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동주(尹東柱) ---봄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봄을 위하여
천상병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회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론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복사꽃과 제비
김광균
불행한 나라의 하늘과 들에 핀 작은 별들에게
복사꽃과 제비와 어린이날이 찾아왔구나.
어린것 껴안고 뜨거운 눈물로 뺨을 부비노니
너희들 키워줄 새 나라 언제 세워지느냐.
낮이면 꽃그늘에 벌떼와 함께 돌아다니고
밤이면 박수치는 파도 위로 은빛 마차 휘몰아가고
거칠은 바람 속게 다만 고이 자라라
온 겨레의 등에 진실한 땀이 흐르는 날
너 가는 길에 새로운 장미 피어나리니
황량한 산과 들 너머
장미여 삼천리에 춤을 늘여라.
불행한 나라의 하늘과 들에 핀 작은 별들에게
복사꽃과 제비와 어린이날이 돌아왔구나.
봄
김광섭
얼음을 등에 지고 가는 듯
봄은 멀다
먼저 든 햇빛에
개나리 보실보실 피어서
처음 노란빛에 정이 들었다
차츰 지붕이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고
집 사이에 쌓은 울타리를 헐 때도 된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가장 먼 데서부터 시작할 때도 온다
그래서 봄은 사랑의 계절
모든 거리(距離)가 풀리면서
멀리 간 것이 다 돌아온다
서운하게 갈라진 것까지도 돌아온다
모든 처음이 그 근원에서 돌아선다
나무는 나무로
꽃은 꽃으로
버들강아지는 버들가지로
사람은 사람에게로
산은 산으로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를 이룬다
꽃은 짧은 가을 해에
어디쯤 갔다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지는 봄 해를 따라
몇천리나 와서
오늘의 어느 주변에서
찬란한 꽃밭을 이루는가
다락에서 묵은 빨래뭉치도 풀려서
봄빛을 따라나와
산골짜기에서 겨울 산 뼈를 씻으며
졸졸 흐르는 시냇가로 간다
봄의 소식(消息)
신동엽(申東曄)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발병 났다커니
봄은 위독(危毒)하다커니
눈이 휘둥그래진 수소문에 의하면
봄이 머언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동백꽃 산모퉁이에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봄은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광증(狂症)이 난 악한한테 몽둥이 맞고
선지피 흘리며 거꾸러지더라는......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자살했다커니
봄은 장사지내 버렸다커니
그렇지만 눈이 휘둥그래진 새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
근처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도,
몇 날 밤 우리들 모르는 새에 이미 숨어와서
몸 단장(丹裝)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봄은 전보도 안 치고
김기림
아득한 황혼의 찬 안개를 마시며
긴―말 없는 산허리를 기어오는
차소리
우루루루
오늘도 철교는 운다. 무엇을 우누.
글쎄 봄은 언제 온다는 전보도 없이 저 차를 타고 도적과 같이 왔구려
어머니와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골짝에서 코고는 시냇물들을 불러 일으키면서…….
해는 지금 붉은 얼굴을 벙글거리며
사라지는 엷은 눈 위에 이별의 키쓰를 뿌리노라고
바쁘게 돌아다니오.
포풀라들은 파―란 연기를 뿜으면서
빨래와 같은 하―얀 오후의 방천에 늘어서서
실업쟁이처럼 담배를 피우오.
봄아
너는 언제 강가에서라도 만나서
나에게 이렇다는 약속을 한 일도 없건만
어쩐지 무엇을―굉장히 훌륭한 무엇을 가져다 줄 것만 같애서
나는 오늘도 괭이를 멘 채 돌아서서
아득한 황혼의 찬 안개를 마시며
긴―말이 없는 산기슭을 기어오는 기차를 바라본다.