에서 10개월의 옥고를 치룬 독립유공자의 가정이요, 항상 매일의 새벽기도와 각종 예배 때마다 나라와 민족과 현 정부와 주권자인 노무현대통령과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두 딸과 한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 정원이는 2006년 2월 27일 (주)금호타이어에 입사하여 부산지사에서 근무하다가

동년 8월 20일경 상부의 명령으로 마산지점에 발령을 받아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주5일제는 기대할 수 없었고, 월차는 사실상 사용할 수가 없었으며 매일 과중한 업무에 겨우 4-5시간 자고 아침 7시가 안되어 출근을 하였습니다. 출퇴근이 힘들어 12월말경부터 마산지점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본사의 시스템이 바뀜으로 인해 2007년 부터는 거의 매일 새벽이 되어서야 일을 마쳤습니다. 

  교통사고가 있었던 2007년 2월13일도 그 전날인 10일(토)과 11일(일)의 이틀을 밤샘근무를 하고 12일(월) 오전에 잠깐 휴식을 취한후 오후부터 근무하여 그날도 늦게까지 근무를 하고 집에 와서 잠을 자고 13일 아침 7시에 출근하여 동일 오전에는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오후에 아들이 관리하는 대리점들에 설 선물을 전하는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2월13일 오후 2시40분경 숨을 거두었습니다.

  병원에 있던 아들의 시신을 앰뷸런스에 싣고 돌아오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를 할 수가 있을까요?

  죽은 아들의 시신을 앰뷸런스에 싣고 김해 전문장례예식장으로 오는 길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 하나님의 아들을 슬퍼하듯 하늘도 비를 내렸습니다.

그 날(13일부터) 아들의 근무지 동료직원들과 상사 몇 분이 함께 빈소를 지켰는데 처음에는 이 사실도 좋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동료들이 찾아와서 통곡을 하면 상사가 불러내어서 데리고 나가면 그 뒤에는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상가의 사람들과 접촉을 두려워하여서 계획적으로 이들(지점의 상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협상을 제의해 왔습니다.

  14일(수) 저녁이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 어이없이 협박당하고 속임을 당하며 무시당했던 회사측과의 협상이 아들이 차갑게 식은 다음 날 2월 14일에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영업부서의 부산경남 지역장(김상엽)은 어이없게도 금호아시아나에는 사망사고로 인한 보상 및 상조에 관한 내규가 없으며, 또한 생산직과 달리 영업직에는 이러한 선례 자체가 없었기에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하는지 알지 못해 당황스럽고 죄송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유가족측에서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자식을 잃고 슬픔에 빠져있는 유가족에게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라니요? 무성의한 태도에 저희는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회사측의 부당하고 과중한 업무에 대한 인정 및 이해를 우선 요구했지만 회사측에서는 정식적인 퇴근 이후에 영업사원들 자기 스스로가 일을 하는데 대해서 말릴 수가 없으며 (실제로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정상업무시간외에는 할 일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이아닌 전혀 다른 일들의 처리를 위해 남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과로에 대한 개인적인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며 회사의 책임이라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그래서 결국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유가족측은 얼마의 액수를 원하는 지만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가진 자 앞에서 이용당할 수 밖에 없는 약육강식의 사회를 다시금 느끼면서 지인들에게 묻고 물어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아들의 죽음을 금액으로 환산하기에 이르렀고 우리는 회사측에게 5억 4천만원(호프만식)을 요구하였습니다. 회사측은 냉소적인 미소를 입가에 흘리며, 서울에서 인사팀 부장이 와서 보상문제에 대해 회사측의 입장을 밝히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르고 약속되었던 인사팀 부장(박상록)과의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인사팀 부장의 온화한 모습과 부드러운 인상 뒤에 그렇게도 차디차고 배신감을 느끼게 할 비열함이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 아드님이 중앙선을 침범한 엄연한 자기 과실의 교통사고 인 것을 유가족들은 인정하시겠습니까? 그것이 인정되지 않으면 다음으로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인정하시겠습니까?”


 그랬습니다. 이것은 유가족을 우롱하는 발언이요 아들의 죽음을 처참히 밟고 짓이기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회사의 무리한 업무지시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정확하게 경찰의 조사조차도 끝나지 않은 운전자 과실의 중앙선 침범을 어떻게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지, 이것이 과연 회사가 위로받으러 온 유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인지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에 대한 답은 하지 못한 채, 회사측에서의 가능한 보상 금액을 제시하였는데, 다음과 같았습니다.

‘산재에 해당하는 보상 금액 중, 사망으로 인한 손실액 1억 300만원과 장례비 명목의 970만원을 근로복지 공단에서 보상받을 수 있도록 회사에서 적극 추진하겠다. 또한 그 외에 장례식 절차에 들었던 경비만을 회사에서 위로금으로 지급해 주겠다.’


 지금에 와서야 노무사, 손해사정인, 법무관 등을 통해 백방으로 산재자료들을 수집하여 알게된 일이지만, 당시에는 산재가 무엇인지, 위로금이 무엇인지 무지한 상태에서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면서 산재나 손해보상에 대한 전문변호사에게 정확히 물어보고 회사측의 입장을 제대로 알기를 바란다고 ‘한수 가르쳐주기’까지 하는 듯 하였습니다. 이는 결국 회사에서 직접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내어 놓겠다는 것은 고작 장례식 경비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아들이 힘들게 하루하루 몸 바쳐 일해 온 회사가 유능한 부하직원을 잃어 그렇게도 마음 아파하는 금호라는 대기업이 아니라, 단지 산재보험에 가입된 여느 사업체의 하나 일 뿐이라고 느끼게 하였습니다. 또한 사고 당시, 구정을 맞아 담당하는 영업소 마다 선물 전달 및 영업을 위한 근무 명령을 받고 이동하던 중 발생한 사망사고 이므로 산재처리가 명백하게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경우 산재처리로 인정받기 힘든 상황인데 마치 자신들이 수고하여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생색을 내고 있었으며 이 또한 거기에 대해 잘 몰라 회사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았던 유가족을 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유가족이 단지 산재신청을 받으려고 협상을 했던 겁니까? 보상에 관한 법적 지식이 전혀 없는 우리에게 위로하는 마음으로 편의를 제공하기는커녕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숨기며 우리 유가족들이 하나하나 알아 챌 때마다 ‘생색을 낸다는 둥 그런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라는 변명으로 일관했기에 더더욱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인사팀 부장의 어이없는 태도에 분노한 유가족들은 눈물을 훔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늦게까지 빈소에 남아있던 지점장을 통해서 회사측의 성실한 답변을 기다리겠노라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였던 그날 밤에도 장례식밖에는 비가 내렸던 것 같았습니다...

  서울 본사에서 내려왔다는 법무 팀의 무성의 내지는 차가운 시선을 받은 저희들은 모두 허탈한 심정으로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그들의 언행을 묵묵히 보아오던 저는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억제할 수가 없어서 마산 지사의 지점장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이제는 직접 실무자인 당신과 아들의 애비인 나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보자고 불렀습니다. 말을 하는 가운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는데 아니 이 지점장이 저의 손을 잡고 우는 것이 아닙니까(약간 음주를 한 듯 취기가 오른 상태였습니다).


“아버님, 저가 이 지점에 온지는 불과 20일밖에 되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어디를 가더라도 내 수하의 사원들을 내 자식처럼 여기고 사랑했습니다. 특별히 정원이는 숙소에 함께 기거한 관계로 더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정원이가 유명을 달리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버님은 저에게 과중한 업무와 정상적인 퇴근을 시키지 않았기에 피로가 누적되어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당했다고 하지만 저는 이 지점에 근무한 20일 동안 정상적인 퇴근을 시키지 않았던 것은 불과 이틀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마당에서 저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아버님은 산재를 포함해서 얼마를 드리면 좋겠습니까?”라는 말에 저도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우리 쪽에서 얼마를 이야기 한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서울 팀들이 아무런 말도 없이 올라 간 것을 볼 때 자기들이 생각한 것 보다 액수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요 근자에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가던 청소년들이 교통사고를 인하여 사망을 할 경우 약 2억이 넘는 보상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제시한 금액이 산재를 포함해서 약 1억4천만 원 정도를 준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되지 않는 액수입니다. 정원이는 우리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로서 이제는 우리가문의 대가 끊어졌고 이 아들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부양을 해야 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한 이 아들이 졸업한 김해고등학교에 보상금 일부를 장학금으로 전달해서 아들은 갔으나 가난하게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생활 장학금으로 전달되어  이 학교가 존재하는 그날까지 선배의 숭고한 뜻이 모교에 남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더도 덜도 말고 3억 5천만 원만 주시면 제가 모든 일을 마무리 하겠습니다.”저의 이야기를 들은 지점장은 다시 한 번 저의 손을 꼭 잡고 저가 상부에 이 애틋한 마음을 전달해서 조금 후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나갔는데 밤이 지나도 아침이 와도 그 이후로는 이렇다 할 말이 없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 역시 우리를 한 번 떠 볼려고 했던 계락이며 자기가 20일 동안 재임 시 이틀을 야근을 시켰다는 말도 사실은 18일을 밤샘과 야근을 번갈아 시켰고 불과 이틀을 정상적으로 퇴근하게 한 것을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마산지사, 울산지사, 순천지사, 진주지사의 직원들이 모두 이런 혹사 당한 사실 - 새벽까지 근무한 사실 - 을 서명으로 날인해서 제출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15일 이른 아침, 빈소...

“어제 회의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인사 팀을 통한 회사 입장에 대해서 어떻게 가족들이 상의를 해 보셨습니까? 정원이와 함께 일했던 저희 관할 영업팀 입장으로서는 정원이의 죽음이 너무 안타깝고 법적인 절차를 떠나 좀더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회사측에서 말한 부분에 추가해서 정원이의 연봉에 해당하는 2800만원을 더 지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물론 천만원이 모여서 억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보상이 겨우 그 정도라면 애초에 힘들게 협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지역장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우리는 차디찬 장례식장에 누워있는 아들의 발인을 무기한 연장하기로 하며 어쩌면 투쟁을 시작하기로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슴속에서는 눈물이 아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서울에 계신 아들의 큰아버지는 금호 타이어 사장을 직접 만나기로 하였고 이에 놀란 듯한 지역장의 흥정을 위한 계속되는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저...회사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아까 제시했던 1년 연봉에다가 좀 더 저희가 노력할 수 있다면 1년 반 연봉, 아니면 2년 연봉까지도 중앙에 보고 및 관철시키도록 해야 안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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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인을 위해 빈소에 찾아온 동료직원들 중 금호 뱃지를 달지 않은 십수명은 사표를 쓸 각오를 하고  예배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보기에도 비슷한 또래의 멋진 청년들이었고 마치 아들의 죽음 전 회사에서의 짧은 삶이 힘들게 일하는 자신들의 모습인 양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빈소 한 켠에 앉아있던 상관 몇몇에 의해 퇴장 당하고 그 이후로는 볼 수 없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통해 말하지 못했던 말단 영업사원들 간의 울분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으며, 회사측과 이들 사이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회사의 고급 인력들 이 사실을 알고 고인의 입사 동기생들을 다 흩어 버리고 그들도 아무런 말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이가 없이 눈물로 빈소를 지키고 있을때 고인의 백부(排上者의 형)가 되시는 엄동규 장로(교회직분)님이 내가 서울 본사의 중역  을 만나서 한 번 더 협상을 해야 겠다는 말을 남기고 항공기편으로 상경을 하였습니다.

  2월16일(금) 사망 나흘째가 되었습니다.

  오후 2시 반에 금호의 부사장을 만나기로 했다는 형님(고인의 백부)의 전화를 받고 좋은 소식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젖어 있는 저희들에게 들려온 형님의 음성은 울분에 차 있었습니다. 내용인즉

  1. 산재에서 나오는 보험금은 전과 동(약1억 일천 삼백만원)이었습니다.

  2. 회사에서 위로금으로 주는 금액은 육천만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형님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3천만 원을 더 보태어서 산재를 포함하여 1억9천만을 주겠다는 제의가 들어 왔는데 이 추가 3천만 원이 아들의 자동차 보험에 자손으로 지급될 3천만 원을 회사가 수령해서 그것을 합산해서 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저도 이제는 더 이상 이들에게 자비가 없는 줄로 알고 신앙인이요 목사인 저도 그들과 대항해서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가 어릴 때부터 다니던 부산 부전교회(부산시 진구 부전동 395번지)에는 저의 선친인 고 엄영환 장로님과 함께 장로로서 사역하셨던 고 염동문 장로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아들가운데 저보다 나이가 5년 연상인 염순섭 형님(011-519-1306)이 계십니다. 이 순섭 형님은 부산 상고를 나오셨는데 현 우리나라의 노무현대통령과 동창생으로 대통령선거당시 노사모로서 많은 수고를 하신 분입니다.

  이번 일은 연약한 저로서도 감당할 수가 없고 앞으로 향후 이런 억울한 분들의 본보기가 되며 현재 금호그룹내지는 많은 직장의 젊은이들이 아무런 희망내지는 혜택을 기약할 수 없이 젊음과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황소와 같은 이들에게 하나의 거룩한 사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형님에게 이 피 맺은 한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생아 미안하다.

  저의 이야기를 들은 순섭이 형님은 눈물어린 목소리로 엄목사야 미안하다. 네가 이런 어려운 가운데 있구나! 내가 큰 힘은 되지 못하겠으나 그러나 너의 안타까운 사정을 말로 전하는 것보다 네가 먼저 청와대문을 두드려라 성경에 이름과 같이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리라고 했으니 설이 지나는 대로 청와대로 달려가서 진정서를 내면 그들이 이 진정서를 받고 또 내가 부탁을 하여 정당한 절차에 의해서 청와대가 이런 어려움을 대변하고 해결내지는 도와줄 수 있는 창구(고충처리위원회 등등)내지는 직접 금호 타이어에 협조를 부탁할 줄로 믿는다는 말씀을 듣고 이에 용기를 내어서 청와대 문을 두드리게 된 것입니다.

  아래와 같이 도움을 청합니다.

  1. 자동차 보험에서 지급되는 자손에 해당하는 보상금은 저희가 보험금을 넣었고 계약자도 아들이임으로 유족에게로 지급되는 것이니 위로금에 포함 될 수가 없습니다.

  2. 지금 수없이 발생하는 수련회나 물놀이 기타 등등의 일들로 인하여 버스 안에서 희생되는 중고생들의 보상금도 2억이 넘는 것이 메스컴을 통해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아들은 저희 가문의 대를 이을 만27세의 아들이요, 장래가 촉망되는 나라의 기둥인 이아들이요, 저희들의 생명줄인데 이제 이아들을 잃었으니 우리가 어찌 살아갈 수가 있으며 생계를 이어갈 수가 있습니까?

  3. 많은 액수를 원하지를 않습니다. 산재와 위로금을 합산해서 3억5천만 원을 주시면 얼마를 정원이가 졸업한 김해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전달해서 아들은 갔으나 선배의 숭고한 뜻에 모교에 남게 하겠으며 저희 부부의 노후를 힘겹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상기의 모든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셔서 불쌍한 저희 부부의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거듭 바라면서 이 나라 대한민국 삼천리금수강산의 무궁한 발전과 현 정권의 정치로 우리나라의 백년대개를 든든한 토대위에 놓는 존경하는 대통령이하 모든 위정자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출처 : '꽃다운 청춘을 짓밟은 금호아시아나' -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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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내용

 

두군데에 가셔서 서명을 해주세요...

 

1. 다음(daum) 아고라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http://agoraplaza.media.daum.net/petition/petition.do?action=view&no=25149&cateNo=244&boardNo=25149

 

2. http://bbs.nate.com/BBS?p_bbs_id=bbs009&p_num=176278&p_action=q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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