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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4년 평가

이양자 |2007.02.25 11:12
조회 77 |추천 3

                           [ 노무현 정부 4년 평가 ]

 

           “시대착오·무능·국민무시 노무현 정부 4년은 실패”

 

                           ‘노무현 정부 4년’ 평가


               '정책과 리더십 포럼' ·조선일보 공동조사

 

           신명순 교수 연세대 정외과 교수·정책과리더십포럼 회장

 


중견 학자들의 모임인 ‘정책과 리더십 포럼’은 지난 1월부터 조선일보와 공동으로 ‘노무현 정부 4년’에 대한 평가작업을 실시했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 모임을 갖고 현 정부의 정치·외교·경제·사회 각 분야별로 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 4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노 정권이 지향한 근본 목표의 시대 착오성이다. 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상식적 기대는 안보의 공고화, 정치 안정, 경제 성장, 사회 통합, 국제적 위상 제고 등이었다. 그러나 노 정권은 ‘과거 역사의 적폐인 기성 체제와 기득권 세력들의 타파’가 우선적 목표였고, 여기에 총력을 집중했다. 평등·자주·참여 등의 구호를 앞세워 과거사 규명,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언론관계법 개정, 전시(戰時) 작전통제권 환수 등에 전념했으며 군, 기업, 사학, 언론, 부유층 등을 주요 타파 세력으로 설정하고 공격했다.

국민적 관심사와 요구를 외면하고 자신만의 목표에 과도하게 집착한 노 정권의 국정 운영은 민생경제 침체, 청년실업 증가, 부동산정책 혼란, 사회 갈등 폭발, 한·미 동맹 악화와 북한의 핵실험이란 총체적 실패를 가져 왔다.

둘째, 집권 세력의 능력 부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노 대통령과 386운동권으로 대표되는 정권의 핵심 세력은 기성 질서를 부수는 측면에서는 준비된 세력이었을지 몰라도 국정(國政)이란 측면에서는 능력과 경험이 없는 ‘준비 안 된’ 정권이었다. 이러한 능력 부족은 전문성과 능력·경험을 갖춘 외부 인재 충원을 통해 보완될 수 있다. 그러나 노 정권은 ‘코드·회전문·오기(傲氣) 인사’라는 표현이 상징하듯 지난 4년간 의도적으로 능력 있는 구원투수들의 충원을 배제했다. ‘그들만의 리그’에 안주, 국정 실패를 자초한 것이다.

셋째, 노 정권은 이대로가면 국정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국민의 공개적인 경고를 4년 내내 무시했다. 2004년 17대 총선 이후 모든 선거에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은 계속 참패했다. 또 노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여론 지지도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그러나 노 정권은 국민들이 보내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무시하면서 오히려 여론을 무시하고 매도하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그 결과 노무현 정권 4년은 참담한 실패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정치 ; 무질서한 ‘정치 실험’

 

                   분권화·개방화… 무질서한 ‘정치 실험’ 


                   임기내내 정치권·국민간 갈등만 키워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보수든 진보든 모든 민주정치는 시민의 참여(demos)와 정부의 운영능력(kratos)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굴러간다. 자동차 바퀴처럼 이 두 개의 축이 균형 있게 유지돼야 민주정치는 제대로 내달릴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참여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정당, 청와대, 정부의 기구와 결정과정에 시민들의 참여를 획기적으로 늘려왔다. 그러나 이 참여의 폭발은 정부의 운영 능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고, 이는 궁극적으로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력으로 이어졌다.

예컨대 2003년 이라크 파병부터 최근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여당은 주요한 정책 사안마다 충돌해왔다. 제왕적(帝王的) 총재를 타파한다는 명분을 내건 당정(黨政) 분리의 결과는 대통령의 입법 리더십의 무력화를 낳았고, 이에 따라 표류하는 국회와 ‘일 안하는 정치’로 이어졌다.

아울러 시민참여의 폭발은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을 개방하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비토(Veto·거부권) 행위자를 양산했다.
정부 내의 수많은 위원회에 포진한 ‘시민대표’들은 책임은 없고 발언권만 가진 정책 귀족으로 변질됐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건전한 비판자를 넘어서 권력을 남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천성산 터널공사를 포함한 5대 국책사업이 2~3년씩 지연되면서 발생하는 손실비용만 수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 정부의 집행능력의 추락과 혼선은 돈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4년간 계속된 정치실험으로 정부의 운영능력이 크게 위축됐는데도, 정작 노무현 정부는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과제들에 매달려왔다. 역사 청산의 무대는 1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북한 핵의 안정적 관리조차 못하면서, 동북아 중심국가를 내걸었다.

지난 4년 동안 ‘노무현식 정치 실험’을 거치면서 국민들이 정치의 역할 자체에 의문을 갖게 되는 정치의 위기를 불러왔다.

 

 

              경제 ; 성장도 분배도 다 놓친 ‘잃어버린 4년’ 

 

                어설픈 反시장 정책… 경제 열등생 전락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노무현 정부 4년은 한국 경제의 ‘잃어버린 4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우리 경제는 세계 경제의 우등생에서 열등생으로 전락했다.

노 대통령 임기 동안 한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세계의 평균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의 평균 경제성장률(IMF기준)은 4.9%였으나, 한국은 4.2%였다. 지난 세월 우리 경제는 1997년만을 빼고는 모두 세계 경제성장률을 월등히 뛰어넘는 성장률을 기록했었다.

현 정부가 최대 역점을 뒀던 분배 분야의 성적표도 좋지 않다.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연평균 4.5%의 증가율을 기록하였으나,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2.1%로 이전 기간의 절반 이하로 주저앉았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취업자 수가 187만8000명이 증가하였으나, 2003년부터 2006년 사이에는 98만2000명 증가에 그쳐 거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지난 4년 동안 가계부채는 119조7000억원이 늘었다.

정부 설립 후 54년 동안 누적된 국가부채가 134조원이었는데, 노무현 정부 4년 만에 54년 동안 누적된 부채보다 더 많은 137조원이 늘었다.

이처럼 경제 분야에서 참담한 실패를 가져온 원인은 현 정부가 지난 4년간 어설픈 반(反)시장 실험을 계속해 온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정부 개입을 당연시하면서, 기업의 성과와 허물 중에서 허물만을 보는 외눈박이 시각으로는 이 정부가 내건 성장과 분배의 조화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여기에 정책 운영 과정에서 아마추어리즘이 결합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실패한 웅변가

 

             대통령 입에서 나온 과격한 비속어는 보디페인팅

                             행위예술가 보는 당혹감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과격한 커뮤니케이션 실험을 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탈수사(脫修辭)에 가까울 만큼 격식 없는 그의 말은 화려한 패션쇼 같은 정치무대에서 보디페인팅(body painting)을 한 행위예술가를 보는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지난 4년간 국민들은 ‘막간다’ ‘깽판’ ‘썩는다’ ‘양아치’ ‘죽치고 앉아’ ‘별들 달고 거들먹거린다’는 등의 비속어가 최고 권력자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오는 것을 보는 사상 초유의 경험을 했다.

권위적인 색채가 짙었던 과거 대통령들의 발언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그의 말은 인터넷 댓글처럼 솔직하고 즉흥적이며 걸러지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 화법은 후보 시절에는 강점이었을지 몰라도, 대통령이 된 뒤에는 불안하고 부담스러운 지도자의 말로 다가왔다. 집권 초기부터 ‘노무현스럽다’는 신조어를 낳았던 그의 말은 집권 말기로 접어들면서 정부 정책이나 제안의 무게를 끌어내리는 역(逆)효과를 낳고 있다.

노 대통령이 선택한 단어의 조합은 대통령직이라는 역할의 무게와 부조화를 이루며 사람들의 상식을 끊임없이 배반했다. 그는 집권세력이면서 자신을 피해자로 간주하는 비주류(minor)의 화법을 선택했고, 포퓰리스트(Populist·대중영합주의자)를 지향하면서 계층을 나누는 당파적인(partisan) 단어를 즐겨 썼다. 단순하고 공격적이며 설득의 대상을 적대시하는 화법은 운동가의 화법이다. 집권 첫해인 2003년 가을,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 요구에서 보여준 것처럼 ‘증거제시의 부담’을 상대방에게 지우는 기술은 수세에 몰린 피고를 변호하는 율사(律士)의 화법을 닮았다.

역할과 말이 어긋날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의 동기에 의심을 품게 마련이다. 국민들이 부담스러워하고, 사회 통합은커녕 편 가르기의 주범이라는 혐의를 받는 것은, 그런 일련의 화법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0%대 초반까지 떨어졌던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노무현 정권의 커뮤니케이션 실험이 결국 실패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인터넷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소통)의 새 유형을 정립하지 못했고, 언론과의 소모적인 긴장으로 원활한 정책 소통을 하지 못했다. ‘위대한 정책 없이 위대한 웅변은 없다’고 하지만, 노 대통령의 정책들은 늘 그의 말에 눌려 제 빛을 보지 못했다. 결국 노 대통령은 실패한 웅변가로 남게 됐고, 그렇게 빛을 잃은 정책들은 고스란히 실정(失政)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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