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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골든혼의 여인』[쿠르반 사이드]

송준일 |2007.03.02 14:05
조회 24 |추천 0

『골든혼의 여인』 (소설)

- 쿠르반 사이드 지음, 평점 95점,  글쓰는시점 : 2007-2-28-수.


여태 읽었던 소설 중의 최고(?)였다. 근데 소설 자체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라서 최고라는 표현이 쑥스럽긴 하다. 최고라는 표현은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친 이후의 칭호이지, 소수의 경쟁자를 물리친 이후의 칭호로는 조금 과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전에 기억이 희미할 정도로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 중에 괜찮았던 작품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한 작품의 유력한 후보로 시드니 셀던의 소설이 있다. 10여년 전에 집에 있던 시드니 셀던의 전집을 모두 읽었었다. 당시에는 꽤 박진감과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내용은 잘 기억나진 않는다. 단지 그 느낌만이 아련하게 묻어올 뿐이다. , , , ... 이 정도가 지금 기억해 낼 수 있는 셀던의 작품들이다. 전집은 10권이었고, 그 이후 몇 년이 지나 셀던 작품을 2편 정도 더 보았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내용전개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구성. 그것이 셀던의 책 특징이었다.


이 책에서 셀던 작품 이상의 치밀한 구성과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구체적으로 갈수록 이 책과 셀던 작품의 차이가 벌어진다. 셀던의 작품 배경은 거의 미국이다. 워낙 영화, TV, 뉴스 등을 통해 많이 접했던 곳이라 익숙하긴 하나 신선함은 덜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 훨씬 스케일이 크다. 엔터테이먼트 위클리 리뷰는 그것을 잘 말해준다. “사이드는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회교도 그리고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안정한 관계를 막힘없는 유창한 필체로 독자에게 보여 준다.”


동서양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이 책이 쓰여진 시점을 생각하면 시대까지도 아우르는 저자의 필력이 대단해 보인다. 물론 스펙터클한 큰 사건이나 요소는 별로 없다. 대신 타문화에서 오는 이질감이나 미묘한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더구나 저자는 대중들에게는 라는 대표작이 알려져 있을 뿐이므로, 그의 정체의 모호함이나 그 외 작품들에 대한 궁금증은 쿠르반 사이드의 작품에 대한 신비로움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한 요인들이다.


‘황금빛 뿔’을 뜻하는 골든혼(Golden Horn)은 터키의 이스탄불을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누며 흐르고 있다. 그리 길지 않은 강에 ‘황금’이라는 수식이 붙은 체, 무려 2천년 세월동안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의 주요 항구로서 그 자리를 지켜 왔다.


소설의 내용은 골든혼의 여인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데라는 터키 여인을 중심으로, 그녀 주위에 얽히고 설킨 관계들이 펼쳐지며 진행된다. 남다르게 선택받은 삶을 영위하던 그녀는 제국의 몰락으로 인하여 삭막한 현실에 던져지게 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많은 갈등과 고뇌를 겪게 된다. 이외에도 하싸, 존 롤랜드와 그의 대리인 샘 두스 등의 등장인물들은 그들 나라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들 각자의 길은 어느 곳으로 향할지 예측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아시아데는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지, 스스로 찾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뇌와 한계 선택의 과정을 거친다. 이 작품은 결국, 저항할 수 없는 이끌림과 자신의 선택과 의지만이 생의 중심을 바로 잡아 준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혹자는 이 작품의 외형만을 접하며 단순한 연애소설로 평가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흔히 접하는 시시껄렁한 통속적인 연애소설 정도로 평가절하 했다. 그래서 그런지 기대이상의 스케일과 작품성, 치밀한 구성을 접하자 그 감동이 더 컸던 것 같다. 사실 앞에서 말한 ‘내가 읽은 소설 중 최고’라는 약간 과도한 표현은 이 책 마지막 장면의 절묘한 상황 정리에 대한 감탄과 함께, 이 책 자체에 대한 기대치가 처음부터 적었기 때문에 그러한 표현이 나온 것이다.


아시아데가 두 남자 사이에서의 갈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해졌다. 그것이 이 책의 주요한 재미이기도 했다. 하싸의 전처인 마리안이 나오는 장면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존재가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이다’라는 느낌을 받긴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 지는,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아시아데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고서야 알게 됐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의 그 편지였다. 그 편지로 모든 복잡한 상황과 갈등이 정리되면서 소설은 끝난다. 아시아데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의를 지키면서도 알 수 없는 이끌림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을 조금만 깊이를 두고 읽다 보면 각 나라 간의 외교적 관계들 즉, 각국의 역사적 관계들을 밑바탕에 두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임에도, 작가는 결코 부담스런 무게감을 지우지 않으면서 각 인물들의 관계 속에 연결고리를 이어가며 흥미롭게 이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문화보다 비교적 낯선 이슬람 문화에 대한 것들이 많이 언급되면서, 생소한 단어도 많았고, 발음자체가 어려운 단어도 많았다. 그래서 소설임에도 초반부에는 잘 읽히지 않았다. 만약 저자가 전체적인 문장조차도 물 흐르듯 부드럽게 표현하지 못했다면, 이 책을 완독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소설을 읽고 이처럼 뿌듯함이 드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이 책은 마치 작품성과 재미를 갖춘 영화 한편 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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